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하영 기자 (melon0706@skkuw.com)

인사캠 철문으로 나가, 길게 이어진 골목길을 쭉 내려가다 보면 천장이 낮은 아담한 식당 하나가 보인다. 황토색 벽에 나 있는 빨간 창과 문,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따뜻한 빛과 맛있는 전골냄새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밥 먹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화전골’. 그곳에서 이경미(54)씨의 환한 미소와 마주했다.

인사캠 철문 쪽 골목으로 내려가면 보이는 '화전골' 전경

“우리 차-암 오래 했다.” 똑 닮은 이 씨 자매는 우리 학교 길목에서 전골 전문 식당 ‘화전골’을 운영한 지 벌써 18년째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경미씨는 결혼하고 나서 ‘식당 사장님’으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자 원래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친언니 이경숙(61)씨와 함께 식당 운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화전골’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한 자리에서 18년씩이나 화전골을 운영할 줄 몰랐다. 원래는 2~4년 정도만 하다가 식당을 그만두고 옷 장사를 하고 싶었다. 몸이 고된 식당일보다는 손이 덜 갈 것 같은 생각에서다. 그런데 생각보다 장사가 너무 잘 돼서 계속했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가게를 그만둘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가게를 계속해서 찾아주는 고마운 단골들 때문. 식당을 한 곳에서 오래 하다 보니 단골이 많아졌고 이씨 자매는 이들에게서 활력을 얻는다. “오래된 졸업생들이 결혼해서 아기 데리고 오면 정말 기분 좋지.” 단골들 중에는 지방에서 일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오는 김에 들렀다는 직장인들도 종종 있다. 그녀는 가장 기억에 남는 단골로, 유학 갔다가 화전골이 너무 그리워 공항에서 바로 왔다며 캐리어를 끌고 찾아왔던 학생을 꼽았다. “이럴 때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차지.”라고 말하는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은, 단골이 주었던 그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화전골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경숙(왼쪽), 이경미 자매

“동네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녀는 재료가 싱싱해야 하고, 양념은 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게 주변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다. 될 수 있으면 집에서 먹는 밥처럼 차려주고 싶다는 그녀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재료는 반드시 싱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그녀는 음식에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양념을 많이 하게 되면, 조미료의 강한 맛으로 인해 ‘집밥’ 같은 음식의 본래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각종 전골을 포함한 안주, 식사메뉴 모두 이 두 신념에 따라 요리된다. “가끔은 엄마들이 와서 ‘자취하는 우리 아들(딸) 밥 좀 잘 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며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둔 엄마이기에 이런 부탁을 들을 때마다 혼자 사는 학생들에게 좋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화전골이 ‘믿고, 맛있게 그리고 배부르게 먹고 갈 수 있는 집’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그녀에겐, 편하게 밥 한 끼 잘 먹고 가는 것이 손님들에게 바라는 전부다. 다음날 손님으로 다시 문을 두드린 기자에게 반찬을 푸짐히 가져다주는 그녀의 모습은 절로 미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마음까지 따뜻함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밥집인 동시에 애환을 달래주는 술집인 그곳의 이름은 ‘화전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