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인종주의, 포퓰리즘, 혐오발언 등은 기원과 그 특성을 달리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자연적 사회적 속성을 이항 대립으로 구분하여 배제를 통해 진영(정파)의 소속과 이해 관계를 공고하게 유지하려는 특징을 갖는다. 진영의 동질성이 약화되고 이해 관계가 느슨해져 위기감이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그에 상응하여 배제의 수위와 정도가 더 자극성을 띠게 된다. 품위 있는 고상한 언어가 사라지고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날선 언어가 넘쳐나게 된다. 전쟁, 선거처럼 이해 관계의 대립이 심각할 경우 배제를 동력과 전략으로 하는 진영의 논리가 극성을 피웠다. 최근에 이르러 일상과 공적 영역 등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부추기는 사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명백한 말실수마저 계산된 목적에 도달하는 유효한 전략으로 간주되고 있다.

언어는 인간이 가진 축복 중의 하나이다. 언어는 자연음과 구별되는 분절의 특성을 통해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선물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어의 선용은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그러한 기준이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문화적 교양의 상징이었다. 즉 언어는 더 보편적 지성을 담아내서 나와 타자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같은 말이라도 오해를 덜 사고 이해를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를 더 갈고 닦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면 인종주의, 포퓰리즘, 혐오발언 등은 개인과 정파의 이해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문화적인 방식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언어를 동원한다. 이로써 언어는 더 이상 객관적인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정파의 이해를 창출하는 길을 넓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를 위해 인종, 정견, 정체성, 기호의 차이를 증폭시키는 만큼 타자를 배제시키려고 한다. 자기 진영을 단결시키는 효과를 거두지만 반대 진영의 존엄을 훼손한다. 언어는 공공재가 아니라 사유물로 전락되어버린다.

최근 우리 사회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을 경험하고 부패한 권력을 탄핵시키고 새로운 민주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 과정은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질 정도로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에 충실하게 진행되었다. 정견을 달리하고 서로 경쟁했지만 결코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폭력에 의존하여 상대를 억압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언어로 설득하여 더 많은 공감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결과를 거두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는 미덕을 발휘했다. 즉 우리는 더 많은 다수가 선택한 민주주의를 존중하면서도 그 과정에 다원주의까지 포용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우리는 광기와 폭력이 광장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며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주주의의 커다란 도정을 성취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 포퓰리즘, 혐오발언 등 언제든지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의 지속, 삶의 질의 악화가 지속되면서 그 해결책을 배제의 동력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를 막아내려면 증오와 배제에 뿌리를 둔 언어의 남용과 오용이 이해 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계산된 게임이자 프레임의 설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