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리학자, 지리학을 말하다
문화지리학자, 지리학을 말하다
  • 조연교 기자
  • 승인 2017.04.03 20:17
  • 호수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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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김이재 교수

 

김이재 교수가 그의 칼럼이 실린 잡지를 들고 있다.


자유로운 확장성은 지리학 최고의 장점
‘헬조선’ 탈출하려면? 답은 지리적 상상력!

지리학은 어떤 학문인가.

저는 지리학을 ‘말랑말랑’한 학문이라 말하고 싶어요. ‘말랑말랑’이란 수식어는 지리학이 가진 ‘자유로움’이란 특성을 강조하는 표현이죠. 인간은 살아있는 한 공간에서 존재합니다. 따라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 삶의 모든 것은 지리학의 연구 대상이 되며 지리학자는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와 지역을 마음대로 선정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죠. 다른 학문이 대부분 연구에 있어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고 그 형식을 지켜야 학문으로서 인정을 받는데 비해서요. 지리학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사람마다 혹은 지역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지리학을 정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은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죽어버린다는 말이 있듯 지리학 또한 이게 무엇인지를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특유의 생명력과 자유로움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지리학은 자유로운 확장성이 최고의 장점인 만큼 특히나 그렇죠. 이 때문에 지리학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말랑말랑’한 학문이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지리학 연구와 지리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근대 이후의 백과사전식 교육 체계는 교육 내용과 성취 기준을 규정지어 학생들이 이에 도달하도록 이끌어 평가하는 방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단계별 학습 내용을 객관적으로 나눌 수 있는 학문은 이 같은 방식으로 교육하고 평가하기에 적합하죠.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지리는, 야외에서 자유로운 체험활동을 통해 통합적 사고를 자연스럽게 기르는 방식으로 교육됐습니다. 그 때문에 미국식 사회과교육에 기초한 한국의 국가교육과정에서 지리교육은 왜곡되고 위축됐습니다. 하지만 지리학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지리적 상상력’과 ‘공간적 의사결정 능력’입니다. 나와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알고, 그에 따라 나에게 맞는 공간은 어디인지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것이 지리를 배우는 주요한 목적인 거지요. 하지만 현재 한국의 지리교육은 교실에서 지식을 주입하고 암기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학습자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마저도 지식과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않아 낡은 지식을 달달 외우는 고리타분한 암기과목으로 여겨집니다.

이 같은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지리학이 지닌 특성 사이의 마찰로 인해 심화된 측면이 있다고 들었다.

지리학은 자고로 통치자의 학문이었습니다. 지도를 보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고 단체를 리드하는 자가 될 수 있기에 이를 원치 않은 국가는 지리적 지식을 독점하고자 했죠. 따라서 지도는 오랫동안 국가 기밀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지도를 쉽게 구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인터넷으로 지도를 볼 수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리를 실천하며 살기는 어려운 사회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엘리트 집단은 주로 고시 출신, 즉 젊은 시절 다양한 장소를 경험하기보다는 좁은 골방에 갇혀 법전을 달달 외워야만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구조와 방향을 결정하는 헤게모니는 주로 이들에게 있었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엉덩이가 무거워야 성공한다’는 믿음이 보편화된 사회, 공무원이 최고의 인기직종인 나라에서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 내가 행복한 공간을 찾아가는 지리적 상상력은 끼어들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면서 우리 사회가 존속되지 못할 수 있단 겁니다. 그러니 노량진으로 향하는 공시생 여러분,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세요. 공무원은 고객이 줄어드는 서비스업이고, 따라서 비전을 찾기 힘든 사양직종이란 사실을요. 이제는 정말 나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곳을 찾아 용기 있게 떠날 수 있는 능력, 즉 지리적 상상력과 공간적 의사 결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와 달리 지리교육이 활발히 이뤄지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타국의 모범 사례를 소개해달라.

저는 영국이 여전히 대영제국의 위상을 유지하는 힘이 지리교육을 철저히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국의 거의 모든 대학엔 지리학과가 있어요. 특히 이튼, 해로우 등 다수의 엘리트를 배출한 학교는 지리를 중요시해 왔죠. 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삶에도 지리적 사고가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집집마다 앤틱 맵(Antique Map)을 벽에 걸어 놓고, 지도를 보며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는 습관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어 있죠. 지리를 단순한 교과 과목을 넘어 내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나의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중요한 도구로서 인식하는 겁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죠. 독일의 모든 지식 구조를 만들어 내어 독일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훔볼트는 지리학자였어요. 그 때문에 독일은 지리학을 모든 학문의 기초로 여깁니다. 실제로 독일에서 지리학과는 커다란 학부로서 우리나라 대학의 ‘자유전공학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문과건 이과건 자신이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는 학생들은 대체로 지리학부에 소속돼 해외 답사를 다니며 진로와 적성을 탐색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베트남도 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리교육에 힘쓰고 있어요. 중국은 고등학교 선택과목에 여행 지리, 해양지리 심지어 우주지리까지 다양한 지리과목이 개설돼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에선 하노이 국립사범대학의 지리학과 교강사 수가 모두 30명이 넘을 정도로 중요한 학과이죠.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한 문화지리학자로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겪는 많은 문제는 부실한 지리교육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보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지리적 상상력이 결여돼 있음을 알 수 있어요. ‘헬조선’이라는 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비자 없이도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우리의 국적이 한국이기에 비행기 값만 있으면 언제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수 있죠. 이렇게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한국은 ‘헬(hell)’, 즉 지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는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없으니까요. 평생 그곳에 갇혀 있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동의 자유가 없는 북한이야말로 ‘헬조선’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행복한 공간을 찾아갈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더는 국가의 영토 개념에 자신을 가두지 마세요. ‘비행기로 5시간 걸리는 곳은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길이 막히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보다 더 걸리기도 하니까요. 삶의 영토를 확장하려면 전쟁을 일으켜 실제로 영토를 확장할 필요 없이 우리의 상상력만 확장하면 될 뿐입니다. 또한, 우리는 ‘작은 영토’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요. 물리적 영토가 좁다고 해서 상상력의 영토까지 축소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내 생각이 닿는 모든 공간은 내 생각의 영토가 되고 체험의 영토가 될 수 있습니다. 동남아 지역전문가로 활동하는 저는 실제로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죠. 여권을 주민등록증처럼 들고 다니며 ‘동남아는 국내나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저는 단순히 ‘외국으로 나가라!’고 외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생각의 영토를 항상 열어놓고 내가 행복한 공간으로 갈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활용하고 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죠. 지리적 상상력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면 새로운 기회들이 기꺼이 당신을 맞이할 것입니다.

지리적 상상력이 선사하는 인생 꿀팁》
연봉이나 집값에 집착하는 수치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공간적 사고로 전환하게 되면 내 삶의 철학과 가치관도 함께 변화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임을, 그 한정된 시간 동안 내가 행복한 공간에 있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자 행복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지리적 상상력이 있다면 사랑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행복한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 아닐까요? 그렇다면 결혼정보회사에 가는 대신 내가 행복한 공간으로 떠나 보세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행복한 사람, 즉 나와 공간적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사랑을 싹틔우는 겁니다. 사랑과 행복, 이제 어렵지 않죠?
 -김이재 문화지리학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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