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마을 단위 공동체는 도시의 등장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동시에 인간의 사회활동은 친교보다 계약관계를 중심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계약과 친교 사이 구분이 모호하다. 계약 당사자 간 신의성실의 원칙이 확대 해석되고 계약관계의 냉정함을 불편해 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한국적인 '정' 문화라 부르기도 한다. 비선실세 문제의 핵심은 공공의 문제에 사적인 친교관계가 개입했다는 것에 있다.
대통령과 국민은 친교관계가 아니다. '좋은 의도'였다는 핑계가 통할 수 없는 이유다. 공공의 문제에 정이 개입해선 안된다는 대원칙을 저버린 탓이다. 비선실세 문제가 이번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국가와 국민 사이 관계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좋게좋게, 주먹구구로 해결하는 문화는 사적인 자리에서면 족하다. 계약관계에서 대리인은 관행, 선의와 같은 모호한 언어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한국의 공직 사회에서 계약의 냉정함이 지켜지지 않는 원인은 다양하다. 첫 번째가 정 문화라면 두 번째는 권한의 집중이다. 많은 권한은 많은 계획으로 돌아온다. 계획은 더 큰 계획으로 이어지며 가장 큰 계획을 책임지는 곳엔 제왕적 대통령이 자리한다.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된 권력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임금과 백성쯤으로 혼동하는 원인이다. 정권을 불문하고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란 불평이 쏟아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계획은 이상이다. 더 많은 국가의 개입과 계획을 요구하는 주장은 지적으로 유능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정부 또는 지도자를 가정할 때에만 타당하다. 비선실세의 존재는 그 가정이 허구에 불과한 원인이자 결과다. 대통령 개인이 그만한 능력이 없기에 비선실세를 두게 되지만, 사적 관계를 끌어들인 대통령이 도덕적일 수도 없다.
87년 체제는 현 정권 들어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수차례 정권이 바뀌며 단 한 번도 친인척 문제와 비선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정부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공직자의 청렴만큼 중요한 것은 권력 집중의 방지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바뀌지 않고서야 5년간의 임기는 타락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부패 문제는 더 청렴한 후보자로 대체하기보다 더 나은 권력구조로 방지하는 것이 현명한 해결책이다.

 

두립성(신방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