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은진 기자 (qwertys@skkuw.com)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팬덤이란

‘팬덤(fandom)’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팬덤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어떤 것에든 생겨날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팬덤이란 말로부터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연예인 팬덤일 것이다. 팬덤은 단순히 혼자서 연예인을 좋아하며 연예 콘텐츠를 소비하는 개인을 여러 명 묶어놓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집단적으로 활동하고 상호작용하며, 직접 연예인과 관련된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한다. 한때 팬덤이 연예인의 부속으로서 그 인기를 증명하는 숫자의 크기에 불과했다면, 오늘날의 팬덤은 연예인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요소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고 평가된다.

미디어의 발달과 아이돌 팬덤의 성장

1980년대에 연예인 팬덤 문화를 처음 형성한 ‘오빠부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팬덤 문화는 큰 변화를 겪었다. 초기의 연예인 팬덤은 브라운관 너머로 보던 연예인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발로 뛰며 쫓아다녔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급되고 대형 포털 사이트에 온라인 팬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팬덤은 팬 자신들만의 소통의 광장을 갖게 됐다. 이곳에서 팬은 본격적으로 연예 콘텐츠를 직접 생산, 공유하기 시작해 팬덤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했다. 곧이어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가 우후죽순 생겨나 팬덤은 연예인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 ‘우리 OO이’로 느끼게 된다. 연예인에 대한 정보를 그들의 SNS 계정으로부터 바로 받아 보며 그들의 일상에 훨씬 가까워진 것이다. 팬덤은 이제 연예인 기획사나 파파라치가 콘텐츠를 제공하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팔로우’ 버튼만 눌러두면 연예 뉴스를 통하지 않아도 연예인이 직접 올리는 ‘셀카’와 소소한 수다를 볼 수 있고 언제든 댓글도 달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연예인으로부터 답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을 보면서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는 ‘마이리틀텔레비전’ 등의 프로그램이 유행하며 연예인과 팬 간의 쌍방향 소통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해졌다.

아이돌 팬덤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승아 미국 UCLA 강의교수(이하 이 교수)는 “미디어가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지만 한 발 늦게 따라갈 때도 있다”며, “아이돌 육성 TV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이 성황리에 방송 중인 지금은 미디어가 따라가는 시기”라고 말했다. 지금은 팬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직접 생산해내는 시대다. 이 유행의 물살을 타고 아예 아이돌까지 취향에 맞게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 팬이 직접 연습생을 골라 육성하고 활동의 방향까지 지정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이다.

연예인과 팬덤의 관계 변화

초기 팬덤에게 연예인이란 우상이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스타’라는 말 그대로 밤하늘에 뜬 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예인과 팬 간의 위계가 무너지고, 오히려 팬이 연예인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최초에 수동적인 성격을 띠었던 팬덤이 점차 능동성과 주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최초의 아이돌 팬덤은 기획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던 팬덤이었다. 그전까지는 특정 가수를 좋아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자연스럽게 오빠부대와 같은 팬덤을 형성했다면, 아이돌 그룹 ‘HOT’는 데뷔와 동시에 기획사가 직접 팬클럽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팬클럽 회장이 있었고, 기획사를 가장 우위로 팬들 간에 위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온라인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획사의 지휘를 따르지 않아도 SNS를 통해 얼마든지 활동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고 팬덤은 위계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팬덤은 제각기 흩어져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예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러나 콘서트를 비롯한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연합해 연예인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거나 모금을 하는 등 자율적으로 흩어지고 뭉치기를 반복한다.

이 교수는 이와 같은 관계 변화를 겪으며 팬덤 안에서 일종의 시민의식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최초의 수동적인 팬덤은 연예인에게 충성했고, 기획사가 주문하는 대로 따랐다. 아이돌이 콘서트를 열면 따라가 응원해야 했고, 멤버별로 개별 사진 음반이 열 장 나오면 열 장을 전부 사 모아야 했다. 그러나 팬덤과 연예인 간의 위계가 사라지고 팬들이 맹목적인 추종자가 아닌 합리적인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연예 콘텐츠의 소비 동기로 연예인에 대한 충성만이 아닌 시민의식이 함께 작용하게 되었다. 이제 팬덤은 연예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크건, 바람직하지 않은 콘텐츠라면 소비하지 않는다.

팬덤 문화의 명암

팬덤 문화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 측면이 있다. 대표적인 이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 콘텐츠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팬덤은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로 거듭났다. 아이돌 그룹의 안무 이름을 짓거나, 그룹을 상징하는 아이콘과 마스코트 캐릭터, 팬덤만의 응원 도구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한다.

팬덤의 이름으로 사회 공헌도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자기가 추종하는 연예인에게만 편지와 선물을 전달했다면, 요즘은 여러 팬덤이 연예인의 이름을 걸고 봉사에 나선다. 팬들이 합심해서 국내 취약계층 복지 단체에 기부하고, 연탄을 나르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공헌은 여러 사람에게 이롭다는 이유로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팬덤 문화에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우선 연예인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간섭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쌍방향 소통의 창구가 열림에 따라 팬덤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라고 주장하며 연예인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려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의 개인 SNS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는데 내게 답장하지 않았다’며 비난하거나, 연애는 물론 특정 취미활동까지 금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 교수는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건전하지 못한 정치적 수단을 쓰는, 팬덤 내부의 소위 ‘정치질’ 문제를 또다른 문제로 지적했다. 한 연예인이 일으킨 문제 행위를 팬이 비판하고 공론화했을 때, 이 내용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는 것을 막고 은폐하고자 팬덤 내에서 비판의 근원을 공격하고 음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의 잘못을 축소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오히려 이를 지적한 팬의 신상 정보를 캐내며, 일제히 인신공격을 퍼붓거나 팬덤 커뮤니티 밖으로 추방하기도 한다.

팬덤, 어디로 가야 하는가

팬덤의 자정만이 앞서 지적된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고 이 교수는 전했다. 결국 팬덤이란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상품이 아닌 독립적인 개인으로 봄으로써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며, 연예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금하고 비판할 부분은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석 배우가 공식석상에서 여배우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직후 팬들이 사과를 요구하며 우편으로 페미니즘 서적을 보내자 배우가 이를 읽고 인증 사진과 사과문을 남긴 사례, 걸그룹 ‘여자친구’의 사인회 자리에 ‘몰카 안경’을 착용하고 참가해 동의 없이 멤버의 동영상을 촬영한 남성에 대해 팬덤이 나서서 처벌을 요구한 사례를 자정을 위한 노력으로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