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남, 여, 문장, 그리고 또 다른 어떤 한 가지
[2017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남, 여, 문장, 그리고 또 다른 어떤 한 가지
  • 성대신문
  • 승인 2017.06.06 16:38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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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과 황호덕 교수

영화감독 고다르는 남자, 여자, 카메라만 있으면 영화가 된다고 했다. 잔인한 농담이지만, 과연,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다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남자와 여자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단 하나의 사건, 그러나 그럴 법한 사건이 필요하고, 문장으로 그 사건을 어디만치 끌고 가야 한다. 그 문장은 또 사건만을 쓰는 문장이 아니라, 이 세계와 사고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지닌 삶의 문장일 것을 요구받는다.

이번 성대문학상에는 총 29편의 작품이 들어왔다. 예년에 비해 문장화에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많았던 탓일까. 읽어가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대학생들이 겪는 고민과 고통의 질량이 더욱 무거워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가까이는 세속화된 기성세대의 심부와의 대면이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 고시원에서의 녹녹치 않은 삶 등이 절실한 어조로 다뤄지고 있었다.  현실을 능가해버린 대중문화 속의 SF적 과실재들, 태극기 집회와 우익 노인들, 메르스 사태 이후의 감염의 공포와 같은 미디어를 매개한 상상력들 중에도 돋보이는 글들이 적잖았다. 무엇보다 뜻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뜻마저 가지기 어려운 이 시대의 사랑을 다룬 글들에서는 결코 “젊은 날의 초상” 같은 말로는 요약될 수 없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다만 이러한 이유들과 글쓰는 자의 절실함이 남, 여, 사건만이 아니라, 문장을 통해 또 다른 어떤 글쓴이만의 인장(印章)을 통해 보편적 공감에 이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대화로만 이루어진 문장 혹은 상념으로만 점철된 문장이 아니라, 사건과 삶에 대한 사고를 함께 쓰며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장은 드물었다. 이를테면 대학 주변의 선배, 후배, 교수와의 가구적 사랑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절실함을 넘어 삶이나 세계에 대한 글쓴이만의 인식-그것도 독창적 결구력을 지닌 사건과 문장에 의해 유도된 인식이 필요하다. 너무 자기에게 가까워 신변잡기나 고백에 가까워진 글, 너무 멀어 뉴스의 가공에 가까워진 글들, 매개되지 않은 신기 취향들을 조심조심 제외하고 나니 서너 편의 글들이 남았다.

<페허의 건축가>에는 글을 읽도록 이끄는 사건의 새로움이 있었고, 사건을 끌어가고 대화를 조직하는 결구력이 있었다. 기억 말고는 폐허만 남은 한 인물에게 시간에 부식된 진짜 폐허를 건축해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온다. 마침내 시간에 박제된 기억만 남은 한 남자. 다만 마지막 처리가 설득력이 떨어지고, 소설 밖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적어 아쉬웠다. <하마(河馬)>는 신화적 삶에 개입하는 ‘문명’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야심적인 작품이었다. 세계사적 규모의 상상력이 호방하고,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에 걸맞은 상상력처럼도 보였다. 그런데 지금 왜 이 소설인가, 이 이야기는 지금 여기의 삶과 어떤 연관을 맺는가 하고 묻자니 답이 궁해졌다.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기에 두 작품을 ‘최우수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그 외 <허기>, <돌아갈까>, <블랙아웃> 등의 작품들도 흥미로웠다. 다만 너무 늘어져 있거나, 너무 소략한 콩트에 가까운 약점이 있었다. 범상한 서사지만, 그 자신만의 것일터인 사물과 심리를 쓰는 묘사력이 돋보인 <허기>를 가작으로 골랐다. 여전히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이 광폭한 시간을 멈추는 젊은 글쟁이들이 있다. 세계가 잠깐이라도 멈추며 목을 돌려 스러진 것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응모해주신 분들 모두 언젠가 뜻을 이루기를 빈다. 

 

황호덕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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