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최근 들어, 과외를 하던 학생들과 같은 고등학교 친한 후배들에게서 메일들을 받고 있다. 메일의 내용은 대학교 입시 자기소개서이다. 메일을 보낸 이유는 자소서 속 문장들 호응이 자연스러운지 또는 읽기 편한 글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고등학교 3년간 한 활동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모습을 단 4500자 이내로 최대한 겸손하고, 멋지게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4500자 중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히 작성된 것이 없었다. 나는 그 4500자를 정말 잘 쓰고 싶어서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부터 원서접수를 할 때까지 수도 없이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모르는 것이 생기면, 어떤 책을 읽고, 동아리에서 그 책에 관해 토론하고,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식의 이야기로 말이다. 그렇게 작성된 자소서를 지인들에게 보여주며, 좋은 소리만 들으며, 혼자 흡족해했었다.

하지만, 자소서는 나의 진짜가 돼주지 못했다. 자소서 속 내 활동과 행동들은 내가 하고 싶어서(그냥)가 아니라 내가 해야 했던 것이다.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선생님들이 하라고 하셔서, 친구들이 다 하니까 와 같은 것이다. 자소서 내용은 마치 3년 동안의 모든 것을 이미 결정해 놓은 상태로 시간을 보낸 것으로 느껴졌다. 자소서 속 나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원래 내 성격은 즉흥적이고, 분위기에 따라 행동이 바뀌는 것인데 그렇지 못해서 답답하고, 나 자신이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빨리 대학생이 돼서 ‘그냥’이라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었다.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누구는 다 하니까’, ‘~하려면 이거 해야 해’가 아니라, 말이다. 예를 들어, 금요일 경제학 입문 수업시간에 갑자기 영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쉬는 시간에 영화를 보러 간 것이나, 4000원이란 비싼 돈 주고 카페를 갔다가 5분 만에 그냥 노래 부르고 싶어서 코인 노래방도 아니고, 시간제 노래방을 혼자 간 것이나(물론, 목 아파서 한 시간을 못 채웠다), 새벽 내내 친구들이랑 게임을 하다가 피시방을 나와서 해가 뜬 것을 보고, 그냥 계곡이 보고 싶어서 관악산 계곡을 간 것이 있다.

무엇보다 성인이 되고 나서, 매일 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놀았다. 그런 나날의 중간중간 잊지 못할 아찔한 기억들도 있지만, 대부분 재밌었던, 웃고 있는 모습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내 몸은 꽤 망가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한 것들은 행동의 결과에 따른 책임이 항상 따라오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영화를 본 것은 출석 점수가 삭감됐고, 카페에서 노래방을 혼자 간 것은 그 후의 저녁을 먹지 못했고, 계곡을 간 날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앓아누웠다. 무엇보다 그냥 술 마셨던 날들이 모여 몸의 수평적 성장을 만들었다. 지금 부리나케 운동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의 나의 모습 중 어느 모습이 옳은 것인지, 철저한 계획 속에 이뤄진 행동과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한 행동 중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없고, 책임만 질 수 있으면 문제없는 것 같다. 지금 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때 했던 행동들이 후회되거나, 시간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그냥’으로 살아야겠다.

충.. 성..      

 

이창현 (소비자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