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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역사의 빈 틈에 기생하다
조연교 기자  |  joyungyo@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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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호] 승인 2016.11.28  14: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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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Ⅰ유은진 기자 qwertys@

나라가 망할 때면 간신이 득세했다. 그들로 인해 민생은 파탄이 났다. 지금은 왕도 신하도 없으니 이는 다 옛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아니다. 인사가 만사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우리 시대, 우리 조직에도 간신과 같은 존재들이 득실거린다. 저자는 『난세에 간신 춤추다』를 통해 역사 속 다양한 간신의 존재 양상을 파악해 오늘날의 인사 감별을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했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 속 간신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뉜다. 그런데 지나간 날의 간신들이 왠지 낯설지 않다. 그들이 저지른 악행과 그로 인한 폐단이 어젯밤 뉴스에서 본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왕 위의 왕, 실세 간신
조선 전기의 윤원형은, 조선 시대에 권력을 전횡한 대표적인 권신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외척이었다. 외척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권력과 가까운 존재였다. 명종이 즉위한 때부터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20년 동안 윤원형은 권력과 재력을 독점했다. 그의 권력은 국왕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는 이조판서,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그때 그가 얼마나 큰 권력을 행사했는지는 명종실록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하루는 주상이 내관에게 “외척이 큰 죄가 있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라고 말했는데, 윤원형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 말은 곧 누설되어 문정왕후에게 들어갔다. 왕후가 “나와 윤원형이 아니었으면 주상께서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크게 꾸짖으니, 주상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군국의 정사가 대부분 윤원형에게서 나오니 주상은 마음속으로 그를 매우 미워했다. (명종 20년 11월 18일)
관리의 임용과 진급, 죄수의 처벌과 면책도 오로지 윤원형의 손에서 나왔다. 벼슬을 얻으려 하거나 더 좋은 자리로 옮기기 위해서는 윤원형에게 뇌물을 줘야 했다. “뇌물이 문에 가득해 재산이 국고보다 더 많았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윤원형의 권력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왕후가 승하하자 신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윤원형을 탄핵했고 그에게 불만이 컸던 명종은 이를 수락했다. 윤원형은 급격히 몰락했고, 결국 그는 고향으로 떠나 비참한 생을 자살로 마무리하게 된다.
외척세력에 의한 정치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른바 실세 정치라 표현할 수 있다. 잘못된 정치의 결과는 허수아비 임금이 책임지게 하고 실권을 장악한 특권층의 정치 만행은 끝을 모르고 반복된다. 환관 정치도 결국 주체만 다를 뿐이지 특권층의 무책임한 정치라는 면에서 의미가 같다.

대세에 편승, 변절 간신
조선 중기의 김자점은, 그리 유능하지도 성실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그가 오로지 시대를 잘 타고 났기 때문에 그 같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김자점은 인조반정의 일등 공신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으나 실제로 그는 반정 당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총애했던 상궁에게 뇌물을 줘 일등 공신으로 책정될 수 있었으나, 반정의 주역은 이귀 등의 인물이었다.
반정으로 임금이 바뀌고 오랑캐에게 강토가 유린당하며 건국 이래 최대의 치욕을 겪었던 시기에 김자점은 무엇을 했을까. 저자는 이런 혼란한 시대에는 국민의 사기를 드높이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애쓸 것을 독려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병자호란 당시 목숨을 바쳐 투쟁했던 명장 임경업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김자점은 당시 도원수로서 서북방의 방어를 책임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회피하고 적군의 급속한 남하를 방관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다른 신하들로부터 처형당해야 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인조의 비호를 받아 승진을 거듭했다. 인조가 그를 비호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이후에도 김자점은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게 되면서 그의 출셋길도 끝을 향해 달려갔다. 혼란한 시대의 중심에 있었지만, 시대를 이끌어가지 못했고 이끌어가려 하지도 않았던 김자점은 마치 어릿광대처럼 자신의 이익만 바라보고 이 줄에서 저 줄로 건너다녔다.
별다른 재능 없이 줄서기를 잘한 덕분에 잘나가는 사람들을 우리 시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비전도 리더십도 없지만 윗사람에게 굽실대어 총애를 받는다. 그렇게 해서 제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많을 경우 조직은 안에서부터 썩어간다.

왕의 남자, 측근 간신
조선 후기의 홍국영은, 정조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그는 정조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해 최고 권력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지나치게 밀착해 있었던 측근의 부작용을 보여준 대표 인물로 남았다. 저자는 말한다. 지나친 충신은 간신이 된다고. 그는 지나치게 충성스러웠다. 자신을 지키듯 정조를 지켰고 그러다 보니 자신과 정조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가 권세를 얻게 된 것은 오직 정조와의 친분과 그에게 세운 공로 때문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새어머니와 여동생으로부터 모함을 당하며 정치적으로 불안한 처지였다. 즉위 전은 물론 즉위 후에도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 같은 정국에서 몸을 던져 정조를 보호한 사람이 홍국영이었다. 홍국영은 숙위대장으로서 궁궐을 지키며 역모를 차단해 정조로부터 총애를 받았지만, 아직 젊었기에 대번에 정승이나 판서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는 대신 여러 실무직을 모조리 자신에게로 집중시켜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조정의 권력을 독점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 경호실장 그리고 비상계획위원장과 같은 직위를 한 사람이 겸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니 모든 정무가 정조와 홍국영 사이에서 진행되게 되는 셈이었다. 홍국영은 날이 갈수록 오만방자해졌다. 식사를 임금의 수라상과 똑같이 차려 먹고 대소신료들은 궁궐을 출입할 때마다 그가 있는 곳에 들러 인사를 해야 했다. 혹시라도 그에게 잘못 보이면 아버지뻘의 대신도 사람들 앞에서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다행히 현명한 왕이었던 정조는 홍국영에 대한 비판이 치솟을 때쯤 그를 내쳤다. 벗이자 충신이었지만 그가 천하 대사를 함께 이끌어갈 대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정조의 냉정한 판단으로 홍국영의 횡포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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