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희철 기자 (wheel21@skkuw.com)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하는 4학년의 생활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선택한 성대신문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내가 쓴 기사가 처음 실린 것은 ‘꽃이 피기 전’인 3월 초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사를 쓰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지나가지 않고 지면 속에 고스란히 남겨지는 글과 가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름 뒤에 기자라고 붙는 모든 내용은 신중하지만 뚜렷하게는 담지 않으려 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조심스러웠던 나였지만, 이번 시각면은 욕심을 냈다.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시간 속에 지쳐 ‘기다림’을 그리워했던 주변에는 나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정동진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갑자기 찾아온 여유가 낯선 느림을 느꼈다. 0초 단위로 정보를 수신하는 핸드폰을 갖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 갈수록 바빠지고 느리다는 것은 짜증나는 답답함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은, 곧 내리지 않아도 되는 기차를 타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이날 마주한 해는 ‘소원’을 비는 신년의 해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멈춰 서서 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바람을 들어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해는 아쉽게도 구름 뒤에 모습을 가린 채 하늘만을 조금씩 밝히고 있었다. 해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온 사람들은 당장 해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 실망하며 자리를 떠났다. 돌아서는 그들의 ‘뒷모습’은, 취재가 아니었으면 나 역시 운을 탓하며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 같아 타인이 아니었다.
가만히 서서 해돋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예전 여행에서 ‘소나기’가 내려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둘러보았던 주변의 풍경 때문이다. 멈춰 서자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은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빠르기 다닌 여행이 곧 잊어버릴 잔상만을 남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빠름이 일상이지만 결코 익숙하지 않다면, 느림은 더 나아갈 수 있는 ‘휴식’이 될 수 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기다린 결과 늦게나마 선명하게 떠오른 해를 본 경험은, 느림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는지 예정보다 늦어진 일정에도 여유를 주었다. 그래서 정동진 주변을 자세히 보며 해변을 오랫동안 걸을 수 있었다.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을 지닌 ‘청춘’은 오늘 날, 싱그럽기보다는 시든 모습에 가깝다. 결과로 실력을 증명해야 하기에 빠르게 서두르면서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빠름 속에서 놓치고 지쳐버린다면 원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
이번 기사를 마지막으로 성대신문을 떠난다. 정동진에서 느림을 갖고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천천히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서 많은 의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느림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에는 성대신문을 선택한 순간 이후 배운 소중한 경험이 담겨 있었다. 그 시간을 함께 해준 성대신문에서 만난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그 순간을 앞으로도 느리게 되새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