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호성 차장 (doevery@skkuw.com)

지난달 31일 인사캠 퇴계인문관 31406호에서 ‘트럼프 시대의 러시아, 한·러 관계’를 주제로 이규형 전 러시아 대사 초청 특강이 열렸다. 본 강연은 우리 학교 코어 사업단(단장 권인한 교수·국문) 2차년도 출범 기념으로 주최된 외교부 유럽 대사 초청 연속 특강의 일환이다. 코어 사업단은 지역전문가를 꿈꾸는 학우들에게 외교의 현장을 이해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이번 연속 강연을 기획했다. 이번에 진행된 강연은 이 전 대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주요 특징과 현안에 대한 소개와 트럼프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한·러 관계,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본 대응 방안이 주 내용이었다.

강연은 10년 전 이 전 대사가 러시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경험으로 시작됐다. “‘이동 거리가 400km가 안 되면 멀다고 하지 마라’고 하더라.” 러시아의 방대함에 이어 처음 느낀 러시아 날씨에 관해선 ‘옷을 겹겹이 껴입고도 몇 분만 지나면 옷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이 느껴지는 추위’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는 다양한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경험하며 그 속에서 아시아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13세기부터 몽골의 지배를 200년 가까이 받으며 경험했던 것들이 러시아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있고, 그것이 우리가 그들과 정서적으로 통하는 길이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반면에 그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박물관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된 다양한 유럽풍 작품들을 언급하며 “정서적으로 아시아와 가깝지만 유럽 지향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이 오늘날 러시아의 또 다른 한 면모”라고 전했다. 러시아의 예술가에 대한 얘기를 이어가며 그는 “외교관으로 일하기 위해선 타 국가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외교관을 꿈꾸는 학우들에게 조언의 말을 전했다.

“러시아 국민은 강한 리더십을 선호하고 보스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그는 84%로 집계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지지율을 언급하며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뤄낸 러시아의 외교 수완에 관해 얘기했다. “러시아는 작년에 터키와 화해하며 중동 문제 해결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국가 경제에서는 러시아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에너지 수출구조에 의존하는 경제패턴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러·미 관계는 양국의 지도자가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며 관계가 진전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얄타 트라우마와 *몰타 트라우마로 인해 서로 깊은 신뢰를 쌓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반면에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과열되거나 분열되지는 않으리라 예측했다.

강연은 한·러 관계에 대한 얘기로 계속됐다. 한국과 러시아는 *‘KAL기 피격 사건’을 비롯하여 한때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등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 이후 교역량이 증가하고 2014년에는 비자가 면제되며 양국의 교류가 점차 활성화됐다. 그는 “러시아는 북한의 핵 문제를 용인하지 못하는 입장으로 우리와 입장을 함께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한·러 관계 발전에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러한 기본 전제 속에서 어떻게 한·러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냐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현재 북한으로 인해 중단된 극동지역개발을 진전시켜 양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추진해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본 대응 방안으로 그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노력’과 ‘러시아에게 국제무대에서 취하게 되는 우리 입장을 명료하게 전달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러시아의 독특한 심리상황을 배려하되 사안에 따른 우리의 주관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는 “극동지역개발을 위해 남·북·러 합작이 필수적이고 이를 이뤄내기 위해 러시아는 러시아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걸 이끌어 가는 것이 한·러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몫”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교류를 통한 이해 증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우는 “외교관계에 있어서 국력 차이가 작용해 우리나라는 항상 배제되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한국 외교관이 외교 상황 속에서 얼마나 힘을 쓸 수 있냐”고 질문했다. 이에 이 전 대사는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관계로 인해 핸디캡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며 “통합된 국가적 의견을 바탕으로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면 충분히 힘을 쓸 수 있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고 국제정치에 대한 복잡성을 이해하며 우리나라의 역할을 확인했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에 참여한 이효진(러문 13) 학우는 “평소 몰랐던 한·러 관계의 내막을 알게 되어 유익한 경험이었다”며 강연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기사도우미

◇얄타 트라우마(Yalta trauma)=얄타회담에서 미국이 소련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면서 냉전이 시작됐다고 보는 의식.

◇몰타 트라우마(Malta trauma)=몰타회담 이후 진행된 탈냉전의 결과가 결코 공정하지 못했다고 보는 의식.

◇KAL기 피격 사건=1983년,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사할린 인근 소련 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격추되어 한국인·미국인·일본인 등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