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동헌 기자 (kaaangs10@skkuw.com)

숙명여대 일본학과 박진우 교수

일본의 우경화 양상이 심상치 않다.

일본의 우경화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 위안부 문제, 나아가 *평화 헌법 개정 문제까지 일본 우익 세력이 빚어내는 일련의 논란이 표면화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지만, 보수 정당의 집권은 훨씬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정당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1955년 이후 1993년까지 38년 동안 계속 집권했다. 이를 55년 체제라고 하는데 일본 국민이 자민당을 계속해서 찍어주었기에 자민당은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여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한 정당이 38년 동안 집권을 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국민이 자민당을 계속 지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일본은 거품 경제를 타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전례 없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국민들이 우익 정권을 찍어준 것이다. 일본이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것은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된 세계질서 덕분이었다. 일본은 냉전의 최대 수혜자다. 1950년대 당시, 일본과 한국을 동아시아 공산화의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미국은 한반도 남부에 군대를 배치하고 일본과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미국은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고 평화 헌법을 제안하여 일본의 안보를 대신해서 책임지게 된다. 덕분에 일본은 자국의 안보 비용을 미국에 전가함으로써 경제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잇따른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속에서 두 전쟁의 군수 기지화된 일본은 전쟁 특수까지 누리게 되면서 연평균 10%의 고속 성장이 가능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와 호황기의 거품 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경제가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자민당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국민의 지지가 사그라들었고 55년 체제가 막을 내린다.

55년 체제가 무너진 뒤 일본의 우경화 정세는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었나.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자민당에서는 일본 국군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때 국민의 반발이 거셌다. 냉전이 무너지면서 국제 분쟁이 국지전의 양상으로 복잡하게 전개됐는데 이때 걸프 전쟁이 발생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다국적군을 결성한다. 미국은 일본에게도 참여를 요구했는데 자민당 중심의 우익 세력은 파병을 지지했지만, 야당 측에서 평화 헌법을 근거하여 반대했다. 국회에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1991년 걸프전이 다국적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일본은 파병을 통해 ‘국제 평화’에 기여하지 못 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질타를 받았다. 이에 더해 다국적군에 참여하지 못 한 대가로 일본은 걸프전에 사용된 군사비 130억 달러를 떠맡게 된다.

이 사건으로 당시 우익 세력 사이에선 평화 헌법으로 인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군사적 역할을 못 했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돌기 시작했다. 역사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츠 교수는 *자유주의사관을 다시 들고나왔다. 지금도 논란이 많은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도 이때 나온 자유주의사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새역모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사관은 일본의 역사 교육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침략 전쟁’이라 가르쳐 일본 사회가 지나친 자학에 빠져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새로운 역사교육을 통해 애국심을 기르고 국제사회에서 신망받기 위해 참전 가능한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새역모와 함께 90년대 중후반에 만들어진 일본 최대 우파 단체 ‘일본회의’가 우경화의 흐름을 주도했고 이 두 가지 큰 축이 현재까지 배후에서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자유주의사관은 천황에 대한 의식과 관련이 있나. 군국주의 시절 천황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이용됐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인 사망자만 약 300만 명에 이른다. 당시 일본은 연합군과 전선을 벌이면서도 미국과의 전쟁도 감행했다. 이렇게 무모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천황을 신격화하여 국민들이 믿도록 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시절에는 천황을 신의 자손이라 가르쳤다. 일본은 살아있는 신이 지배하는 신국이므로 인간이 지배하는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국민들이 가지게 됐고 전쟁은 천황의 명령이기에 기꺼이 참전하여 죽을 수 있어야 했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천황을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고 야스쿠니 신사에 묻힐 수 있다’라는 식의 세뇌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천황이 신사 참배를 하진 않지만, 전전(戰前)에는 직접 참배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상을 비롯한 각료들이 아직까지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는 의미다. 우익 세력은 이를 넘어 현재의 천황도 신사 참배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 천황에 대한 국민의 의식은 어떤가.

우익 세력에게 천황은 절대적인 존재다. 현재 평화 헌법에는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로 명기돼 있는데, 우익 세력은 헌법 개정을 통해 천황을 ‘상징이자 원수’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황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전전의 ‘절대적 천황제’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론 조사를 살펴보면 ‘지금과 같이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상징적인 존재의 천황이 좋다’로 대답한 비율이 수십 년 동안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 속에 녹아있는 현재 천황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과거 군국주의 시절 천황이 지나치게 신격화됐고 또 그로 인해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에 반성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우경화가 어떻게 진행될 거라 예상하는가.

국제적인 변수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말했다시피 지금 대다수의 일본 국민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자중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안보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현재 북한과 중국의 정세를 보면 한동안은 우익 정권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아베의 아내인 아베 아키에의 부패 스캔들로 논란이 빚어졌음에도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국민은 북한의 군사 도발에 굉장히 예민하다. 문제가 불거질 때면 일본 뉴스에 북한 특집이 연일 방송된다. 초등학교에서는 등교 시 미사일이 떨어질 때를 대비한 행동 훈련을 하기도 한다. 한편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의 문제가 얽혀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동아시아에 있으면서도 동아시아 국가들보다는 미국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 당선인 신분으로 가장 먼저 아베 총리를 만난 바 있다. 일본의 우경화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국제 정세 차원에서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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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헌법=일본의 헌법은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제시한 ‘맥아더안’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이 헌법은 1947년 5월 시행된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인의 내용을 9조에 명시하고 있어 ‘평화 헌법’이라고도 불린다.

◇자유주의사관=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참회하는 지난 역사 인식을 ‘지나친 학대’라고 비판하며 등장한 역사관. 새역모를 비롯한 우익 세력은 자유주의사관을 통해 일본의 역사를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과거 역사를 정당화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