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조선 중기, 선조와 광해군의 시대에 김개시(金介屎)라는 인물이 있었다. 천민의 딸로 태어나 선조 때 궁녀가 된 여인으로, 선조가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려는 상황에서 광해군을 도와 왕위에 오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자칫하면 영창대군에게 밀려 왕이 되지 못한 채 온갖 참소와 비난에 휩싸여 처형당할 수도 있었던 자신의 운명을 왕으로 이끌어준 그녀에게 광해군의 마음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자연스레 광해군의 즉위 후 그의 총애를 받게 된다. 단순히 사랑받는 궁녀 혹은 애첩이 되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김개시는 광해군을 등에 업고 국정에 깊숙이 관여하며 권력을 휘두르고 만다. 당시 대북의 수장으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이이첨(李爾瞻)과 권력의 쌍벽을 이룰 정도였다고 하니 관직만 없었을 뿐 사실상의 권신(權臣)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권력을 손에 쥐고 그녀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을 일삼고 뇌물을 받아 챙기는 등 온갖 비리를 일삼았다. 그녀의 악행이 어찌나 컸는지, 윤선도(尹善道)와 이회(李)가 그녀의 비리에 대해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그 후 광해군에 대한 반정의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자, 그녀는 광해군을 배신하고 반정의 핵심 인물인 김자점(金自點)에게 뇌물을 바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고는 계속되는 반정 관련 상소에도 광해군을 안심시키며 광해군의 생각에서 반정을 지워버리고, 광해군을 국정에서 떼어놓았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그녀는 나라를 어지럽힌 죄목으로 처형당하게 된다.
2016년 현재, 박근혜 정권의 시대에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있다. 17대 대선 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 그녀의 총애를 받아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한 권력을 가지고 뇌물을 주고받거나 국정에 개입하는 등의 횡포를 부리다가, 결국 발각되어 구속될 위기에 처하고 만다.
마지막의 행보는 다소 다르지만, 권력을 쥐게 된 경로나 행동을 보면 우리 시대의 최순실과 조선시대의 김개시는 닮은 점이 많다. 숨어있는가, 드러났는가의 차이가 있는 정도일까. 김개시를 비선실세라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권력을 맡기지 않은 인물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옳지 않은 일이다. 광해군에 대한 다른 평가는 차치하고 오직 김개시에 대해서만 본다면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실패한 왕이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의 대통령, 어쩌면 왕인 그녀도 실패한 왕이라고 생각한다. 광해군은 김개시에게 휘둘렸고, 박근혜는 최순실에게 휘둘렸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실패한 왕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와 지금의 다른 점이라면, 그때의 우리는 백성이었고 지금의 우리는 시민이라는 것이다. 김개시는 인조반정으로 쫓겨났지만, 즉위한 인조는 결국 이괄의 난과 두 번의 호란(胡亂)을 가져오고 말았다. 이이첨과 김개시의 축출과 함께 등장한 이들은 결국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공신들이었다. 시민이 없던 ‘반정’의 한계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백성이 아닌 시민이고, 수단도 반정이 아닌 시위다. 우리는 무력으로 시대를 역전하고자 하지 않는다. 침묵의 그들에게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시대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우리의 행동이 불러올 변화는 분명 인조반정과는 다른 무언가일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어느덧 폭풍이 되었다. 폭풍이 그치는 그 날, 이 시대에는 실패를 불러올 또 다른 왕과 권신이 아닌, 오직 시민의 권력이 서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유지환(한교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