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남자에게 입힐 옷을 만들어요”
“꿈의 남자에게 입힐 옷을 만들어요”
  • 유은진 기자
  • 승인 2017.05.22 17:14
  • 호수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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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디자이너 우영미(의상 78) 동문

우영미(의상 78) 동문은 여성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남성복 디자인의 문을 연 사람이다. 1998년 ‘솔리드옴므’를, 2002년에는 '우영미' 라인을 론칭하며 이른바 남성복 분야의 ‘대표선수’로서 활발히 활동 중인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 적 어떻게 자랐나.

굉장히 독특하고 낭만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어요. 말하자면 ‘아티스틱하고 철 없는 보보스’셨죠. 감성 충만하고 비현실적이셨어요.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은 흥했다 망하기를 반복했고 가계는 안정되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생활비를 아껴 먹을 것을 준비하는 대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날씨가 좋으면 꽃을 사는 등 자유롭게 사셨죠. 그런 자유로움이 부모님께서 우리 다섯 형제에게 물려주신 가장 큰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생활방식과 예술적 감성 덕에 지금 형제들 대부분 예술 쪽 일에 종사하고 있죠.

우리 학교에서 패션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

그 시대는 패션이 굉장히 궁핍한 시대였어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의상학과 커리큘럼에 남성복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어요. 패션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만연하고, 남성복 디자이너조차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죠. 아침에 학교 언덕을 오르면서 밤새 공부를 하고 반대로 내려오는 남학우들을 마주치던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대부분이 군복을 재염색해서 그대로 입고 다녔는데 일 년 내내 그대로 같은 착장이었죠. 패션은 문화고, 일생 동안 즐기도록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인데 권리를 차단당한 저 청춘들은 안타깝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 솔리드옴므 제공

항상 패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나.

꼭 패션에만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에요. 제가 어릴 때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만들기를 좋아하고 공상을 많이 하는 아이였어요. 디자이너라는 꿈을 구체화한 것은 우리 학교 의상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이고, 결정적으로 이 일에 욕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졸업 이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신진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면서였어요. 또래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전 세계에서 모였고, 저는 말하자면 국가대표였죠. 그곳에서 저는 그야말로 패션에 눈을 떴어요. 직접 보니까 패션의 세계가 어마어마하더군요. 이렇게 조직적이고 근사한 비즈니스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때 패션 디자인이 내 평생을 걸고 해볼 만한 일이라고 느꼈죠. 결과적으로는 3등을 했어요. 전 세계에서 3등이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순위권에 든 거예요.

졸업 후 대기업에서 2년간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했다고 들었다.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이 요구하는 스타일과 제가 지향하는 스타일이 맞지 않았어요. 기업에서는 대단히 여성스럽고 귀여운 옷을 만들 것을 요구했고, 그것이 괴로워서 1년만에 떠났어요. 그리고 아주 조건이 열악한 작은 회사에 새로이 입사해 남성복을 만들기 시작했죠.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에 그렇게 과감한 선택을 한 거예요. 지금 돌이켜 보면 남성복에 대단히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우 동문이 디자인 작업을 하는 솔리드 옴므 작업실.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서 솔리드옴므를 론칭하기까지 공백 기간은 없었나.

공백기는 없었어요.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서 훨씬 고생스럽고 열악한 조건의, 지금 말하자면 중소기업을 여러 군데 다녔는데, 그 때 훨씬 더 일을 많이 배웠어요. 대기업에 있을 때는 내가 일종의 부속품이었기 때문에 내 역량을 마음껏 보여주지 못했지만 중소기업으로 옮긴 뒤에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일을 많이 배웠죠. 그리고 지금도 그 때 그러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해요.

 ⓒ 솔리드옴므 제공

국내 여성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남성복 시장에 뛰어들었다. 남성복을 만드는 여성 디자이너라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는지. 반대로 더 좋은 점이 있었다면.

힘들었던 점은 없었지만 반대로 유리했던 경험은 상당히 많아요. 디자이너가 가장 넘기 힘든 한계는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자기 취향, 자기 몸, 자기 성격, 자기 주변 환경, 자기 나이…. 그런 것들을 극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아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발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남성복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제 옷을 만들지 않아요. 대신 항상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이 입을 옷을 만들죠. 그러니 저에게 한계란 없어요. 저의 나이나 신체도 한계가 될 수 없고, ‘남성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편견도 없이 누구보다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어요.

2011년에 한국인 최초로 파리 의상조합의 정회원이 되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제 브랜드가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예요. 프랑스는 유럽 패션의 핵으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에요. 프랑스에서 패션쇼를 하려면 의상조합에서 승인을 해 줘야 하고, 정회원이 되면 그런 스케줄 안에 내 권리를 갖게 되는 거예요. 때문에 조합은 아무에게나 개방되지 않아요. 저도 처음 몇 년간은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노력 끝에 다른 회원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얻어낸 자리죠.

2014년에는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선정한 ‘글로벌 패션 500인’에 선정되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전 세계 패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그전까지 한국은 ‘패션’ 하면 떠오르는 곳이 아니었고,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한국 디자이너도 전혀 없었어요. 말하자면 대표선수가 없었던 거죠. 우리가 파리를 패션의 도시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곳에 기반을 둔 많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우리나라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저를 계기로 한국의 패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거죠.

   
  ⓒ 솔리드옴므 제공

 

현재 한국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10년째 파리 콜렉션에 참가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패션에 대한 열망과 국제화예요. 저는 앞으로 어떤 패션 브랜드든 글로벌 브랜드로 인정받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콘텐츠를 순식간에 들여 올 수 있는 시대예요. 한 곳에서만 안주하고 국제 무대에서 입지를 다지지 않으면 브랜딩이라는 걸 할 수가 없어요.

요즘 대학생들의 패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대학생 세대가 패션이라는 삶의 큰 즐거움 중 하나를 만끽하는 것 같아 기뻐요. 저의 세대는 옷 자체가 귀한 탓에 패션이 뿌리내리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반대로 지금 대학생 세대는 관심과 애정이 있으면 얼마든지 패션을 표현하고 배울 기회가 있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 옷을 일회성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아무 옷이나 생각 없이 대량으로 구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버리고 반품하곤 하는데, 그런 태도는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입지 않을 옷 여러 벌보다는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옷 몇 벌만 있으면 패션을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 동문이 옷을 디자인하는 모습과 브랜드 '우영미' 라인의 옷을 입은 모델(오른쪽 위).

앞으로의 계획은.

브랜드가 두 개 있어요. 하나는 솔리드옴므, 하나는 우영미 라인이고, 제게는 두 아들 같은 존재예요. 이 두 브랜드의 옷이 전 세계 어디서나 젊은이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의상학과 후배들에게, 진로 문제가 불투명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패션은 에너지가 다른 일의 열 배는 더 필요한 분야니 열정을 쏟으며 집중하면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해요. 또, 우리 학교가 요즘 건승하고 있어 저도 동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요. 지금도 재학생 시절 명륜동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생각나곤 해요. 우리 학교가 점점 더 명문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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