11월 12일 민중총궐기 스케치

기자명 장소현 기자 (ddloves@skkuw.com)

사진 | 백미경ㆍ한지호 기자 webmaster@

11:00
날씨는 화창했고 거리에 떨어진 낙엽은 바스락 밟혔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토요일, 혜화역으로 향하는 시내버스 안 승객들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이하고 있었다. 각자의 할 일을 하며 버스 내 설치된 모니터 화면 하단 실시간 한 줄 뉴스에 눈길을 던진다. ‘오늘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 ‘최순실 게이트’ 최대 분수령.’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은 결코 평범치 않은, 역사적인 토요일이다.

13:00
혜화역 2번 출구 근처에서 대학생의 목소리를 듣는 대학생 시국 대회가 시작됐다. 전국 각지 70여 개 대학에서 모인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여 흩어졌다. 정면의 무대를 바라보고 피켓을 든 대학생들, 무대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목소리가 이어졌다. 불어오는 바람에 은행잎이 날리고 각 대학의 깃발은 강하게 흔들렸다.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오늘, 대학생들의 시국 선언은 이어졌고, 전국 예비교사 대표는 민주주의를 가르치게 될 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여 역사를 바꾸고자 시국 선언에 나섰다. 도로를 가득 메운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응원의 박수와 호응의 목소리를 더했다. 대학생 시국 대회 무대 옆, 마로니에 공원을 가기 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 적힌 표석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14:30
시청광장으로 대학생과 청년의 행진이 시작됐다. 대규모의 인원이 움직여야 하기에 지역별로 순서가 나누어졌고 방송차 세 대를 기준으로 행렬은 움직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은 방송차에 탑승한 발언자의 선창으로 구호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행진 중 계속되는 학생들의 시국 선언과 노랫소리는 이화사거리를 거쳐 종로까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성난 민심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존 목적지였던 시청광장은 물론 광화문광장, 종로까지 네 시로 예정된 민중총궐기 대회 시작 전, 약 30만 명의 시민들이 이미 가득 메웠다. 이 때문에 시청광장으로 행렬의 진입이 불가능해져 목적지를 명확히 설정조차 하지 않은 채 행진은 이어졌다. 행진이 한 시간가량 지난 오후 3시 45분, 한쪽 도로를 가득 메운 채 행렬은 광장시장을 지났다. 건너편 도로에서는 지나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도,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청년들의 행진을 지켜본다. 건물 안에서 피켓을 흔드는 시민을 보고는 행렬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호응한다.

16:20
보신각 앞, 어스름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행렬은 광화문 광장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차례를 기다린다. 기자는 잠시 행렬을 벗어나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의 시민들 역시 눈길은 행렬을 향한다. 곳곳에서 눈에 띄는 민중총궐기 피켓. 대학생 행렬 뒤로 이어지던 중고등학생들의 행렬을 앞질러 다른 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고자 이동했다. 도로는 훨씬 더 많은 시민으로 가득 찼고 겨우 한 걸음 뗄 수 있었다. 시민들은 서로 밀고 밀리며 이동해야만 했고 한산한 날이라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가 30분가량 걸렸다. 오후 6시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광화문광장 앞은 수십만 개의 촛불이 밝히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시민들의 행렬도 끝이 없다. 지나가는 시민은 "이 정도면 정말 100만 명이 모인 게 맞겠어"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진다.

18:40
광화문광장을 벗어나 경복궁역으로 향하는 길 어렴풋이 들리는 무대 소리에 함성이 이어진다. 우레와 같이 하나 된 목소리는 점차 광화문 일대 전체로 퍼져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경복궁역에서도 행렬은 이어져 오고,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 민중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촛불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