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청년 새끼』의 저자 최서윤 씨

기자명 박형정 기자 (hj01465@skkuw.com)

청년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 듣는 것이 가장 좋을까. 청년세대를 분석하는 학자도, 곁에서 지켜본 부모님도 좋지만, 아마도 가장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청년 당사자일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잠시 쉬고 있는 청년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낸 독립잡지 <월간잉여>의 편집장인 최서윤 씨는『미운 청년 새끼』라는 책을 통해 또 한 번 청년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월간잉여>와 『미운 청년 새끼』는 둘 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계기가 무엇인가.

이 시대 청년들을 대변하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또한 청년이고, 청년들이 경험하는 문제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가능했다. 이 정도면 청년들이 목소리를 모아 사회에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월간잉여> 창간 당시의 사회적 화두는 ‘힐링’이었다. 유명 명사들이 나와 청년을 대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하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말하는 ‘청년들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힐링 메시지에 청년들은 스스로를 노력이 부족했다고 자책하며 자존감을 낮추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비단 청년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탓도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잡지를 만들어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미운 청년 새끼』는 청년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쓰게 되었나.

기존에 나왔던 청년과 관련된 책들은 학자가 청년세대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거나 청년 중에서도 남성들이 집필한 책이 많았다. 분명 의미 있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청년의 이야기로서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제외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를 비롯한 공동 집필자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이자 청년인 우리는 어떠한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등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이 모든 청년의 이야기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고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현재 사회는 청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나.

한때는 청년들이 더 노력해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기를 바랐더라면 지금은 청년을 불쌍하니까 도와주자는 식의 연민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특히 미디어에서 청년들의 불쌍한 모습만 부각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담담하게 사는 청년보다는 불행함을 껴안고 사는 청년을 방송으로 내보내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서 그러는 것 같다. 자극적으로 보도해야 사람들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양상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으면 그 힘듦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가 도리어 청년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청년들이 마냥 불쌍한 존재로 소비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청년세대를 부르는 용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N포 세대’나 ‘달관세대’ 등의 언어를 만든 사람은 청년 당사자가 아닌 기득권층이다. 그래서 언어가 내포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과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N포 세대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사회에 알려 복지 담론을 활성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연애나 출산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전제에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는 청년들의 시각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얘기를 스스로 하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청년들의 이야기가 전부 수렴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기성세대가 규정한 이름에 발 묶일 필요는 없다.

청년세대를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규정지으면 상대를 한눈에 다 파악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청년세대도 하나의 범주로 묶기에는 많은 요소들과 정체성들이 있는데, 섣불리 하나의 용어로 묶어놓으면 놓치고 지나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청년세대를 규정한 용어가 청년을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개개인의 존재가 아니라 규정된 바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개인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에서 청년에 대해 인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

굳이 청년을 규정하고 일반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언론이나 정책을 만드는 집단의 경우 청년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각 세대를 하나로 표현하는 단어를 찾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보통의 개개인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특히 세대가 다른 경우 젊은이들은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청년과 관계를 맺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