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민진 기자 (kmjin0320@skkuw.com)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기호학, 기호의 생명을 연구하다
기호학은 기호를 지배하는 법칙과 관계를 규명하고, 기호를 통해 의미를 △생산 △해석 △공유하는 행위와 정신적인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방법론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기호학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학문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호학자 소쉬르가 기호학을 ‘삶 속 한복판에서 기호들의 생명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기호학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학문이다.
기호학이 하나의 학문이자 방법론으로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기호학의 양대 산맥인 유럽에서 탄생한 소쉬르의 기호학과 미국에서 발생한 퍼스의 기호학이 등장하면서부터다. 20세기 초 스위스의 기호학자 페르디낭 소쉬르는 기호의 구성요소를 이원론적인 기의와 기표로 분석했다. 애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행위를 예로 든다면, 내가 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기의이고 장미꽃은 나의 사랑을 전달하는 기표다. 그리고 기의가 기표와 결합하여 장미꽃은 ‘사랑’을 표현하는 기호로 탄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미꽃을 받은 사람이 선물한 사람의 의도를 올바르게 해석해야만 의미전달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의미의 해석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발생한다. 오늘 아침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초록 불의 ‘기표’를 보고, 통행 가능하다는 ‘기의’를 읽는 등,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매일 기호의 해석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일상을 기호와 연관 지어 분석하는 연구는 등장 당시에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언어학자이기도 했던 소쉬르는 문장 구조처럼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관계에서 의미가 생성되는 기호의 구조적 발견을 특히 중시했는데, 이후 등장한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기호를 복잡한 사회적 의미로 발전시킨다. 바르트에 의하면 기호는 일차적인 ‘지시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사회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함축적 의미’가 부가된다. 예를 들어, 기존 한국 사회의 ‘아버지’라는 기호는 ‘가부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IMF 구제 금융을 겪으면서 많은 아버지가 구조조정에 휘말려 일자리를 잃었고, 그 시절의 ‘아버지’는 ‘무능력자’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의 복합적인 관계도 파악해야만 기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다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기호학은 △광고 △뉴스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미디어 매체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일 사용하는 것을 중립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미디어는 표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내부에 교묘하게 이데올로기를 숨겨놓는다. 여기서 기호학은 미디어 콘텐츠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항상 인간의 해석이 개입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게 된다.
미디어 이데올로기를 분석한 사례 중 하나로 바르트는 프랑스 주간 잡지 <파리마치>의 한 사진을 문제 삼은 바 있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소년병이 어딘가를 향해 거수경례하는 사진이다. 하지만 사진이 실렸을 당시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는 식민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즉, 심층적으로는 흑인들도 프랑스에 충성하고 있으니 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정당하다는 이데올로기가 내포되어있다.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디어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확산은 주로 권력의 주체가 비 주체를 억압하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이미지를 해석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

바르트가 비판한 <파리미치> 표지
ⓒ<파리미치>제공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듯한 보도사진과 뉴스의 기록물들도 항상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다. 똑같은 사건을 다루더라도 ‘어떤 권력집단과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느냐’에 따라 보도 방향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과거 미국-이라크 전쟁에 대해 CNN 같은 서방 방송과 알자지르 같은 중동 방송 보도가 극과 극을 달렸던 것이 한 예이다.
사람들이 가볍게 즐기는 예능도 예외는 아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MBC 예능 ‘아빠 어디가’에는 공동육아를 실천하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기호학적 시선으로 보면, 오히려 성 고정관념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령 남아들의 스포츠 경기는 카메라가 *롱숏을 잡음으로써 그들의 활동성을 강조했지만, 여아들은 주로 먹는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귀여운 외모를 대상화하였다. 이러한 연출은 과격한 스포츠는 남아들이 즐기기에 적합하며 여아들에게는 적합지 않다는 성 고정관념을 드러냈다. 또한, 자녀의 정보를 알지 못해 앵글 밖 아내에게 질문하거나 아이들을 즐겁게 하려고 파자마를 입으며 ‘살다 살다, 이런 옷 처음 입어보네’라고 남성 출연진이 발화하는 장면은 육아가 연출된 상황인 것을 알리며, 모성 중심의 육아 이데올로기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비판적 수용의 필요성
하지만 권력과 자본이 현상유지를 위해 이데올로기가 담긴 기호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을 생산자의 문제만으로 볼 일은 아니다. 기호학자 퍼스는 하나의 기호가 수용자에 의해 해석되기 전까지는 기호가 아니라고 보았다. 하나의 기호가 기호로서 수용되는 과정에는 항상 수용자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수용자가 기호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은 기호의 유통을 허락하는 동시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위인 셈이다. 기호를 이용한 자본주의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인 ‘빼빼로 데이’는 아무 연관성이 없던 빼빼로와 사랑에 기호학적 연관성을 심어 소비자들의 비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더라면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최근 SNS를 통한 개인들의 정보 유통과 △아프리카 TV △유튜브 △팟캐스트와 같이 기존 수용자들이 곧 생산자로 활동하는 콘텐츠들의 사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추세로 볼 때 앞으로 수용자의 미디어 콘텐츠 구성과 의미생성에서 기호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오늘날 기호학의 나무는 다양한 학문 연구에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다. 현재 기호학계에는 공간에 대한 인식을 기호학적으로 접근하는 공간 기호학과 대세로 자리 잡은 ‘쿡방’, ‘먹방’과 관련된 음식 기호학이 새롭게 등장했다. 『문화기호학과 공간 스토리텔링』을 저술한 인하대 사회교육과 김영순 교수는 “인간 탐색의 유용한 도구인 기호학이 현대사회의 자본이 만들어내는 기호 마케팅 전략들을 읽고 파헤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전했다.

기사도우미

◇롱숏=피사체를 먼 거리에서 넓게 잡는 촬영기법.


 

 

 

참고문헌

◇참고문헌=미디어 그 기호학적 해석의 즐거움, 백선기, 2007.「육아 예능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부성성 연구 - MBC <아빠 어디 가>에 대한 기호학 분석」,『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이란ㆍ백선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