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만남 - 손원표(토목공학 74) 동문

기자명 황준령 기자 (hwangjr@skkuw.com)

 

사진 | 유민지 기자 alswldb60@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지는 길.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길.
공학 지식에 인문학적 감성을 더해 가는 그.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그려가는 손원표(토목공학 74)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연 속에서 책을 읽던 어린 시절
손 동문은 어릴 적 자연 속에서 놀았던 경험 때문에 자연과 가까운 토목공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데미안처럼, 싯다르타처럼 흐르는 물에 종이배도 띄어보고 그랬어요. 자연을 즐기고 산책하면서 책의 주인공이 되어 보곤 했죠.” 그는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이사하면서 친구가 많이 없었다. 객지에서 고독하다 보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릴 적 풍부한 독서와 충분한 사색이 현재 그의 창의력의 원천이 되었다. “자연을 좋아해 산이나 강으로 다니면서 생각에 잠기곤 했었죠. 그러다 보니 기계공학이나 건축보다는 자연과 가까운 게 토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택하게 된 거예요.” 

여러 분야를 넘나든 대학 생활
“70년대만 해도 토목공학을 공부한 사람이 별로 없었죠.” 손 동문은 그때는 가르칠 사람이 없어 서울 시내 각 대학교수들이 품앗이로 강의를 많이 했었다고 설명했다. “저는 건축과 과목도 많이 들었어요. 한국 건축사, 서양 건축사 등.” 건축에 대한 이때의 관심은 훗날 그의 책 『돌아오는 날』과 『자연과 역사, 문화가 깃들어 있는 길』 안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이 두 책에서 어느 공간에 얽힌 그의 추억을 소개하고, 자연과 인공물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하고 어떻게 더 발전시켜 적용할 수 있을지도 서술했다.   
그는 전공 수업뿐만 아니라 전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수업들도 많이 들었다. “불문과 수업도 재미있었죠. 불어를 꽤 잘했어요.” 제2외국어로 불어를 했고, 영어보다 불어를 잘했다는 그는 공과대학을 다녔지만, 문학이나 예술 쪽으로도 관심이 많았다. “토목공학 말고도 건축, 인문, 미술, 불어 같은 다른 분야도 공부했었어요. 생활미술학과의 한국미술사 같이 생뚱맞다 싶은 과목도 들었었죠.” 이처럼 그가 전공 말고도 다른 과목을 많이 들은 이유는 어릴 적의 경험들 때문이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혼자 나무 아래 앉아 책을 읽다 보니 인문학 쪽에도 자연스레 눈이 갔다며 웃었다. “역사도 좋아했어요. 책도 정말 많이 봤죠.”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특히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고 있었다. “한국통사, 난중일기 등 역사책을 많이 읽었고 또 지금까지 가지고 있어요. 그런 책들을 탐독하고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 답사도 했습니다. 울돌목이나 한산도 답사도 많이 했죠.”
손 동문은 대학생일 때 여러 분야를 공부한 것뿐만 아니라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려왔다. “대학 때 스케치한 노트를 다 가지고 있어요. 그때부터 섬세하게 관찰하는 걸 좋아했죠”라며 보여준 그림은 수준급이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자연을 관찰하다 보니 표현해내고 싶어져 스케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자연을 보고, 책을 보고, 사색하면서 많은 생각이 드니까.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보니 시를 쓰게 된 거예요.” 평소에도 자신의 감흥을 어떻게 글로 담아내어 시로 나타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시집을 150권가량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시를 많이 읽게 되었다. “시를 쓰는 창작의 순간엔 잡념이 없잖아요. 그런 과정을 거치니까 정신이 맑아질 수밖에 없죠. 정신이 맑아지면 몸의 피로도 사라져 같이 맑아지는 거죠.” 그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대학 때부터 시와 그림에 대해 공부를 하고 꾸준히 습작해 왔다. 이와 같은 대학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졸업 후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박 동문이 그린 도로 스케치.
사진 | 유민지 기자 alswldb60@

길 전문가가 되어
손 동문은 졸업 후 건설회사에서 들어갔지만, 현재의 교통 영향을 분석하고 개선 대책을 수립하는 기관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가 자연이 좋아 토목공학과를 선택했듯 더 가까이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그 사이에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도로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도로를 직선으로 내던 기존의 방법에 더해 친환경적인 기법, 경관 기법, 인간 중심적인 관점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도로를 설계하고 기존 도로를 개보수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그는 ‘스토리가 있는 공간’을 꿈꾸며 주변 자연환경을 파악한 후 그 지역의 역사나 문화재를 조사하여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도로를 설계하고 있다. “제일 재미있을 때는 제가 설계한 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과 차별화될 때입니다.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요.” 그는 차별화를 위해 친환경 도로, 경관 도로, 인간 중심 도로에 집중해왔다. 최근 그는 인간 중심 도로에서의 보행 정비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거리를 이어 주는 거죠. 도로 남북과 동서가 만나는 결절점에서 사람들이 모이거든요. 그곳에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행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는 보행자가 걸어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간을 이어주는 도로를 그려가고 있었다. “온 사람들을 어떻게 이어지게 할지 고민하죠. 자연과 함께하고 현대와 미래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겁니다.”
손 동문은 보행 정비 사업을 설명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도로를 설계하는 일이 △교통 △도시 △계획 △역사 △문화까지 모두 다루는 융합 프로젝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프로젝트는 한두 개 분야의 기술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전공에 대해 잘 알면서도 주변 유관한 분야의 다양한 소양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는 공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예술까지 습득했기 때문에 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고, 이후 대표적인 도시 융합 프로젝트인 광화문 광장 조성에도 참여했다. “경관 도로도 마찬가지예요. 공학, 인문학, 예술이 어우러져 감각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일반적인 기술자는 잘 와 닿지 않으니까 실현을 못 하는 거죠.” 그가 대학생일 때 관심을 가졌던 문화, 역사에 관한 책들, 그림과 시를 통해 표현했던 방법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손 동문은 융합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지식을 얻는 과정에 도움이 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바로 살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단 것이었다. “자신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걸 인식하는 자체가 그만한 여력이 있을 때 보이는 거거든요.” 그는 지금과 같은 여력을 가지기까지 30년 이상 한 분야에서 부단히 노력해 잠재력을 키워왔다. “나 자신에게 여유나 잠재력이 없을 땐, 여유 있는 공간이 있더라도 자기 걸로 못 만드는 거예요.”

박 동문이 쓴 책과 글.
사진 | 유민지 기자 alswldb60@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손 동문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을 때 큰 변화가 찾아온다고 전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 길을 길이라고 하면 이미 길이 아니다. 우리가 80km/h로 가라고 해도 사람들은 맞춰서 안 가거든요. 길을 달리는 사람이 80km/h로 달려야겠다고 생각해서 80km/h로 가게 만드는 길. 그게 제대로 된 길이죠.” 이와 더불어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 결합한 도로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저 혼자 말해서는 안 되고, 여러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서 퍼져나가야 하니까요.” 그는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때 가장 힘들다고 얘기하며 앞으로도 계속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세미나, 토론회, 포럼 등을 열며 노력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는 우리 학교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 꾸준히 기부를 해왔는데, 동문들이 학교에 애착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작은 부분을 섬세하게 신경 써서 동문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기부할 계기를 마련해 줘야 해요. 재학생들도 선배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동문들도 학교에 애착을 가질 때 애교심이 늘어나는 거니까요. 서로 어우러져 가야 해요.” 마지막까지 그는 도로를 설계하듯 후배들과 우리 학교가 나아갈 길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