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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의 새참시간은 고요했다
황병준 기자  |  hbj0929@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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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호] 승인 2016.11.28  12: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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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남구로역 사거리. 건설현장으로 향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

“저쪽은 다 외국 애들이지”라고 말하는 잡부의 수염이 희끗했다. 그는 차도 건너편을 바라보며 보리차를 마시고 있었다.
보리차는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고 있었다. 보리차는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따라 상 위에 정렬했고 잡부들은 차례 없이 가져가서 마셨다. 새벽 공기는 찌르듯 찼고, 보리차에서 김이 났다. 찌르듯 찬 새벽 공기에, 잡부들의 보리차는 필사적으로 보였다. 보리차가 담긴 보온 통을 옮기던 한 자원봉사자에게 다가가, 매일 나오는 것이냐 물으니 “빨간 날 빼고 다 나온다”고 말했다. 왜 나왔느냐는 질문에는 “날이 추우니까”라고 말하며 헛웃음 지었다. 남구로역 인근에서 보리차는 낙엽처럼, 계절마다 돌아오는 풍경인 듯했다. 보리차의 김과 주변 담배 연기가 섞여서 퍼졌다.
차도 건너편에는 외국인 잡부들이 들어차 있었다. 건너가보니 들리는 말은 온통 중국어와 조선족 말투였다. 어느 나라 언어인지 분간하지 못한 말들도 들렸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말인 듯했다. 이곳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보리차를 나눠주고 있었고 보리차의 김과 주변 담배 연기가 섞여서 퍼졌다.
다만, 이곳의 보리차와 저곳의 보리차는 디지털로 27길을 사이에 두고 멀었다. 멀어서 서로 섞이지 않을 듯싶었다.

고령화되는 내국인 근로자
지난 18일, 우리나라 최대 인력시장 남구로역 사거리를 찾았다. 이곳 인근에 등록된 인력사무소만 8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사거리에 도착한 오전 4시 15분, 거리는 사뭇 헐거워 보였으나 30분 만에 차와 사람들로 들끓었다. 교통정리를 하러 나왔다는 경찰에게 다가가 물으니 “매일 이곳을 찾는 사람의 수를 적게는 700명에서 많게는 1000명 정도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모여 있던 일용직 근로자들은 대체로 중장년으로 보였다. 수염이 희끗한 사람들이 많았고, 발견할 수 있던 기자 또래의 젊은이들은 근처 피시방 건물 계단을 걸어 내려오던 둘 뿐이었다. 모여 있던 무리 중 한 일용직 근로자에게 다가가 젊은 인력들은 없느냐 물으니 “젊은 사람은 이런데 잘 안 오지, 요즘 젊은 애들은 힘든 일 잘 안 하려고 해”라고 말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 16일 발간한 ‘2015년 퇴직공제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라도 퇴직공제 가입 건설현장에서 일한 적 있는 근로자는 139만 명이며 이 중 50대 이상은 72만 9718명(52.2%)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겼다. 2014년 71만 8557명(50.6%)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증가하는 외국인 근로자
오전 5시 10분, “젊은 사람이 여긴 웬일인가, 일 구하러 왔나”라고 조선족 말투로 물어왔다. 그는 “일산에 큰 공사판 있는데 가지 않을래”라며 하루 벌이를 제안했다. 그는 본인을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팀장이란 다른 말로 작업반장이다. 보통 인력사무소와 연결되어 인력사무소로부터 일용직 근로자들을 받아 건설현장으로 나르고 작업을 지휘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인력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사람을 데려가는 듯했다. 그는 “우리는 현장에서 바로 돈 준다”며 “인력 거치지 않고 가면 돈도 안 떼이고 얼마나 좋나”라고 말했다. 그의 주변엔 그의 동선을 따라 함께 이동하던 일용직 근로자들이 서 있었고 조선족 말투로 대화했다. 그가 이미 포섭해 놓은 듯한 사람들로 보였다.
남구로역 사거리는 디지털로 27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진영을 이룬다. 한쪽은 내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있고 다른 한쪽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였다. 한 내국인 근로자에게 다가가 물으니 “여긴 교포가 더 많아. 한 9할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과장이 없지 않았겠지만,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2015년 퇴직공제 통계연보’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건설현장 외국인 근로자는 39만 2000명으로 전체의 8.0%에 해당했는데, 2011년 5.8%에 비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내국인의 경우 고령화가 지속되는 추세지만 30대 이하 외국인 근로자는 2013년 32.0%에서 2014년 33.9%, 지난해 37.8%로 지속 증가하고 있어 외국인의 내국인력 대체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전 5시 20분,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신분증과 안전필증을 확인하는 간단한 절차를 거친 후, 인력사무소와 연결된 팀장을 따라 봉고차에 올라탔다. 봉고차에는 이미 8명의 일용직 근로자가 앉아있었다. 조선족 3명에 중국인 2명, 나머지는 내국인이었다. 20대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봉고차는 경기도 광주로 향했다.

이게 다 중국인 때문?
오전 6시 30분, 경기도 광주의 한 건설현장. 안전준수 서약서에 서명한 뒤, 함께 봉고차를 타고 온 8명의 팀원과 현장에 투입됐다. 자제정리 작업에 투입되어, 철근과 나무를 날랐다.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까지, 철근과 나무를 날랐고 함께 일하던 팀원들에게 몇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봉고차를 타고 온 내국인 근로자 중 본인을 50대라고 밝힌 한 일용직 근로자는 중국인들 때문에 인건비가 하락했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인들이 목숨 내놓고 하던 일들을 중국 애들이 반값에 해주기 시작했다. 돈 벌러 남의 나라까지 왔으니 필사적인 거지. 처음에는 그래도 한국인 숙련공들 쓰는 게 낫다는 인식도 있었는데, 요새는 건축기술이 좋아져서 그렇지도 않다. 망치만 들면 목수다. 이런 상황인데 건설사들은 최저가낙찰제 한다고 당연히 값싼 인력 쓰려고 하지. 위에서 싼값에 쓰려고 하니 밑에서 깎이는 거다.” 최저가낙찰제도란 건설사업 입찰자 중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업체부터 입찰금액의 적정성을 심사하여 낙찰업체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시장논리 하에서, 노동력이 풍부해져서 인건비가 낮아지고 건설사들이 이윤추구를 위해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정당해 보인다. 다만, 시장논리는 형체가 없고 멀어서 희미한 듯했다. 그는 “이게 다 중국 애들 때문이야”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건설현장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현황 및 개선과제’에 따르면,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지속된 인건비 하락으로 실행단가를 외국인 근로자를 기준으로 맞출 정도가 되었고, 현재의 인건비 저하 틀을 깨지 못한다면 내국인 숙련인력을 고용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일용직 근로자는 “인건비가 적으니까 젊은 애들이 안 온다. 돈 조금 주는데 누가 오려고 하겠나. 공장은 퇴직금도 준다. 이제 공사판에는 오륙십 대밖에 없다. 사고는 괜히 일어나는 줄 아나. 오륙십 대들이 어디 올라가서 일하다가 힘 풀리면 그대로 추락사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집계 결과 지난해 산업재해자 수는 9만 129명으로 전년보다 780명(0.86%)이 감소했지만, 건설업 재해자 수는 같은 기간 2만 5132명으로 1463명(6.2%)나 급증했다.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 역시 소폭 줄었지만, 건설업은 오히려 증가했다. 전체 산업 재해 사고 사망자는 992명에서 955명으로 37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434명에서 437명으로 3명이 증가했다.
해체 작업을 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에 의해 천정에서 철근들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졌다. 쏟아진 철근들을 정리하던 한 팀원의 나이는 64세였다. 그의 머리에 씌워진 헬멧 아래로 희끗한 머리카락이 삐져나와있었다. 헬멧의 정면에는 ‘안전제일’이라고 적혀있었다.

문득 고요한 새참시간
오후 3시 10분, 팀장이 새참을 들고 왔다. 새참은 떡과 음료수였다. 점심시간은 1시까지여서 밥을 먹은 지 두 시간이 조금 넘은 때였지만, 몸을 쓰고 나니 허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팀장은 기자에게 “마저 힘쓰려면 밥을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떡과 음료수를 먹을 때, 팀장과 팀원들 모두 말이 없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건설현장의 새참시간은 문득 고요했다.
몸을 써서 허기가 지는 사태는 당연하고도 정당했다. 허기가 져서 밥을 먹고, 밥을 먹어서 몸을 쓰고, 몸을 써서 또다시 허기가 지는 이 사태 속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새참을 먹고 나서, 팀원들이 주저앉아 담배를 태웠다. 담배 연기가 섞여서 퍼졌다. 

“내일도 나와라”
오후 4시 40분, “마무리 합시다”라는 팀장의 말과 함께 작업이 끝났다. 팀원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남구로역 사거리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인력사무소에 들어가니 팀장은 돈다발을 들고 팀원들에게 10만 3000원씩 차례대로 나눠줬다. 기자의 손에 들린 10만 3000원은 원금 12만 원에서 인력사무소가 수수료로 10%, 팀장이 교통비로 5000원을 가져가서 남은 돈이었다. 손에 들린 10만 3000원은 확실하고 선명했지만, 원금 12만 원은 멀고 희미해서 원금이란 원래 없던 것인 듯도 싶었다.
팀장은 기자에게 “거기 젊은 친구, 내일도 나와라”라고 말했다. 내일도 나올 사람들과, 인력사무소와 팀장이 가져간 1만 7000원의 행방을 생각하니 아득했다. 팀장의 제안을 사양하고, 인력사무소를 나오니 저녁 남구로역 사거리가 붐볐다. 귀가하기 위해 역으로 가는 길, 인근 식당가에서 흘러나온 냄새에 허기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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