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수민 차장 (soommminn@skkuw.com)

혼자서 수능을 한 번 더 준비해야 했던 나는 여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모든 계획은 스스로 세워야 했으나 지키지 않아도 혼내거나 잔소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잠들고 싶을 때 잠드는 게 습관이었다. 그러나 입학 후,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대학 생활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패기와 호기심에 가득 차 뛰어들었던 신문사 역시 어느새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일들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추억이 쏟아진 한 학기가 끝나고 겨우 방학이 되어서야 학기 중에 미처 못 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들을 찾아뵙고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을 떠나고 연례행사처럼 강원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말하자면, 근 한 달은 한 학기동안 정신없이 달렸던 나 스스로에게 주는 포상휴가인 셈이었다.

쉴 만큼 쉬고 놀 만큼 놀고 나니 비교적 정적인 활동을 할 여유가 생겼다. 자격증이나 어학시험을 준비하고 언젠가 읽겠지 싶어 미루어두었던 책들을 읽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앤더슨 쿠퍼의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현장에 접근하고 직접 체험하며, 그 속에 있는 것뿐이다. 이미지는 때로 스스로 구도를 잡는다. 모든 움직임은 당신 내부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계속 움직여라. 계속 침착하라, 계속 살아 있어라. 폐에 공기를 밀어 넣어라, 혈액 속에 산소를 공급하라. 계속 움직여라. 계속 침착하라. 계속 살아 있어라.”

CNN의 대표 앵커이자 재난 전문 기자인 그는 그의 저작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한다. 수습 트레이닝 중 나의 가장 큰 고민은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였다.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지 보다 나에게 이걸 할 ‘자격’이 있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부끄러움’은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었다. 트레이닝 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신문사에 들어온 것에 대한 후회와 나 자신의 능력 없음에 대한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은 내가 이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 쏟을수록 작아졌다. 이번 과제가 아쉬웠다면 그 다음 과제는 이번보다 더 열심히 해내려고 노력했다. 나의 무능력이나 자격 없음에 대해 하염없이 고민하는 것보다는 내게 지금 주어진 일을 조금 더 높은 완성도로 마무리하는 게 그러한 감정들이 작아지는 데 훨씬 도움이 됐다.

수습 과정 중 희망 부서에서 인턴을 할 때, 나는 이리저리 발로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시끄러운 곳은 일단 피하고 봤던 내가 축제 현장 속에서 직접 그 열기를 느껴보기도 하고 선배 기자의 인터뷰를 따라가 인터뷰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보고 사진도 찍었던 경험은 앞으로의 신문사 생활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북돋아 주었다.

수습기자 과정을 마쳤다고 해서 나에게 바로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배워야 할 일들과 ‘해내야’ 하는 일들이 천 리길 같을 것이다. 하지만 힘들면 힘들수록, 지치면 지칠수록, 그만 두고 싶다 못해 신경질이 나면 날수록 포기하지 않고 더 큰 에너지를 발산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끝까지 해낼 것이다.

“상어는 살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어가 숨 쉬는 유일한 방법은 아가미로 물이 계속 지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앞으로 움직이는 것뿐이다.” 앤더슨 쿠퍼,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