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 생생함이 원본을 압도하다
사실적 생생함이 원본을 압도하다
  • 장소현 차장
  • 승인 2017.05.14 17:49
  • 호수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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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 씨가 <Giuliano>를 그리고 있는 모습.
ⓒ 정중원 화가 제공

스마트폰을 포함한 스마트기기가 보편화된 오늘날, 사람들의 시선은 네모난 화면 속에 머무른다. 화면 위에서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정보는 끊임없이 쏟아진다. 현실 속 사회보다 가상 속 세계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에게 현실 사회는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현실과 가상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서로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세계가 바로 ‘하이퍼리얼리티(Hyper Reality)’ 세계이다. 하이퍼리얼리티 세계에서는 가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실재가 된다. 이는 진중권 작가의 미학 오디세이 3에 나타난 사례로 설명된다. 어느 잡지의 기사에 따르면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그래피로 인해 현실의 성생활에 지장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포르노의 세계는 현실 속 성관계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강렬한 어떤 하이퍼리얼리티의 세계인 것이다.

‘하이퍼리얼리즘(Hyper Realism)’은 바로 이러한 세계의 예술적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즉 실재와 허구 사이에 무엇이 사실인가에 대해서 작품을 보는 사람이 의문을 제기하고 혼동을 느끼는 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한 하이퍼리얼리즘은 *팝 아트(Pop Art)의 강력한 영향 아래 발생했다. 팝 아트가 1960년대까지 작가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주변 환경에 관심을 돌린 것처럼 하이퍼리얼리즘도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지만 소재를 취급하는 방식은 팝 아트보다 극단적이다. 가령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람의 미세한 피부 조직까지도 자세히 나타냄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거나 충격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을 우리말로 ‘극사실주의’라 옮길 수 있지만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실주의’의 극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해내는 사실주의는 복제에 대한 원본의 우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하이퍼리얼리즘에서는 그 위계를 전복시킨다.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들은 스케치나 습작보다는 카메라와 사진을 즐겨 사용하고, 사진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기 위해 환등기나 격자 등의 기계적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들은 회화를 통해 사진에서 나타난 실재를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실재적으로 느끼게 하기에 사실주의에서의 원본과 복제의 우위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1960년 후반에 미국에서 탄생한 새로운 성향의 미술사조인 하이퍼리얼리즘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미국보다 약 10여 년 뒤인 1970년대 중반부터 젊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클로즈업된 기찻길과 조약돌을 정교하게 그려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담아진 듯한 장면을 연출한 주태석 화가 △천과 단추 사이의 촘촘한 주름이 드러나는 부분의 음영까지 그려내 쿠션을 실감 나게 표현한 지석철 화가 △인물의 피부 솜털과 모공까지도 그려내며 사진보다 더 실재 같은 인물화를 그려내는 정중원 화가 등이 대표적이다. 회화 외에 조각과 영화 등의 예술 분야에서도 하이퍼리얼리즘이 이용된다. 하이퍼리얼리즘 조각가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인체를 통해 실제적으로 연출한다. 하이퍼리얼리즘 조각가들은 솜털, 잔주름, 핏줄, 반점, 혈관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극도로 섬세하게 신체 부위들을 실재처럼 생생히 묘사하여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또한, 예술의 영역에서 실재가 아니면서도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의 세계를 구현한 예로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되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현실을 그린 영화 <매트릭스>를 비롯해 하루 24시간 생방송 되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영화 <트루먼 쇼> 등이 대표적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순히 원본의 복제 또는 재현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원본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혹은 원본에서 완전히 해방된 독자적 결과물이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은 곧 우리의 현실을 비춘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의 경우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그림인지, 관객을 어리둥절케 한다. 복제하면 할수록 영상의 질이 떨어지던 비디오 파일과 달리 끊임없이 같게 복제되는 디지털 파일은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가 없다. 원본과 복제의 위계 서열은 사라졌고 현실과 가상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힘들다. 현실 속 모습보다 인터넷 가상공간 속 모습을 더 가꾸는 사람들, 그들에게 있어서 실재는 인터넷이 아닌 현실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기사 도우미

◇팝 아트(Pop Art)=파퓰러 아트(Popular Art, 대중예술)를 줄인 말로서,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의 한 경향을 가리킨다. 일상생활 용구 따위를 소재로 삼아 전통적인 예술 개념을 타파하는 전위적인 미술 운동으로, 광고ㆍ만화ㆍ보도 사진 따위를 그대로 그림의 주제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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