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현 기자 (skrtn1122@skkuw.com)

 

지난달 24일 오후 9시, 손을 아리는 찬 공기 사이로 수레 소리가 들려왔다. 수레 소리는 힘겹게 이어지다 어느 순간 멈췄다. 곧이어 들려오는 비닐끼리 부대끼는 소리, 더미 위에 무언가가 얹히는 둔중한 소리, 그리고 다시금 제 길을 가는 수레 소리. 갑작스러운 한파로 최저기온이 영하를 하회한다는 일기예보에, 약간의 늦저녁임에도 거리에는 드물게 사람이 모습을 비췄을 뿐, 한산했다. 텅 빈 거리를 메우는 것은 오직 저 소리들과 이를 만들어낸 쓰레기 더미 그리고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뿐이었다.
한때 기피직종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올해 환경미화원 공개채용 경쟁률은 △강릉시 15대 1 △대구시 21대 1 △제주시 27대 1 등 상당한 수치를 기록했다. 공개채용된 환경미화원은 각 지자체에 직접고용된다. 직접고용 환경미화원은 무기 계약직으로 지자체별로 복지와 여건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수입과 정년이 보장된다. 매년 사상 최대 실업률이 갱신되는 사회 속에서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이야기다. 모든 환경미화원이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는 직접고용 외에도 용역업체를 통해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을 간접고용하고 있다.

몸집보다 큰 쓰레기 더미, 홀로 분투
지난달 17일, 아직은 견딜만한 추위 속에서 환경미화원 A(59) 씨가 온갖 쓰레기봉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오후 8시에 출근해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쓰레기를 수거한다. 그의 업무는 자정이 넘어서 오는 쓰레기 수거차가 업무를 재빨리 할 수 있도록, 집집이 분산된 쓰레기봉투들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다. A 씨는 동복으로 지급된 야광 작업복을 입고 목장갑을 끼고선 수레를 끌었다. 꽤나 넓은 동네임에도 그는 혼자였다. 혼자서 수레를 끌고 혼자서 모든 쓰레기봉투를 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지정된 자리에 실어온 쓰레기 더미를 쌓아 올렸다.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덜컹거리는 커다란 수레를 이끌고 골목 끝과 끝을 분주히 오갔다.
오후 11시에 닿으려는 시간, A 씨는 해당 구역의 쓰레기 정리를 끝마쳤다. 몇 시간 뒤면 쓰레기 수거차가 와 모든 것을 실어갈 터였다. 그러나 A 씨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수레를 잡고서 옆 동네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서둘러야 했다. 쓰레기 수거차가 방금 그가 쌓아 올린 쓰레기 더미 수거를 끝마치고 옆 동네에 오기 전에, 이 동네의 흩어진 쓰레기봉투들을 모아 그의 몸집보다 훨씬 큰 쓰레기 더미를 다시금 쌓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없는 시간 쪼개고, 끼니를 거르고
조금도 쉴 틈이 없어 보이는 그에게 잠깐 말을 붙이기조차 힘들었다. 따뜻한 캔커피를 들고선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학생이라는 기자의 말에 잠시 일손을 멈췄다. 그도 그제야 겨우 담배를 꺼내 물고 잠깐이나마 숨을 골랐다. 그는 10년을 넘게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밤에 나와 작업하고 아침에 들어가 겨우 눈 붙이고 곧바로 나와서 또 일하고. 그 연속이지 뭐.” 지자체 직접고용 환경미화원은 주간에, 용역 환경미화원들은 야간에 작업한다. 구청 소속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직접고용 환경미화원은 오전 5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한다”고 밝혔다.
주간 직접고용 환경미화원과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은 업무도 다르다. A 씨는 “우리는 궂은일 하는 거지. 밤 동안 음식물, 일반, 재활용 쓰레기 다 수거하고 나면 아침엔 깨끗하잖아. 그럼 이제 그 사람들이 출근해서 거리를 쓰는 작업을 하지”라고 전했다. 실제로 구청에 따르면 주간 직접고용 환경미화원은 △거리 청소 △대형폐기물 쓰레기봉투 수거 △민원 처리 등의 업무를 맡는다. 그러나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은 사람들이 밤중에 내놓은 온갖 쓰레기봉투를 새벽이 밝아오기 전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 “가끔은 사람들이 쓰레기 여기에다 모으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해. 그런데 어떡해. 어딘가에 모아서 수거는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가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기자와 비슷한 또래의 남학생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곁으로 다가왔다. 따뜻한 녹차였다. A 씨는 “이 학생은 항상 나를 찾아다니면서 음료를 준다”며 환하게 웃었다.
기자는 A 씨를 몇 시간씩 며칠을 따라다녔지만 그는 너무 분주했기 때문인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화가 10분을 넘어서자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다시 수레를 들었다. 야간 환경미화는 밀도와 강도가 높은 작업이다. “쉴 시간은 정말 없어. 작업 시간 내에 마치려면 서둘러야 해. 일을 다 마치고 집에 가야 쉬는 거야.” 그는 근무 중엔 끼니도 거른다. 담배를 태우는 시간이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인 듯했다.

당연함 속에 묻힌 현격한 차이
“임금도 최저임금이지, 뭐. 주간에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적게 일해도 훨씬 많이 받아. 주간은 직접고용이고 우린 야간이여도 용역이니까.” 야간에 하는 고강도 작업임에도 그의 손에 떨어지는 돈은 세금을 제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는 “그래도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하고는 “근데, 인건비를 줄이려고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하도록 하잖아. 이게 굉장히 고돼. 계단 있는 곳은 수레가 올라가지 못해서 직접 일일이 다 날라야 해”라고 덧붙였다.
실제 청소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최저가 낙찰제도’가 흔히 사용된다. 사용사업주인 지자체 입장에선 파견사업주인 용역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용역비가 낮을수록 예산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용역비가 낮아진다고 해서 용역업체의 몫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토마토 노무법인 배연직 노무사는 “간접고용의 폐해가 여기서 여실히 드러난다”며 “용역비를 낮추면, 결국 용역 근로자들의 몫이 줄어드는 경향이 짙다”고 밝혔다.
정규직인 직접고용 근로자와 비정규직인 용역 근로자 간 임금 차이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무시간과 복지 및 작업 환경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실제 지난 10월, 금천구 소속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들은 파업을 시행했다. 주간 직접고용 환경미화원과 동일한 시간 동안 보다 강도 높은 업무를 해도, 임금은 겨우 그 절반에 미치기 때문이다. 현격한 격차는 당연한 차등으로 치환될 수 없어 보였다.
A 씨는 마지막으로 “우스갯소리로 우리끼리 그래. 여름엔 덥고 배고프고, 겨울엔 춥고 배고프고”라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네.” 그는 커다란 수레를 이끌고는 조금 더 차가워진 공기 속을 헤쳐 거리 끝으로 멀어져 갔다.

벼랑 끝에 매달린 근로 환경
날이 넘어간 오전 12시 37분,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선 골목으로 향했다. 이 작업은 2인 1조로 진행된다. 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더미를 차에 싣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운전사는 핸들에 기대어 쪽잠을 잔다. 불편한 운전석에 기대어 자는 그의 얼굴엔 피로가 완연했다. 밖에선 칼바람을 뚫고, 100L짜리 봉투가 쉴 새 없이 차에 실렸다. 음식점이 포화한 거리인지라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한쪽이 끝나자 쓰레기 수거차는 다시 길을 나섰다. 시간이 촉박해 쓰레기를 수거하던 환경미화원은 조수석에 타지 못하고 차 뒤편 적재함에 매달렸다. 차를 세우자마자 뒤에 매달렸던 이는 재빠르게 뛰어내려 쓰레기를 수거했다. 굉장히 위태로워 보이지만, 조수석의 턱 높이가 너무 높아 매번 오르내리다 보면 작업이 지체된다. 환경미화원 B 씨는 “빨리빨리 일해야 하니까 이게 편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3년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선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이 적재함에 매달려 이동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1년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의 「환경미화원의 작업별 산재 발생 형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산재형태에서 넘어짐과 떨어짐 또는 교통사고를 당한 비율이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주변의 용역 근로자, 그들의 현실
이러한 문제는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토마토 노무법인 배연직 노무사와 유연주 노무사는 “간접고용 형태인 용역 근로자들이 계약자와 사용자가 다르기에 겪는 문제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사용사업주는 파견사업주를 선정해 그로부터 용역 근로자를 소개받는다. 용역 근로자는 파견사업주와 계약해 임금을 받지만, 실제 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곳은 사용사업주다. 이러한 모순이 용역 근로자들의 근로 환경을 위태롭게 한다. 배 노무사는 “용역을 사용하는 이유가 용역 근로자에 대한 책임을 낮추고 관리를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용역 근로자의 근로 환경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개선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지켜지기 힘든 이중적 구조”라고 전했다.
유 노무사는 야간 용역 환경미화원과 같은 대다수 용역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며, 유사 사례들을 언급하였다. 배 노무사는 특히 24시간 종일 근무하는 경비 용역 근로자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근로기준법 제63조 제3호에 따라 사용주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 *감시·단속적근로자에게 주휴수당 및 연장·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경비 용역 근로자가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비 용역 근로자가 밤에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 오면 대꾸해야 하고 민원이 들어오면 처리해야 한다”며 “그런데 근로계약서에선 야간 시간에 휴식시간을 늘려버린다”고 지적했다. 휴식시간엔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주간보다 1.5배 높은 야간수당마저 지급하지 않기 위한 편법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배 노무사는 최근 맡았던 산재 사건을 예시로 들며 “숙소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배 노무사는 과로가 누적돼 사망한 경비 용역 근로자의 산재를 입증하기 위해 그가 일하던 곳을 찾았다. 건물 안 휴게실에 도착한 그는 경악했다. 사망한 근로자의 휴게실은 지하 3층 정화조 옆에 위치했다. 배 노무사는 “악취가 나서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며 “여름엔 물이 넘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 결국 돌아가신 근로자는 번쩍이는 네온사인 빛이 여과 없이 들이닥치는 좁은 초소에 몸을 구기고 앉아 쪽잠을 청했다”고 설명했다. 용역 근로자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 처참해 오히려 실존하지 않는 세계인 듯했다. 배 노무사는 “근데 이게 현실이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용역 근로자,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를 위해
배 노무사와 유 노무사는 전체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정책적으로 법의 개선과 철저한 감리감독 △사회적으로 시민의 관심 증대와 노동법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근본적으로 노동자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배 노무사는 “법이 바뀌려면 시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노무사는 “우리 사회는 노동력에 대한 충분하고 정당한 지급이 이뤄지는 사회로 발전하지 못했다”며 “비용절감에 얽매여 정당한 지급은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배 노무사와 유 노무사는 “결국 사용자와 계약자가 분리된 이중적 구조가 단일적 구조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동의 기본은 안전이고 이 안전이 지켜지는 것이 근로 환경 개선의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 배 노무사는 “우리 법인에 들어오는 용역 근로자의 산재 사건은 대부분 사망사고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두려워 결국 사망 후 유족들이 상담해온다”며 “사회가 힘을 실어주고 노동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장기적으로 더욱 개선된 환경이 갖춰진다”고 말했다. 유 노무사는 “대학생들은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양해야 한다”며 “우리 모두 노동자로서의 삶을 직면하고 있다. 이는 전체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기사도우미

◇감시·단속적근로자=아파트 경비원이나 주차관리원과 같이 감시(監視)나 단속(斷續)을 주요 업무로 하는 근로자를 지칭하며, 줄여서 '감단근로자' 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