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주성 편집장 (qrweuiop@skkuw.com)

우리 신문사에서는 기자단을 대상으로 벌점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개 회의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주어진 시간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벌점을 받게 된다. 신문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들을 지키지 않았을 때 벌점을 받게 되지만, 그럼에도 기자들의 부담은 상당해 보인다. 규정으로 만들기 전에는 융통성을 발휘해 어느 정도 상황을 봐주던 사항들에 대해서도 더 이상 융통성이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융통성’이란 단어는 규정을 집행하는 사람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 지각을 하는 사람에게 벌점을 부여해야 하는데, 만약 가족모임이 있어 지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모임이라는 상황을 봐주게 되면, 가족여행으로 하루를 빠져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팀플을 진행해야 하는 사람은? 융통성이라는 단어로 결정된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부르고, 이는 규정의 강제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1분차이로 지각한 사람이나 30분을 지각한 사람이나 같은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는 국가의 법 집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엄격한 법 집행이 가혹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도 또 융통성 없는 법 적용이 비난받기도 한다. 경찰은 삶이 어려워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현대판 장발장’에 대해서 법률에 정해진 대로 처벌하는 것 보다는 처분을 감경해주기 위해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운영한다. 이러한 처분에 대해 법 처분이 관대하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유력인사가 실제로 몸이 아파 병보석으로 가석방이 되더라도, 이를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사람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도 하나의 공통된 경향이 나타난다.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의 작은 범죄에 대해서는 이를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 대다수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사회 유력인사에 대해서는 비록 그가 합당한 이유로 감경된 처분을 받더라도 그보다는 사회적 지위에 따른 높은 수준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다수의 의견인 것이다. 즉, 사회 다수의 의견에 따라 융통성이 이해될 수도, 배제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법 구성에 있어 사회적 합의는 중요하다.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됐다. 민주화 항쟁을 통해 사회 내에서의 민주화 요구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합법적 절차와 국민투표를 거쳐 개헌이 이뤄졌다. 헌법을 제외한 어떤 법도 개정 과정에 국민투표가 강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헌법이 국민적 합의의 결과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헌법적 가치는 더 높은 수준으로 지켜져야만 한다. 그래서 더욱 융통성을 적용할만한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갑자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신문사 내 규정을 만들며 기자들의 합의를 잘 이뤄냈었던가? 조만간 회의를 열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