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여론조사란 글자 그대로 ‘여론을 조사’하는 것으로서, 현대사회에서 여론조사의 시행은 대의민주주의 제도와 궤를 같이 하는 경향이 있다. 민의의 위임과 위탁을 근간으로 하는 대의민주제에서는 개개인의 집결된 목소리를 직접 확인하기가 마땅치 않고, 따라서 그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등장한 수단이 바로 여론조사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여론들 가운데 통상적으로 세간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키는 여론은 다름 아닌 선거여론이다. 국내에서 과학적인 여론조사는 1990년을 전후하여 대선 및 총선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수단으로 급부상하였으며, 작금에 들어서는 그 빈도에 있어서 여느 선진사회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번해졌을 뿐더러 강도에 있어서도 이내 대통령 후보 자격을 좌지우지할 정도로까지 강력한 지렛대로 작동할 경지에 이르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 혹은 선거 여론조사의 위상이 급부상한 것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서의 민의의 적극적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 우려할만한 측면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인데, 이는 다름 아닌 ‘과학성의 회복’ 및 ‘조사결과의 선용’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 전제조건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과학적 조사가 되기 위해서는 조사의 핵심적 단계들마다 실로 정교한 방법론적 지침들을 엄정히 준수할 것이 요구되는데, 국내 선거여론조사의 경우 무엇보다도 문제시되기로는 표본추출(sampling) 및 실사(fielding)가 이루어지는 과정 및 양태에 있어서 상당한 정도의 오남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질의 사회조사 자료를 생산해내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방법론적 요구사항은 ‘확률표집의 기본원칙과 실사 원칙을 굳건히 고수하는 것’인데, 실제에 있어서 이 요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우리사회 정치여론조사가 당면한 근원적 문제점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다.

‘과학성의 회복’이 조사자료의 생산을 위한 핵심적 전제조건이라면 ‘조사결과의 선용’은 생산된 자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는 또 하나의 핵심 전제조건이다. 여느 생산제품 또는 사회정책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자료의 경우에도 여하히 우수한 자료가 생산되었다고 한들 그 가치·용도·한계를 벗어나는 방식의 이용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선용이 아닌 악용 혹은 오남용이 아닐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민주사회에서 여론조사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민의를 폭넓게 수렴해내기 위한 도구 혹은 참고자료로서의 의미로 이해해야 할 뿐 그 자체로서 움직일 수 없는 어떠한 절대적 의미를 지닐 수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자료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과연 어떻게 오남용되고 있는지를 잠시 일별해보면, 각종 후보(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의 경선 과정에서 단 .01%라도 우월한 것으로 드러난 후보를 무분별하게 옹립하는 일, 대통령 후보를 뽑는 중차대한 국가지대사에서 선거여론조사 결과가 핵심적인 기준으로 등장하는 일 등이 그것일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올인’하려드는 이러한 사회적 토양이 개인(후보자, 공천 관계자 등)으로 하여금 여론조사의 치명적 유혹에 작정하고 빠져들게 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여론은 어디까지나 여론일 뿐 최종결정에 다다르기 위한 도구 혹은 지표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넘어서는 순간 수단-목적 간 전치현상이 발생할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 모든 국민들이 똑같이 여론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유동적인 여론의 동향과 궁극적 발전지향성 사이에도 실제로 적잖은 괴리가 존재한다는 언명은 이미 기원전부터 서구의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회자되어온 실체적 진리이기도 하다.

여론에 의한 정치가 아닌 ‘여론조사에 의한 정치’가 바로 여론조사 만능의 맹신 정치이며 이는 역설적이게도 정당정치의 실패를 자인하는 반증이라고 보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여론조사의 영향력은 축소될 조짐은커녕 되레 더 커져만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제라도 모두들 잠시 숨을 멈추고 자성의 목소리에 기대야만 할 시점이다.

서구사회에서 “지난 200여 년 간 여론조사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여론조사에 반대해온 역사이기도 하다”라는 제언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반추해볼 때 비로소 여론조사 자료의 과학적 생산과 합리적 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음과 동시에 우리사회에서도 민의의 보루로서의 여론조사의 진정한 위치를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해본다.
 

김상욱 교수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