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지승호 작가

기자명 백미경 기자 (b.migyeong@skkuw.com)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말을 기록하기 위해 16년의 세월을 달려온 사람이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52) 작가다. 그는 지난 16년간 45권의 인터뷰집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다. △강신주 △김어준 △박원순 △박찬욱 △신해철 △유시민 △표창원 등 그가 만난 사람만 해도 300여 명이 넘는다. 그는 “내가 계속 인터뷰를 해온 이유는 다음에는 더 좋은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어는 기록자’라는 신념으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인터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사진 | 최원준 기자 saja312@

인터뷰어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 웹진 <시비걸기>를 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 2000년 <인터넷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던 중, 우연히 ‘인터뷰 글’을 쓰게 됐죠. 얼떨결에 다른 기자의 인터뷰에 동행했는데, 그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인터뷰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2001년엔 7개월 동안 여성 주간 신문 <우먼타임즈>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어요. 이후 직장을 그만두면서 전문 인터뷰어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인터뷰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면서 자연스레 인터뷰어가 된 거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데 두려움은 없었나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제가 딱 그랬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도 받고 어느 정도는 먹고 살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힘든 시기에는 종종 ‘다른 도전을 하지 않고 본인만의 길을 가다 보니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화도 나지만 절반은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매체에 소속되지 않고 단행본을 통한 인터뷰 작업을 고집했어요. 이로 인한 어려움은 극복해야 할 부분이고 현재까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일을 시작했을 때 작은 포부를 품고 있었을 것 같은데, 기억하시나요.
현시대의 기록을 많이 남기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어요. 저는 그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어라는 길이 힘들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저는 기록 그 자체를 남기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요. 그래서 현재까지 이 일을 해오고 있어요. 저의 롤모델은 사마천과 정약용이에요. 그들은 당대엔 정치적 패배자로 남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시대의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저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요. 지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이 길을 걷다 보면 이후에 노력을 인정받으리라 믿어요. ‘내가 남겨놓은 기록을 통하지 않고는 현시대의 사람들을 해석하기 쉽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마 이런 자부심이 없었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초창기에 섭외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에피소드가 있나요.
초기에는 주로 좌파 지식인 인터뷰를 했어요. 그랬더니 ‘똑똑한 사람들 만나서 날로 먹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작업하기로 마음먹었고 영화감독들을 인터뷰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섭외가 될 리가 있나요. 영화 쪽에 아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감독과 관객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사회에 매일 찾아갔어요. 시사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감독님께 책을 드리면서 섭외 요청을 했어요. 성격이 적극적인 편이 아니라 시사회를 갔다가 책을 못 드린 적도 많았어요. 어떤 날은 영화관 옆자리에 김지운 감독님이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 영화가 끝난 후 서울극장까지 미행했다가 ‘이게 무슨 짓인가’라며 포기한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류승완 감독님 영화 시사회에 갔는데 김 감독님이 계시길래 붙잡고 책을 드렸어요. ‘저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인터뷰 좀 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메일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메일을 보낸 후엔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렸죠. 일주일 째 답장이 오지 않아 괜히 혼자 화가 나서 다시 메일을 보내려고 했어요. ‘인터뷰를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라는 식으로 약간 거칠게 썼죠(웃음). 메일을 전송하려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메일함에 다시 한번 들어갔는데 답장이 와 있는 거예요. ‘한국에서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 인터뷰를 하겠다’고 답해주셨어요. 만약 홧김에 메일을 전송했더라면 인터뷰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넥스트의 보컬 신해철 씨와 7번의 만남 끝에 『신해철의 쾌변독설』이라는 인터뷰집을 냈어요. 당시엔 몰랐는데 신해철 씨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 이 양반이 나에게 참 큰 의미였구나’라고 깨달았어요. 기억이라는 게 당시에는 희미하다가도 나중에 꾸깃꾸깃해지는 장면들이 있잖아요. 그런 장면들을 계속 되새김질하게 돼요. 인터뷰를 마치고 넥스트 멤버들과 음악을 들으며 그가 좋아하는 코냑을 함께 마신 날도, 신난 마음에 합주실에 가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 경험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세상에 어느 누가 넥스트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러보겠어요(웃음).

가수 신해철 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 『신해철의 쾌변독설』
ⓒYES24 제공

문답식 인터뷰를 활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인터뷰예요. 단어만 바뀌어도 인터뷰이의 말이 정반대의 뜻으로 전달될 수 있어요.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데 타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문답식 인터뷰를 통해서 인터뷰이와 나눈 대화를 대부분 싣는 편이에요. ‘길어서 지루하다’는 평을 받을 순 있겠지만 인터뷰이의 생각을 왜곡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요. 인터뷰어로서 느끼는 자부심 중 하나는 인터뷰이에게 ‘이건 틀렸어’라고 항의받은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의도치 않게 인터뷰이의 말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어떻게 인터뷰이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나요.
저도 인터뷰이의 마음을 완벽하게 전달하진 못해요. 다만 크게 벗어나지 않을 뿐이죠. 인터뷰이의 입장에 서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유추하세요. 그리고 최대한 그 생각과 가깝게 쓰는 것이 좋아요. 사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민망한 마음에 바보 같은 질문은 빼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신해철 씨와 인터뷰를 했을 때 횡설수설하면서 질문 4개를 연달아 한 적이 있는데요. 신해철 씨가 딱 한 마디 했어요. ‘질문이 너무 복잡해요’ 인터뷰어로서는 망신스러운 일인데 저는 그 이야기까지 인터뷰집에 실었어요. 사람들도 재밌어하고 인터뷰이에게도 신뢰감을 줄 수 있거든요. 『신해철의 쾌변독설』이 발간되고 신해철 씨가 여성지와 인터뷰를 했을 때 ‘지승호 씨는 신뢰로 열려 있는 인터뷰어죠. 저 양반이 사생활을 물어봐도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대답하게 돼요’라고 말했어요. 저에겐 참 고마운 일이죠. 인터뷰를 잘한다는 평가보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평가가 더 와 닿아요.

현재까지 인터뷰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인터뷰로 책을 쓰려면 인터뷰이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대화를 나누고, 녹취 작업과 교정을 거쳐야 해요. 쉬운 작업은 아니죠. 그런데 '남의 말이나 받아 적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대표적인 인터뷰어들 중 한 명이 됐는데 인터뷰에 대한 편견을 깨지 못한 거죠.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인터뷰라는 일이 상당히 재밌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기록 남기는 일에 열심히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혹시 제가 일찍 은퇴하더라도 기억해주셨으면 해요(웃음). ‘그래도 저 아저씨가 꾸물거려서 조금 나아진 부분은 있구나’라고요.

15년간 전문 인터뷰어의 길을 걸어온 작가의 인터뷰론을 담은 책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특강』.
ⓒYES24 제공

작가님에게 인터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인터뷰어라는 길을 선택하고 굉장히 외로운 시간을 보냈어요.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뷰에 대한 폄하를 들을 때는 참 씁쓸했어요. 그럴 때면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어요. 어느 날 후배를 만나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을까?"라고 하소연하니까 그 친구가 무심코 대답하더라고요. ‘그냥, 운명이 아닐까?’ 운명이라는 단어가 아주 식상한 단어잖아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쿵’했어요. 막막해 보이는 이 길을 아직도 걸어가는 건 아마도 인터뷰가 저의 운명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앞으로 더 성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인터뷰어로 활동하면서 ‘100권의 인터뷰집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현재까지 45권을 작업했으니 거의 절반을 달려온 거죠.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못했던 사람들도 많고 젊은 사람 중에서도 인터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나타날 테니까요. 앞으로 이 일을 하면서 15년 내지 20년 동안 또다시 남은 절반을 달려가고 싶어요.

표창원 전 교수와 인터뷰 중인 지승호 작가. 2013년 한국 범죄학에 대해 나눈 대화를 엮어 『공범들의 도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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