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리학자, 지리학을 말하다
정치지리학자, 지리학을 말하다
  • 조연교 기자
  • 승인 2017.04.03 20:10
  • 호수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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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 박배균 교수

 

박배균 교수가 그의 저서
『국가와 지역』을 들고 있다.


우리 사회, ‘공간적 감수성’ 열악해
학문 분야 상관없이 함양하자

지리학은 어떤 학문인가.

제가 생각했을 때 지리학은 공간적 관점을 제공해주는 학문입니다. 근대 이후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학문은 뚜렷한 연구 대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딱 두가지 예외가 있는데 바로 역사와 지리입니다. 역사와 지리는 다른 학문과 달리 정해진 연구 대상을 갖지 않습니다. 역사학자와 지리학자는 다양한 대상을 연구하죠. 역사와 지리는, 그 자체로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보는 ‘관점’인 것입니다. 특히 역사는 시간적 관점, 그리고 지리는 공간적 관점으로 다양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지리학 내에는 수많은 분과학문이 있습니다. 크게는 인문현상을 연구하는 인문지리와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자연지리로 나뉘죠. 인문지리의 경우 또다시 경제지리, 정치지리, 문화지리 등 수많은 갈래로 나뉩니다. 결국 지리학은 모든 사회과학을 그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때 본래 사회과학과 지리학을 통한 사회과학 간의 차이는 바로 공간적 관점의 유무인 것이죠.
 
공간적 관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인터넷에 ‘공간’을 검색하면 ‘건축’ 그리고 ‘인테리어’라는 용어들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아직 사람들은 공간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가시화된 공간, 즉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떠올리는 것이죠. 하지만 공간적 관점에서의 공간은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우선 시간과 공간은 모든 물질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 전제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없으면 어떤 물질이건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이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속에서 물질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를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제쳐두고 공간만을 생각했을 때, 공간 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즉, 위치를 가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위치한다는 것에는 굉장히 묘한, 존재론적 뉘앙스가 있어요. ‘위치함’에서 장소의 개념을 끌어낼 수 있는데 이때 그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존재하는 장소에서는 ‘창발’, 즉 영어로 ‘Emergence’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원래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것이 유사한 위치에 놓이면서 새로운 역동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며 곧, 장소의 힘을 의미합니다. 본래는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수소와 산소가 어쩌다, 어떤 위치에서 각각 2개, 1개씩 결합해 새로운 물질인 물로 탄생하는 것처럼 말이죠. 어떤 장소에 우연히 abc가 모여 화학적 작용을 통해 새로운 xyz가 될 때, 그 작용이 일어난 장소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공간은 그곳에 위치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성을 형성하고 또 연결성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공간은 모든 현상의 맥락이 되고 공간적 관점은 바로 현상이 일어나게 된 맥락을 생각하는 사고를 의미합니다.

정리하자면 즉, 공간적 관점이란 ‘이질적인 것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연결되면서 새로운 힘으로 이어진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맥락’적으로 생각하는 자세,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가.

맞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공간적 관점은 또한 독일의 수학자인 라이프니츠의 공간관과 유사합니다. 라이프니츠의 공간관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과학자 뉴턴의 공간관과 비교하며 살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수학자인 라이프니츠와 영국의 과학자 뉴턴은 공간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먼저 뉴턴의 공간관은 절대적 공간관이라 불립니다. 그는 공간이 물질과 별개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뉴턴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합니다. 당시 영국은 명예 혁명을 거치며 어느 정도 안정된 근대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춰나간 반면 독일은 여전히 단일 국가가 아닌 봉건 왕가들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했습니다. 때문에 뉴턴과 존재 기반에서부터 차이가 있던 라이프니츠는,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한데 모여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쉬웠겠죠. 이 같은 라이프니츠의 사고가 아마도 그가 창시한 미적분 개념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라이프니츠가 만들어 낸 미적분의 개념을 보면 그가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을 미분하면 점이 되고 거꾸로 점을 적분하면 선이 되죠. 또 이 선들을 모으면 면이 되고 면이 모이면 부피가 됩니다. 여기서 선은 물질인 동시에 모이면 부피를 이루는 공간이죠. 즉 라이프니츠가 만든 미적분에는 물질은 그 자체로 공간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질과 공간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 그의 공간관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라이프니츠는 공간을 ‘공존의 질서’라 표현했죠. 이는 결국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하나의 새로운 힘이 된다는 지리학의 공간적 관점과 상통합니다.
 
그렇다면 공간적 관점이 실제로 우리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결국 공간적 관점은 한 마디로 ‘수많은 다양한 것들이 한 데 모여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죠? 따라서 공간적 관점을 지닌 사람은 포용력 있는 세계관을 가질 수 있어요. 이는 더 나아가 경직된 근대적 사고를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죠. 근대 시대에 영토 국가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국가는 국경을 설정하고 영토를 구획했습니다. 이질적인 것은 구분하는 게 편하다는 사고가 만연해진 것이지요. 이 같은 국가 위주의 경직된 근대적 사고가 우리에게 진정 평화를 가져다 줬는지 성찰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지금, 공간적 관점은 ‘국가 단위로 공간을 구획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을 던져 줍니다. 미국 속담에 ‘이웃과 편하게 지내려면 네 담장을 튼튼히 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담장을 낮추거나 아니면 아예 허물었을 때 이웃하고 사이가 더 좋아질 수 있는건 아닐까요? 세상은 본래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것이라 보는 공간적 관점은 이처럼 근대적 사고에 갇혀 잠시 잊고 있었던 다양성의 진리를 일깨워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간적 관점의 중요성이 크게 논의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내부 지향적 성향이 강합니다. 국가의 정당성을 구축하고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교육이나 각종 정책들이 이뤄졌습니다. 한반도 내부만 바라봤죠. 나라 밖 세상, 외부 세계엔 별로 관심이 없고 내부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이데올로기를 홍보하는 게 우선 과제였던 것입니다. 역사, 특히 한국사를 강조하는 흐름은 강해지는 반면 공간적 관점은 소외되고 지리 과목은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죠.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역간의 차이에도 무감각합니다. 6-70년대 국가 주도의 산업화 시기에 각 지방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색채는 중앙으로 편입되는 중앙 집권화를 거치며 점점 옅어졌습니다. 이는 바로 ‘지방의 상실’인 셈이지요.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최근 우리나라의 도시화를 ‘강남화’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도시 또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이 들어서면서 동일한 모습으로 변해가죠. 그래서 근본적으로 공간 간의 차이에 관심을 가지는 지리학자에게 우리나라는 흥미로운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리학계 그리고 특히 지리교육은 어떤 식으로 개선돼야 할까.

우선 사회 전반적으로 ‘공간적 감수성’이 열악하다는 것이 근본적 문제입니다. 지리교육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공간적 감수성을 함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자들이 국가 중심적 사고를 고수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 같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공간적 관점을 자신의 학문 분야에 접목시켜 폭 넓은 사고를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한편 지리교육 내부의 문제와 개선책을 이야기하자면, 지금과 같은 주제 중심의 교육보다는 지역지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역지리를 강화한다는 건 이 지역엔 꽁치가 많고 저 지역엔 석탄이 많다는 등 단순 사실 나열 위주의 지루한 지리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역의 시공간적 맥락을 조명하여 지방 지역의 특색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가르치고 배우자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워낙 축적된 지역 자료가 없다보니 스토리텔링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는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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