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곤 기자 (hlnsg77@skkuw.com)

저희도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몰랐어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론 무심결에 내놓은 말들이 하나둘씩 실현되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저희 사이에서도 ‘야, 이게 되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해요. 그만큼 촉망받는 분야라는 뜻이겠죠. 상상하기만 했던 일들을 현실로 이루어가는 성취감이 저희가 식용곤충이라는 주제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
- 건국대 축산식품생명공학 최영우 씨.

 

키틴질, 액상 단백질, 액상 단백당……. 이제 막 대학교 2학년이 된 최영우 씨의 입에서는 도통 기자가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식용곤충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눈빛은 누구보다 열정으로 반짝였고 목소리에는 미래에 대한 설렘과 확신이 가득했다. 그는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워낙 자연과 가까이 지내 곤충과 친숙했다. 그는 식용곤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고교 시절 우연히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 식용곤충 연구자이자 한국식용곤충연구소 소장인 김용욱 교수의 강연을 접했다”며 그때부터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강연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곧바로 당시 경주대 교수였던 김 교수에게 연락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일을 배워야겠는데, 이제 막 떠오르는 식용곤충 산업에 대해 가르쳐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김 교수님뿐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다. 수차례에 걸친 거절과 부탁이 이어졌고 마침내 김 교수는 그가 서울권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전제로 연구소에 받아주기로 약속했다.
한국식용곤충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건국대 신입생으로 입학한 영우 씨는 학과에서도 이미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처음 학과 선배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벌레’였다고 한다. 짓궂은 별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별명과 뒤따라오는 관심은 그가 학과 내에서 식용곤충동아리 ‘KEIRO’를 만들 수 있게 한 하나의 밑천이 되었다. 그를 벌레라고 놀리던 15학번 선배들은 결국 그의 열정에 동화되어 동아리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처음 학과 학생들의 반응도 ‘역겹다, 더럽다, 굳이 그걸 왜 먹냐’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주변인들의 인식 문제가 동아리를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동아리의 주된 활동 방향은 주변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동아리 안에서부터 식용곤충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개선하기 위해 한국식용곤충연구소 소장과의 면담, 식품박람회 식용곤충 체험 등을 추진했다. 주변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학교 축제 홍보 부스, 인근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식용곤충미각교육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위태로운 와중에도 뚝심 있게 동료들과 동아리활동을 해온 결과 현재 KEIRO는 18명의 동아리부원을 모집할 수 있었다.
영우 씨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희망 건빵 프로젝트’다. 한국식용곤충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이 사업은 식용곤충으로 만들어진 영양식을 아프리카 기아 해결을 위해 지원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기아대책논산지부의 지부장이신 아버지를 따라 기아 구호를 위해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지를 자주 다녔다”며 자연스레 기아 구호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한 이것이 식용곤충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지금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쌓은 그의 경험은 한국식용곤충연구소와 기아대책논산지부를 연계하여 캄보디아에 기아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의 실행력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KEIRO가 지난해 건국대 축제 홍보부스를 통해 박주헌 셰프(왼쪽에서 둘째)와 식용곤충 쿠킹쇼를 선보였다.

영우 씨는 자신이 식용곤충이라는 분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마치 적금 같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만큼 쌓이는 게 보인다”며 “하지만 우리가 안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증가추세를 보았을 때 곤충은 곧 인류의 절대적인 단백질 공급원이 될 것이고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와 그의 동료들은 말로만 상상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무턱대고 교수연구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그들의 가능성과 의지를 교수들이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연구실과 실험실, 홍보부스를 마련했고, 본인들의 명함이 나왔다. 한국식용곤충연구소 소장은 그들의 부탁에 자문 교수를 역임해주기로 했다. 그는 “제가 당시 신입생이 아니었다면 이런 무모함이 철없음 혹은 영악함으로 비춰졌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학 신입생들에게 그 나이에만 잡을 수 있는 기회들이 있음을 강조했다.
KEIRO는 일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이 일을 할 때면 마치 밭을 개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영우 씨와 함께 있던 동아리 동료 건국대 축산식품생명공학과 최은총 씨의 말이다. 영우 씨는 이렇게 새로운 산업이 튼튼하고 빠르게 성장하려면 젊은 인력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전망이 분명하고 자신이 흥미 있는 산업에 뛰어드는 것이 훨씬 즐겁고 성취감 있으며 오히려 더 안정적인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KEIRO는 모두가 꺼려하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을 분명한 목적과 확신을 갖고 부지런히, 담대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하나의 유망한 산업이 새롭게 개척되는 장면을 직접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