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강운 곤충학자

기자명 문관우 기자 (ansrhksdn@skkuw.com)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애벌레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모습이 징그럽다고 여기거나, 혹은 농작물을 갉아먹는 해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애벌레의 남다른 가치를 알아보고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애벌레 연구에 파묻힌 사람이 있다. 아파트 안에서 직접 나비와 잠자리를 키워본 적도 있다는, 바로 유일무이한 애벌레 전문가인 곤충학자 이강운 씨다. 그의 연구소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가 자리한 강원도 횡성의 깊은 산골에 찾아가 그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문사에서 근무하다가 곤충학자로 탈바꿈한 계기가 궁금하다.
동아일보 문화기획부 소속 당시에 ‘전국 자연 생태계 학습탐사’의 단장을 맡아 활동한 적이 있었지. 1년에 두 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생물선생님들, 지도 교수와 함께 말 그대로 전국의 생태를 탐사한 거야. 탐사 기간인 4박 5일 동안 더위, 추위와 싸우느라 남들은 싫어할 법도 했겠지만 나는 생태계 탐사가 그렇게 재밌더라고. 그리고 탐사가 끝나면 매번 논문 수준의 보고서를 써야하는데, 당시에는 전문가 수준이 아니어서 보고서 작성이 힘들었어. 그래서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고 싶어서 생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 그렇게 생태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때, 지도 교수님들로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보존생물학을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받았어. 사실 탐사를 하면서도 같은 곳의 환경이 점차 훼손되는 현실을 느끼고 있었거든. 그렇게 본격적인 생물학도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특히 곤충에 집중하게 됐지. 왜냐하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한 종류지만 곤충은 약 200만 종이 넘는 위대한 분류군이라고 생각해서야. 그래서 지구는 곤충의 행성이라고들 얘기하는 거지.

곤충생물다양성 연구센터 내부에 있는 애벌레 사육장.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생물 연구를 위해 강원도 산골에 직접 대규모의 연구소를 짓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처음부터 연구소를 세우겠다고 한건 아니었어.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에 대학 교수가 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그런데 첫째 아들이 자기는 죽어도 영국에 안가겠다는 거야.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 되더라고. 그렇다고 나 혼자 유학하겠다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6개월 만에 영국에서 돌아왔지. 돌아와서 이제 직장도 그만뒀는데 굶어죽으면 어떡하나 고민하던 차에, 내가 예전부터 꿈꿨던 일을 떠올렸어. 사실 영국 유학은 차선이었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생태, 즉 곤충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널리 공유하는 거였거든. 그러면 사람들이 자연이나 환경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저절로 깨닫게 될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수질이 좋고 곤충 종류가 풍부한 강원도 산골에 장소를 물색했지. 그곳에 내 곤충 연구소와 사람들이 방문 체험할 수 있는 생태학교를 동시에 지었어.

곤충 연구 중에서도 특히 ‘애벌레’에 파고든 이유는.
곤충이 알에서 깨어나서 허물을 벗고 어른벌레가 돼서 죽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애벌레 상태야. 왜냐하면 애벌레 상태가 곤충의 삶에서 가장 긴 부분을 차지하는데다 다른 동물들의 주된 먹이가 돼. 조류의 90%가 애벌레만 먹어. 그래서 애벌레가 없다면 생태계 구조 전체가 무너지는 거야. 그리고 농업 해충이나 산림 해충도 대부분 애벌레야. 이렇게 애벌레가 중요한데 그동안 연구자가 없었어. 왜냐면 단기간에 특별한 성과나 돈이 나오는 연구가 아니거든. 나처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연구지. 특히 애벌레 연구가 가치가 있는 건, 다양한 분야에서 접목할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해서야. 예를 들면 애벌레가 신약 제조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거지. 그동안 신약은 주로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많이 개발됐는데, 그 식물을 먹고 사는 애벌레가 지닌 독성 식물 해독 효소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한다면 그건 또 얼마나 값어치 있겠어.

곤충박물관 외부 전경.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지금 키우고 있는 수많은 애벌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애벌레는 무엇이며 이유는.
전부 다 애착이 가지(웃음). 하지만 그중에서도 붉은점모시나비에 대한 얘기는 해주고 싶네. 내가 생각하기에 워낙 특별한 곤충이니까. 내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를 복원 증식하면서 걔네들의 특별한 생리를 발견했어. 그게 뭐냐면 그 애벌레가 영하 48도까지 견디는 *내동결성 물질을 지니고 있다는 거야. 나중에 이 물질의 전체 염기소를 분석함으로써 어떤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지는지 밝히면 네이처같은 유명 학술지에 실릴 가치가 있는 것들이지. 다른 나비와는 다르게 이 종은 약 190일을 알 상태로 있다가 한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초에 부화하게 돼. 3월에는 애벌레가 된 뒤 5번에 걸친 탈바꿈을 하며 자라 마침내 번데기가 되어 어른벌레로 날아오르는 거지. 추운 겨울에 먹으면서 발육하는 애벌레는 이 종이 유일해. 그리고 이 종은 추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만약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거나 한다면 제일 위협을 느끼는 종이 이런 종이지. 그동안 이 나비가 추운 곳에 사는 한지성 나비인 것은 모두 알았지만, 왜 한지성 나비인지는 내가 밝혀낸거야. 이런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지.

연구소 이름이 ‘홀로세’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들 홀로 애벌레 연구한다고 ‘홀로세’인줄 알아. 그게 아니라 1만 5000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신생대 4기를 ‘홀로신(Holocene)’이라고 하는데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생태계를 염두에 둔 거지. 언젠가 지리산을 조사하러 갔었는데 종주도로를 만들면서 산을 다 깎아서 붉은 황토가 다 드러났어. 그걸 보는데 마치 산이 피를 흘리는 것 같더라고. 훼손된 산의 모습이 참 안타까웠지. 이렇듯 현재의 생태학적 위기가 너무 심각하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은거야.

붉은점모시나비의 5령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최근 『캐터필러Ⅰ』이라는 도감을 펴냈다. 어떤 내용인가.
나비와 나방의 애벌레를 따로 캐터필러(caterpillar)라고 불러. 그래서 이번에 출간한 책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나방 애벌레 153종을 수록했어. 애벌레의 형태나 먹이식물, 색상, 알, 번데기 어른벌레의 모습 등의 정보를 총망라했지. 어른벌레와는 달리 애벌레에 대한 정보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지난 20여 년 간의 애벌레 연구가 집약된 이 도감은 굉장히 유용한 학술적 자료가 될 거야.

애벌레 연구와 같은 기초 연구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미비한 것 같은데 연구자로서의 생각은.
애벌레 연구는 지루한 마라톤과 같아. 기초 과학인데다 생물을 다루는 연구이기 때문에 긴 시간이 필요해. 생물학을 시간의 학문이라고도 하잖아. 그래서 이런 연구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어려워. 그래서 아직까지는 국가에서 이런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현재는 멸종위기종 증식을 위해 국가에서 운영자금의 50%를 보조 해주고 있는데, 나머지 50%는 다른 국가 프로젝트나 강의료 같은 내 개인 비용으로 벌어 충당하고 있지.

붉은점모시나비의 5령 어른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앞으로 기초 과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모범적 사례로 남는 것이 꿈이야. 현재 내 연구소에 8명의 연구원이 있는데, 애벌레 연구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연구원을 양성할 예정이야. 최근 서울시와도 생태 관련 사업을 꾸준히 논의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생태에 쉽게 다가갔으면 좋겠어.

기사도우미

◇보존생물학=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종 보존을 위해 연구하는 과학 분야이다.
◇내동결성=빙점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도 견디며 생존할 수 있도록 적응된 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