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가기혁 소방관

기자명 조연교 기자 (joyungyo@skkuw.com)

 

그의 사전에 억지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꺼려지는 일이겠으나 그에겐 마음이 자연스레 향하는 곳이었다. 그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군 복무 대신 아프가니스탄 파병 부대에 자원하고 전문성 있는 직업인이 되고 싶어 소방관이 된 이후에도 꾸준히 공부했으며 지금은 소방관을 양성하는 소방학교에서 신규생을 교육하는 데 힘쓰고 있다. 가기혁(34) 교관은 자기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할 때 그 마음이 편안한지를 알 뿐이다. 그것이 그가 긴장과 위태로움의 연속인 소방관의 삶을 살면서도 행복한 이유다.

 

 

ⓒ 가기혁 소방관 제공


전국 최초로 소방 관련 자격증 3개 분야에서 전부 1급을 취득해, 이름하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소방관으로 불린다. 어떤 계기로 이 같은 도전을 했는가.

시민들은 잘 모르지만, 소방관은 사실 구급대원, 구조대원 그리고 화재진압대원 총 세 개의 전문 분야로 구성돼 있어요. 현장에 나갈 수 있는 전문 대원들의 수가 분야별로 모두 많다면 가장 좋겠지만, 소방 인력은 현실적으로 많이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현장에 있는 소방관으로서 골고루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예를 들어 구급대원이 출동했을 때 화재가 잇따라 일어나거나 추가적인 구조 사항이 생길 수도 있듯이 각 분야가 모두 복합적으로 연계된 것이 사고 현장이거든요. 따라서 어느 현장에 가도 완벽히 사고를 수습할 수 있으려면 분야를 넘나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취득했던 응급구조사 1급에 소방관이 된 후 인명구조사와 화재대응능력 1급 시험을 준비했어요. 동료들과 함께 근무 시간에 짬을 내 틈틈이 공부했고 함께 취득했죠. 제가 3개 모두 1급을 취득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다수의 소방관이 자격 취득을 위해 공부합니다. 자격증 자체가 저희 스스로 훈련을 꾸준히 하고 현장 실무 능력을 키우게 하려는 취지니까요.

말씀을 듣고 보니 치열한 현장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그런데 혹시 현장에 뛰어들기 전에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은가. 나라면 불길 앞에서 차마 발이 안 떨어질 것 같다. 

사실 많이 떨립니다. 소방관도 사람이니까요. 사이렌을 키고 출동을 나가면 현장에 가까워질 때쯤 그 위로 ‘구름’이 보입니다. 소방관들 사이에선 화재 연기를 ‘구름’이라고 부르는데 이 구름의 양으로 화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죠. 구름이 클 때는 ‘아, 저 정도면 내가 다칠 수도 있는 화재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져요.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어떻게든 구조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 순간에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 그리고 동료이기에 앞서 오직 내가 소방관이라는 사실만이 남아있죠. 그 때문에 당연히 긴장도 되고 떨리지만, 매뉴얼을 되새기거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때로는 그런 떨림과 흥분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해요.
 

   
 ⓒ 가기혁 소방관 제공


하지만 실제로 생명에 위협을 느낀 아찔한 순간도 있을 것 같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줄 수 있나.

소방관이라면 모두 있을 거예요. 특히 화재는 보통 시민들이 잠든 늦은 밤이나 새벽에 주로 발생하는 데요. 한번은 늦은 밤에 신고를 받고 위험물 화재 현장에 출동한 적이 있어요. 염산이 있는 공장이었죠. 그런데 밤이라 잘 안 보였던 나머지 공장에 진입하던 중 어떤 웅덩이에 한쪽 발이 푹 빠진 거예요. 다행히 물웅덩이였지만 염산 같은 화학물질이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참 아찔한 기억입니다. 또한, 아직까지 화재 현장에서 실제로 고립된 적은 없지만 고립될 위기에 처했던 적은 종종 있었어요. 그런데 만약 제가 고립되면 구해야 할 사람이 두 명이 되는 셈이고 그런 부담은 고스란히 동료들의 몫이 되죠. 그 때문에 소방관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교육을 받습니다. 제 목숨과도 같은 동료들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죠.


실제로 외상성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소방관들이 많다고 들었다. 소방관으로서 겪는 고충인 것 같은데 본인도 비슷한 경험이 있나.

외상성 스트레스는 사람마다 겪는 정도가 다르죠. 저의 경우엔 구급대원으로 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위급 환자들을 많이 만나 봤기에 참혹한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하지만 유독 아이들이 다친 사고는 그 잔상이 하루 이틀 정도 남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체구가 작아 어른과 같은 손상을 입더라도 타격이 더 크기 때문에 큰 사고를 당했을 때 살리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아이들은 어른들의 실수로 다치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생을 마감하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인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면 정말 안타깝죠.

 

   
 ⓒ 가기혁 소방관 제공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은 어떠한가. 언론을 통해서는 많이 열악하다고 알려진 바 있는데 사실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열악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직업적인 소명의식이 부족하다면 힘들 수밖에 없겠지만 스스로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는다면 이만한 직업이 없을 정도라고 말하고 싶죠. 현실적으로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나오고 밤에 근무가 많지만 그만큼 추가 수당이 지급돼요. 문제가 있다면 역시나 소방관이 지방직 공무원이어서 시·도별 예산에 따라 각 소방서에 지원되는 장비의 질과 양에도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지방직 문제만 해결된다면 소방관은 정말 좋은 직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쉽게 해결되진 않을 것 같지만요. 소방은 경찰처럼 공권력이 있는 조직이 아니어서 국가직 전환이 단번에 이뤄지기는 힘들죠. 소방에 대한 관심은 국가적인 사고나 재해가 일어날 때만 잠시 생겼다 이내 사라져버리는데, 문제 해결을 위해선 모두의 꾸준한 관심과 협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가기혁 소방관 제공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본인에게 정말 잘 맞는 것 같다. 일하는 순간들이 행복한가.

이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죠. 시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일인 만큼 제게 자긍심과 뿌듯함을 가져다주니까요. 누군가를 도와주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는 저에겐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밤에 출동해야 할 땐 피곤하지만 반대로 낮에 자기 계발을 할 수도 있죠. 저 같은 경우엔 수영장도 가고 운동을 주로 해요. 또한, 남자 소방관들은 24시간 비상근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방위나 예비군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실질적인 장점도 있답니다.

헌혈을 100번 넘게 했다고 들었다. 봉사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는가.

고등학교 때 호기심에 시작했던 게 어느덧 그렇게 됐어요. 사실 저는 일과 별개로 시간을 할애해서 하는 봉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소방관이 되고 나선 근무시간이 일정치 못하다 보니 연탄 나르기 같은 참여형 봉사를 지속해서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내 몸이 건강하기만 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헌혈을 꾸준히 했죠. 저 말고도 헌혈을 하는 동료들이 아주 많아요. 몸 상태를 점검할 수도 있어 유익하죠. 무엇보다 저는, 많은 사람이 봉사를 자기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 인식하길 바라요.

 

 

ⓒ 가기혁 소방관 제공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지금은 교관으로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지만, 조만간 현장에 복귀하려고 해요. 이제 내년이면 30대 중반에 들어서는데 이는 소방관으로서 정점의 시기거든요. 현장에 나가서 팀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구조 활동에 힘쓰고 싶어요. 그래서 사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죽지 않는’ 겁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기자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듯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료 대원들이 1년에 한 명씩 순직했어요. 남 일 같지가 않죠. 그래서 늘 ‘죽지 말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자’고 다짐합니다. 또한, 소방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널리 확산시켜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지원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