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퍼드 페어리展, 밤거리가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오다
셰퍼드 페어리展, 밤거리가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오다
  • 유은진 기자
  • 승인 2017.04.10 14:20
  • 호수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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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담벼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알아보기 어렵게 휘갈겨 쓴 글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학우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글은 거의 없고, 그림 한 점에도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셰퍼드 페어리는 △반전(反戰) △비폭력 △페미니즘 △평화 △예술가의 사회 참여 △환경 보존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이런 관심사가 그의 암시적인 작품 스타일과 맞물려 그림마다 다양한 상징적 아이콘이 숨어 있다. 이를 찾아보는 것도 전시를 재미있게 즐기는 한 방법이다.

♠오베이 자이언트 : 작가 자신의 서명처럼 쓰인다. 다른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 한쪽 구석에 친필 사인을 남기듯, 페어리는 그림 이곳저곳에 거인 앙드레의 얼굴을 새겨 둔다.

♠꽃 : 페어리는 주로 장미꽃과 연꽃, 꽃 덩굴을 즐겨 그린다. 꽃은 평화를 상징하며, 그림 전면에 드러나 있기도 하고, 배경에 패턴으로 숨겨져 있기도 하다. 총부리에 꽂힌 장미꽃이나 인물의 스카프에 인쇄된 연꽃무늬를 찾아보자.

♠화구(畵具) : 예술을 상징하는 소재로, 붓이나 스프레이 페인트가 자주 사용된다. 수류탄에 스프레이 캡이 꽂혀 있거나 병사가 총알 대신 붓을 든 모습을 볼 수 있다.

♠여성 : 페어리는 페미니스트다. 그의 작품 속에서 여성은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앞장서서 평화를 쟁취하는 능동적 주체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많은 여전사들과 ‘아이 콘택트’를 할 수 있다. 재밌는 사실은, ‘평화의 여신’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사용되는 한 여성 캐릭터는 실제 페어리의 부인을 모델로 했다는 것이다. 여신의 왼손 약지에 그려진 결혼반지를 찾아보자.

♠시추탑 : 석유 회사의 탐욕과 환경에 끼치는 해악을 상징하는 장치로 사용되며, 가장 은밀하게 숨어있는 상징물이다. 그림 속 먼 배경에 흐리게, 또는 보석 목걸이 속에 작게 그려져 있다.

‘오베이 자이언트’의 탄생

처음 페어리가 만든 오베이 자이언트 아이콘은 왼쪽과 같았으나 이후 초상권 문제 때문에 오른쪽 모습으로 단순화했다.
ⓒ구글 이미지, 공식 홈페이지

전시장 첫 공간은 넓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가운데에 놓인 유리 전시함 안에는 페어리가 배경 패턴을 만드는 데 사용한 *스텐실이 있다. 당장에라도 페어리의 손에 들려 거리로 나갈 듯, 생생한 페인트 자국이 남아 있다.
벽에는 ‘거인 앙드레’의 초상이 걸려 있다. 지금의 오베이 자이언트를 탄생시킨 그림이다. 오베이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며

총과 총알을 쥔 여전사. 평화의 상징물을 찾아보자.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자 꽃과 여자 그림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상징물은 바로 꽃, 총, 그리고 수류탄이다. 전쟁을 상징하는 총이 왜 평화를 상징하는 꽃과 한 그림 안에 함께 담겨 있을까? 답은 페어리가 호소하는 평화의 메시지에 있다. 장총의 총부리에는 장미를 꽂아 놓고, 총알은 붓으로 바꿔치기했다. 페어리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소명으로, 즉 예술로써 평화를 그리려 한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 속에서 총을 막는 것은 울타리도, 군대도 아닌 꽃과 붓이다. 이 공간을 지나면 벽을 노란색으로 칠한 원형 홀이 나타난다. 평화의 여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등 다양한 인물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관람객들을 바라본다. 이들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평화’

오베이 자이언트를 낳은 예술가들
페어리에게 영감을 준 힙합 가수들.

오베이 자이언트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래피티의 역사를 연 ‘장 미셸 바스키아’, *실크스크린과 대량생산의 아이디어를 준 ‘앤디 워홀’…. 페어리의 영감의 원천들에 바치는 작품이 이곳에 전시돼 있다.
곧 화가들의 벽은 지나고 힙합 가수들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래피티가 태어난 밤거리로 되돌아온 느낌이 든다. △DJ △MC △비보이와 함께 힙합의 4대 구성요소라는 그래피티. 즉 힙합과 그래피티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비기(The Notorious B.I.G.), 투팍(2pac) 등 페어리가 사랑하는 힙합 가수들의 얼굴이 빨간색, 노란색 등 화려한 원색의 대비로 그려져 액자 너머 관람객을 마주보고 있다. 전시장 안에는 힙합이 울려 펴진다.

정의를 선전하고 세뇌하라

립스틱 대신 총알을 입술에 갖다 댄 여인.

페어리는 정의를 꿈꾼다. 독재와 기득권층의 착취를 항상 경계하며, 이같은 문제의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한다. 특이하게 그 수단은 바로 ‘선전’과 ‘세뇌’다.
그는 긴 글 대신 한 장의 그림만으로 모든 설명을 대신함으로써 대담하게 대중에게 정의를 세뇌하기로 한다. 이 공간에 전시된 그림은 유독 자극적인 색으로 칠해졌다. 어디를 보아도 온통 빨간색이다. 일단 눈길을 사로잡히고 나면, 미국 정부의 부패나 석유 기업의 가식적인 모습에 대한 조롱이 읽힌다. 이 공간을 벗어나면서 새빨간 총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면, 페어리에게 확실히 세뇌당한 것이다.

모든 것의 기반은 지구이므로

"파도가 덮쳐오기 전에 즐겨두세요."

반전과 페미니즘, 미술 기법의 혁신 등 관심사가 다양한 페어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환경 보호다. 앞서 말한 모든 것이 일단 지구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장의 마지막 공간은 환경에 대한 우려를 담은 작품들이 채우고 있다. 시원한 초록색으로 벽을 칠한 이 공간은, 다른 공간보다 조명은 조금 어둡고 그림은 밝다. 밝은 색채로 휴양지 광고판처럼 그려 낸 그림 속 먼 배경에 솟은 시추탑이나 구석에 적힌 경고 문구가 위기감을 조성한다. 그림 속 인물들의 평화로운 휴가가 오래 가지 않을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전시회는 오는 3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며, 11일부터 13일까지는 셰퍼드 페어리가 방한한다. 이곳 전시회장을 방문해 관람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초대형 벽화를 그릴 예정이다. 규범도, 형식도 거부하고 오직 직감만 따르는 자유로운 예술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번 주에는 그래피티를, 그리고 그래피티의 거장을 직접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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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실=글자나 무늬, 그림 따위의 모양을 오려 낸 후, 그 구멍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찍어 내는 기법 및 그 판.
◇실크스크린=스텐실의 한 종류. 종이, 스텐실, 스크린을 차례로 포갠 후 실크스크린 잉크를 적당량 퍼서 올리고 스퀴즈라는 고무를 끼워 넣은 나무판으로 위에서부터 훑어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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