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곽윤선 기자 (dbstjs1106@skkuw.com)

시골 주택에 살았던 어렸을 적, 집 마당의 나무와 텃밭은 내게 즐거움의 장소였다. 봄에는 따스한 마당에서 사다리를 올라가 시큼한 앵두를 따먹는 게 나의 일상이었으며, 더운 여름엔 시원한 강에서 다슬기를 한 소쿠리 모아 푹 삶아 먹기도 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만큼 마당에 감과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추운 겨울이 끝나갈 때 즈음 텃밭 주위에 나는 쑥과 냉이는 좋은 별미였다. 이번 자연인 특집의 체험기를 위해 찾아간 영월 산골은 바쁜 서울 생활에 지친 나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영월 산골까지 가기 위해선 지하철로 1시간, 고속버스로 영월까지 2시간 반, 영월터미널에서 1시간을 가야했다. 총 4시간 반의 이동거리는 처음엔 ‘이 정도 시간이면 고향을 내려가는 게 낫겠다’하는 생각이 날 정도로 지루했으나, 영월 시내에서 산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어릴 적 고향 생각에 두근거렸다.

영월에서의 하루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것으로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눈이 가던 스마트폰은 산 속에 도착하는 순간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선선한 바람, 맑은 공기, 적막한 산 속에 울리는 새 소리는 바쁜 세상 이야기로 나를 잡아당기는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나를 슬며시 이끌었다. 산책을 하다가 느지막한 오후에 냉이를 캐려고 손에 쥔 호미는 정리되지 않은 흙냄새가 났다. 추운 날에 땅이 얼어 냉이를 찾기도, 캐기도 어려웠지만 왠지 모를 즐거움에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처럼 땅에 간간히 뿌리내린 냉이를 찾는 것이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후배 기자가 어떻게 그 많은 풀 중에서 냉이를 찾아냈냐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의 나고 자란 배경과 경험에 따른 차이를 새삼 깨달았다. 식탁에서,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깨끗한 냉이의 모습은 흙과 돌멩이 속에서 깃털 모양의 잎을 가진 그것과는 달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쉽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강과 텃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산골에서의 밤은 오랜만이었다. 밤이 돼도 형형색색의 빛이 피어오르는 도심과는 달리 영월의 밤은 새까만 암흑 그 자체였다. 새삼 옛 조상들이 전기 없이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져 돌담 밑에서 촛불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빛이 없어서인지 구들장에 몸을 눕히자마자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영월에서의 하루는 서울에서 바쁜 하루와 매일 매일의 경쟁으로 인해 무기력함을 느끼고 자신감을 잃었던 내게 과거를 돌아보며 한숨 내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었다. 자연인 특집의 기사에서 나는 자연을 찾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자연에서 찾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나 또한 자연으로 간 사람들 중 한 명으로서 ‘보물을 찾으러 자연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자연에 있다 보니 보물을 찾았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