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허명구씨 방문기

기자명 김아영 기자 (kay8949@skkuw.com)

“어디가세요?” “저놈의 말벌이 우리 일벌을 해치려고….” 자연인 허명구(67) 씨는 말벌 아저씨로 유명하다. 그는 산이 좋아 겨울에도 새벽 두시에 등산을 다니고 홀로 외진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진정한 자연인이다. 누구보다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사랑하는 그를 만나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Ⅰ이호성 기자 doevery@

허 씨의 집은 강원도 깊은 산골에 위치하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을 달렸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에서 푸르른 나무와 산으로 바뀌어갔다. 차에서 내려 아직 채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와 진흙으로 덮인 비포장도로를 15분가량 걸어서야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핸드폰 통신은 두절되었고 울창한 나무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서울생활만 30년, 자연인으로 다시 태어나다

허 씨의 고향은 강원도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 밑에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 상경해서 건설현장의 목수로 일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점차 그의 정신적 여유를 뺏어갔고 결국 허명구씨는 30년간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귀향을 결심하게 되었다. “다니다가 싫증나니까 들어와 버렸지”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굳이 목수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고향에 내려와 지금 살고 있는 산 속에 자리 잡은 지 이제 어언 10년째다.

깊은 산 속 자연인의 생활을 들여다보다

흔히 사람들은 자연인이라고 하면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하며 여유로운 삶을 즐길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허 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산 속에서 그의 일 년은 크게 양봉, 텃밭 농사, 등산으로 채워진다. 먼저 꽃피는 봄이 되면 분봉을 시작한다. 그는 양봉한 꿀을 판매하고 있는데 본인이 키우는 꿀벌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가을이 되면 말벌 소탕하기에 몰두한다고 한다. “가을에 꿀 빼먹으러 오기 때문에 가만히 두면 안 되지.” 그는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말벌을 알아보고 이를 일일이 손으로 잡는데 잡은 말벌들로 말벌주를 만들어 종종 선물하거나 마시기도 한다. “없어서 못팔지” 라며 그는 고생해서 만든 꿀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양봉과 더불어 그를 바쁘게 하는 것은 텃밭 농사이다. “그냥 놀기엔 심심하니까” 라며 농사를 짓는다는 그는 수수, 들깨, 감자 등 여러 가지 작물들을 혼자 심고 추수까지 하고 있다. 꽤 넓은 땅을 혼자 농사짓는 게 힘들진 않냐는 질문에 그는 “힘들지만 그냥 하는 거지”라며 도시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농사지을 때 오히려 힘이 덜 든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등산은 허 씨의 취미생활이다. 그는 틈만 나면 산에 올라가서 산책을 하거나 눈에 띄는 나물을 캔다. 겨울에도 장화를 신고 산으로 향한다면서 “눈 없을 때 두 발자국 걸을 거 한 발자국 가면 돼”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왔다. 그와 형제처럼 지내는 이웃사촌 김정선씨는 그에 대해 “산에서는 선수야 선수, 못 쫓아가. 별명이 뻐꾸기라니까”라며 그가 얼마나 산을 많이 올랐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는 10년간의 자연인 생활로 크고 작은 생활 속 지혜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웃 주민 김경화씨는 처음 이곳에 정착할 때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처음 자연 속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그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조용하게 사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15분을 걸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 혼자 사는 삶이 외롭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외로울 일이 전혀 없다”며 웃었다. 그는 가끔씩 지인으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평소에는 외부와의 왕래가 거의 없는 편이다. “볼일이 없으면 안 나가지.”

자연인의 집으로 가는 길.
사진Ⅰ이호성 기자 doevery@

“여기보다 좋은 데가 없어”
  자연을 찾는 사람들

허 씨처럼 자연이 좋아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년 전 그의 이웃사촌이 된 김정선, 김경화 부부는 원래 인천 도심 속에 살았다. “7년 전에 이 땅을 사놓고 전기도 없어 300만 원짜리 발전기 돌려가면서도 주말마다 여기 내려왔지. 왜? 자연이 좋았으니까”라며 자연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해주었다. 김정선 씨는 “이제 인천을 가도 하루저녁을 못자”라고 덧붙였다.

김 씨 부부를 제외하고도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방영된 이후로 그의 집 주변으로 이주한 가정도 여럿 생겼다. 또한 한창 철이라는 고로쇠 수액을 얻기 위해 산행에 오른다는 도시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건강을 위해 자연을 종종 찾고 있다고 한다.
 허명구 씨가 식품저장고로 사용하는 토굴.
사진Ⅰ이호성 기자 doevery@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

도시와 비교해 자연 속에서 생활할 때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공기 좋은데서 사는 게 제일 좋지. 이런 데서는 오히려 일하면서도 여유가 생기기도 해”라며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첫째로 꼽았다. 또한 그와 김정선 씨는 자연 속에서 살면서 신체적으로도 훨씬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김정선 씨는 “처음 산에 올라갈 때는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산에 아무리가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영하 3도의 추운 날씨였음에도 “이 정도는 완전히 봄이지”라며 반팔을 입고 있었다. 이런 모습에서 도시인과는 다른 건강함이 느껴졌다. 자연을 떠날 계획은 없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정선 씨는 “여기에서 떠날 생각은 전혀 없어”라며 자연에 깊게 매료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자가 만난 자연인들은 자연 속의 삶에 매우 만족하며 자연인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도시에서만 21년을 산 기자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연에서의 삶을 그려보았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