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진아 기자 (jina9609@skkuw.com)

“혐오 표현과 감정과의 관련성은 혐오 표현의 ‘원인’을 밝히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혐오 표현을 어떤 ‘감정’상태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다. 왜냐하면 혐오 표현 논의는 대체로 규제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전개되는 것인데, 규제는 감정 상태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외부로 노출되었을 때 비로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 방안 연구」
2016,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췌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가 아니라 엄벌을 해야 합니다.” “동성애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에 에이즈가 1만 4000명 이상 창궐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지난달 25일과 27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선후보가 TV 토론회에 나와 했던 발언들이다.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 한국 선거판에 ‘혐오 표현을 통한 혐오 조장’이 공식 전략으로 등장했다는 비판의 여론이 거셌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평소에 갖고 있던 혐오의 감정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길 꺼리던 사람들도 홍 후보의 혐오 표현을 들으며 엉뚱하게 고무되는 것이 위험하다”라며 “홍 후보는 혐오 발언을 통해 자신의 지지층을 결속하면서도 혐오 표현이 사회에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며 혐오가 확산되도록 부추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혐오 표현이란, 그 대상이 특정될 수 있는 집단을 향한 △모욕 △불관용 △비하 △적대감 △조롱 등을 지닌 표현행위를 의미한다. 혐오 표현은 단순히 ‘싫다’는 일시적이고 사적인 감정을 넘어 일반 청중을 향해 ‘소수자를 차별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발표한 「혐오 표현 실태 조사 및 규제 방안 연구」에 따르면, 혐오 표현의 학술적 정의는 △누가(표적 집단 소수자) △무엇을(적대성) △어떻게(표현 행위성)의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가령, “남자 새끼가 쪼잔하다”라는 표현은 남성을 향한 조롱과 비하를 드러내는 적대성은 드러내지만, 남성은 소수자 집단이 아니며 이들을 차별하라는 메시지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혐오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혐오 표현의 문제성이 인지되고 규제의 대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계기로는 특정 인종과 민족에 대한 박해와 대학살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1939년부터 자행된 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1923년 관동 대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각각의 사례는 혐오 표현의 정의 3요소에 입각하여 파악해 볼 수 있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은 △유대인이라는 표적 집단 소수자를 △사회적 부랑자, 전적인 국외자로 적대시하여 △수용소 감금과 같은 방법을 통해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또한 관동 대학살의 경우 △식민지 조선인이라는 표적 집단 소수자를 △동경 시내에서 폭동과 방화를 일으키고 있는 집단이라고 적대시하여 △군대와 경찰을 중심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는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민중의 보수적 감정을 이용한 혐오 표현의 사례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주로 인종을 비롯하여 민족, 피부색 등 개인을 어떠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특정 속성이 곧 차별과 비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에는 혐오 표현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내 혐오 범죄 감시 단체인 남부빈곤법센터(SPLC)의 보고에 따르면,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많은 혐오 표현을 사용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해 11월, 혐오 관련 범죄율이 전월 대비 115%나 증가하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가 SNS를 통해 전사를 모집하기도 하는 등 사이버 공간 또한 혐오 표현의 선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 사회 내에서도 2010년대 초반부터 혐오 표현이 공개적으로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여성 및 성 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소수자를 향한 부정적 의견이나 적대적 감정, 욕설 등이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타고 조직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혐오 표현의 법적 규제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규제 찬성론의 입장에서는 혐오 표현은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소수자의 존엄한 삶을 파괴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규제 반대론의 입장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양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가령, 독일의 경우 공공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증오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혐오 표현에 대해 형법상에 ‘민중 선동죄’를 명시하여 혐오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 현재 독일을 비롯한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혐오 표현 제한 옹호론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하여 혐오 표현 제한 반대론을 채택하는 국가들의 경우, 혐오 표현으로 인해 소수자 집단이 받는 해악의 실체를 의심한다. 특정인에 대한 구체적인 해악은 민사배상을 통해 해결하면 되며, 집단에 대한 해악을 별도로 인정하여 그것을 법으로써 규제하는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한국사회에서는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 여부를 두고 여전히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