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지호 기자 (jiho2510@skkuw.com)

쌀쌀한 11월의 어느 날, 버스 차창 밖으로 사람들의 옷차림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두꺼워진 게 보였다. 건조한 날씨를 따라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함께 말라가는 듯했다. 그 순간 도시는 온통 잿빛이었다. <성대신문> 문화부가 도시민들의 메마른 감성에 물뿌리개가 되어줄 시민 누리 공간을 찾아갔다.

오후 2시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서울 중구 무교동의 빈 공터를 직장인들이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간다.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는 건 고층빌딩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컨테이너. 10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에 서로 교차하는 검은색과 하얀색 컨테이너의 독특한 외관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작지만 열린 공간, 지친 도시민들에게 휴식을 선물하는 미니시네페다.

서울 중구 무교동에 위치한 시민 누리 공간 미니시네페의 모습.
ⓒ(주)생각나무파트너스 제공

고층건물들 사이에서 발견한 미니시네페는 내부가 비치는 한 쪽 벽면을 통해 밖으로 스크린을 걸어두고 있다. 해가 진 밤, 야외상영을 위한 이 스크린에 비친 영상이 아직은 흐릿하다. 그림자가 길어질 때쯤, 스크린 속에서 영화는 살아날 것이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기 전, 눈에 띈 것은 ‘오늘의 상영작’을 소개하는 표지판이다. 판타지 영화 <한잔>, 로맨스 영화 <다소니>, 미장센 단편영화제 선정작 <위장>. 그 아래로 누구나 단편영화를 무료로 즐길 수 있으니 들어오라는 문구도 잊지 않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페인트 냄새가 옅게 코끝을 스친다. 아직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이유일 터였다. 새하얀 벽이 채운 내부의 공간은 외부만큼이나 깔끔했다. 컨테이너 한 편에는 커피와 녹차를 마실 수 있도록 커피믹스와 티백을 마련해두었다. 바로 옆의 컨테이너로 이어지는 작은 상영관에서 또 하나의 스크린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앞에는 관객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 10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천장의 빔프로젝터와 네 개의 스피커가 스크린 안에 영화를 만들어낸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상영관과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갖춘 미니시네페 내부의 모습.
ⓒ(주)생각나무파트너스 제공

그 작은 상영관에 그날의 단편영화를 틀어주는 건 미니시네페의 시민운영자 윤미나 씨의 몫이다. 기자와 마주 앉은 윤 씨가 따뜻한 녹차 한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많아지면서 단편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어요. 단편영화 감독들은 작품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은데 말이죠.” 윤 씨가 일하고 있는 단편영화 플랫폼 ‘미니시네마’는 단편영화 감독들의 작품을 더욱 많은 관객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단편영화 감독들은 영화를 상영할 기회를 얻고, 시민들은 잠시나마 영화를 보며 쉬어가는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미니시네페가 탄생하게 된 거죠.” 무엇보다 짧은 단편영화는 휴식에 인색한 직장인들에게 제격이다. “단편영화 같은 경우, 상영시간이 짧으면 5분, 길어봤자 15분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시민이라면 누구나 점심을 먹고 남은 여유시간에 혹은 퇴근할 시간 즈음에 커피 한잔을 들고 언제든지 찾아와 단편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그럼 영화 한 편 보시겠어요?” 잠시 관객이 되어 스크린 앞 의자에 앉았다. 불이 꺼지고, 컨테이너의 두 공간 사이를 가르며 미닫이문이 스르르 닫힌다. 작은 상영관에 어둠과 고요함이 내려앉는다. 항상 많은 관객으로 영화가 시작할 때조차도 북적거리는 대형 상영관과는 대비된다. 평소 영화를 보던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더 부풀게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장 먼저 스크린 위로 떠오른 건 5분 남짓의 짧은 로맨스 영화. 작은 공간이다 보니 영화 속으로 빠르게 몰입되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자 몰려오는 아쉬움에 이어서 15분 상영시간의 판타지 영화를 관람했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모습을 감춰, 밖을 향해 걸린 스크린은 이전보다 한층 더 밝아졌다. 스크린 앞으로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 함께 단편영화를 관람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불법 주차된 차량과 흡연자들이 내버린 담배꽁초가 전부였던 이 공터를 시민문화 공간으로 변화시킨 미니시네페는 시민의 힘으로 도시를 살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도시의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이 도시는 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