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탐(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ㆍ1기) 원우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Tory Lanez 음악을 듣고 있었다. 20년 전 노래인 Brown Stone의 If you love me를 샘플링해서 작년에 무척 인기였던 노래였다. 곡의 제목은 Say it. 수록된 앨범은 I Told You. 꽤나 그럴싸하게 이어지네,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내게 성대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해왔다.  

예고에서 함께 글 쓰던 애들은 일찍이 등단해서 이름을 검색하면 얼굴이 나오는 존재가 되었지만 내 시는 친구들 말고는 읽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 ‘요즘도 글 써?’ 하고 물어오면 ‘쓰는 것 접었어.’ 하고 대답했다.
시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쓰는 것을 그만두고 쓴 시로 우연히 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바다 모래 아파트에 살아>는 독립하고 잠시 살았던 신도시 아파트 이야기다.
90년대 초 분당이나 평촌, 일산 같은 신도시가 형성되며 수많은 아파트가 지어졌고 건설사는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바닷모래를 사용하여 집을 지었다. 바닷모래는 아파트 건축에 적합하지 않은 재료였고 깨끗이 세척되지 않은 모래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연약한 바닷모래 아파트가 머지않아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집은 1인 노인 가구가 많이 사는 소형 아파트였다. 편안하고 부족함 없는 사람들의 집이 아니었다. 밤에는 노인 전용 구급차가 자주 왔다. 내리 기침을 하던 옆집 할아버지의 전동 휠체어는 어느 날엔가 치워져 있었다.
동네에는 사선을 그리듯 걷는 아저씨가 있었다. 기이한 걸음을 보며 생각했다.
‘반쯤 사람이 된 게가 길을 걷는구나. 아주 천천히 바람을 가르는 걸음걸이. 분명 저 이는 살던 바다의 모래를 따라온 것이구나.’ 햇살 좋은 날의 상상력은 시의 한 행이 되었다.
그 아주머니가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던 것은 좋은 일이 많아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흥얼거림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할 때면 매번 전공을 물어왔다.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 노래란 꼭 생의 의지처럼 멈추기가 싫어서, 그래서 계속되는 그 사람의 서사일까, 실은 부르기를 멈추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일종의 형벌 같은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어미 민어로 그 사람을 표현하였다.
 
볕이 덜 드는 장소, 낮은 지대, 기울기가 이상한 건물,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사회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의 삶과 죽음 일부분을 듣고 보고 읽으며 감정에 젖어 슬퍼하다가 잊게 되는 방식의 애도가 싫었다. 남기고 싶었다. 공론화되었던 2014년 세 모녀의 죽음도, 2008년, 내 친구 이혜정과 걷던 공덕동의 어느 낡은 아파트에서 목숨을 끊은 할아버지의 죽음도. 시를 쓰는 것은 개인적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분들이 바닷모래 아파트의 이야기를 알게 될 것이다. 부족한 글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부끄럽지만 많이 기쁘다.
 
더불어 나랑 밥 먹어주는 다정한 성대 학우들과 사회학과 대학원 동기들, 친절한 사회학과 조교님에게 고맙다. 많은 도움을 주신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님에게 감사드린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다. 수업을 오가며 친구가 된 학우들, 경계 없이 이것저것을 함께 말하던 비교문화협동과정의 조교님도 그랬다.
여전히 젊고 아름답고 센 척을 하는 나는 이렇게도 싱그러운 시간을 살아간다. 예술철학 수업이 끝나고 학교 정문을 내려가는 길, 하늘을 향해 고개를 조금 젖혔다. 볕이 바짝 다가오다가 흩어졌다. 법학관 앞에서는 야구공을 주웠다. 김봉석 교수님은 야구를 하고 오지 그랬냐며 물어왔었다. 눈을 반쯤 감고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바람이 머리카락을 자꾸 만졌다. 오늘은 화창한 날이었다.

최탐(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ㆍ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