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은진 기자 (qwertys@skkuw.com)

또 일이 밀렸다. 토요일 하루 안에 문화면 기사와 배너 문구를 쓰고, 일러스트 세 장에 성대문학상 레이아웃을 짜고 취재 후기까지 쓰게 됐다. 변명은 있다. 어제는 성대문학상 일러스트를 그렸다. 정작 그림을 그린 시간은 두 시간뿐이지만 구상한다고 머리를 쥐어짜는 데 오래 걸렸고, 기사를 쓸 시간도 사흘이나 있었지만 쓸 말이 마땅치 않으니 취재가 끝날 때까지 일단 기다린 것뿐이다. 나는 나름대로 바빴다.

사실은 똑같은 변명을 두 학기째 하고 있다. ‘미루지 말자’고 좌우명도 정했건만 조금도 성실해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일을 미뤄 놓고서 또 다음에는 미루지 말자 다짐하기를 반복한다. 작은이야기 인터뷰 시간에 수습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받을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다. “미루지 마세요, 인터뷰이와 약속은 꼭 미리 잡아 두세요.”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데, 미루지 말걸, 인터뷰이와 약속을 미리 잡을걸.

인터뷰 자리에서 팬덤 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방안을 묻자 교수님은 “자정만이 답”이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팬덤이 그 자체로 소비자이며 생산자인,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에 주변의 감시를 바라지 말고 자기반성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아 일이 바빠질수록 머릿속에 맴돈다. 일이 밀리면 신문사 동기들은 내가 일이 너무 많아 토요일까지 쉬지 않고 바쁜 줄로만 안다. 전부 내가 평일에 일을 미리 해두지 않아 자초한 고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니 나만의 리그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정말 촉박해지면 누군가 채찍질해줄 것만 같아 하염없이 미루고만 있었는데, 내가 미뤄둔 일을 대신 찾아와 상기시켜주는 사람은 없다는 게 신문사에 들어온 지 두 학기가 지나고서야 실감이 난다. 팬덤 문화도 나도, 감시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당사자의 자정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다음 학기에도 남기로 했고 여전히 좌우명은 변하지 않았다. 미루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