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는 다양한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 최근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 논쟁, 지하철 안전사고, 아동 학대, 성폭행, 지진과 같은 새로운 위험 논쟁은 심각성과 복합성을 띠며 위험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다양한 ‘위험’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광범위하게 들어오고 있다. 위험사회의 본질 중 하나는 소위 시스템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위험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구성되는 위험 개념이 일반인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위험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닥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위험원이 예전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으며, 향후 위험성이 심화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험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공적인 커뮤니케이션 이슈로 삼아 반드시 폭넓게 공론화해야 한다. 이에 ‘위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러스트Ⅰ유은진 기자 qwertys@

그간 우리 사회에서 위험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매우 미약했다. 이로 인해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 모두 위험을 과대 또는 과소하게 인식함으로써 위험에 과학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였으며 공론화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위험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불분명하고 위험 관련 중요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위험이 점점 더 정치화되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원자력 5, 6호기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과학자들은 사회적 인식에 관심이 적었고, 공중은 과학적 지식에 취약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로 인해 잦은 정보의 통제나 왜곡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저항이 거세어져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을 동반한다. 우리나라의 위험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이슈 관리’수준이며, ‘갈등 후 대응’이라는 매우 초기적 단계에 머무른다고 평가된다.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바로 세밀한 위험커뮤니케이션 전략수립이 관건이다. 민주사회에서 시민은 자기의 삶과 특히, 위험한 것과 관련하여 내리는 결정이 공적으로 정당성이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양방향적인 소통 즉,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것이다. 대화가 없다면 어떠한 것도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회적 대화의 목적은 관련된 시민을 소위 ‘위험에 성숙한’ 모습을 하도록 하는 데 있음을 볼 수 있다. ‘위험제로사회’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험제로라는 불가능 속에서 문제를 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과학자와 일반 시민 모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송해룡 교수
신방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