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병준 편집장 (hbj0929@skkuw.com)

정돈되지 않은 것에는 누구나 불안 느껴
불안에 발버둥치는 것이 곧 정리정돈

한 독일인이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자 지나가던 다른 독일인이 다가와 묻는다. “Alles in Ordnung?(알레스 인 오르트눙?)” 괜찮으냐는 뜻이다.

이 문장은 심오하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든 것이 정돈 속에 있니?’다. 다듬으면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니?’ 정도다. 이 ‘정돈’을 묻는 말이 독일에서는 ‘괜찮니?’로 쓰인다. 영어의 ‘Are you OK?’와는 질감이 다르다. ‘Are you all right?’과도 결이 다르다. 괜찮으냐는 물음에서 정리정돈을 논하는 그 오의(奧義)는 대체 무엇인가.

정돈된 삶에 대한 독일인들의 고집은 경악스럽다. “독일의 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는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푯말 때문” “새벽 두 시에 차 한 대 없는 도로에서 누군가 신호등 옆에 대기 중이라면 그는 독일인”이라는 농담이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다. 2015년 미국을 방문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現 대통령) 독일 前 외교장관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독일 여행객을 알아보기는 쉽다. 그들은 나무로 둘러싸인 곳이라 해도 절대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인들은 비(非)정돈상태를 유독 불안하게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사실 인류보편이다.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불안을 느껴왔다. 새까만 어둠과 날렵한 맹수, 끝날 것 같지 않은 무더위와 혹한, 확신할 수 없는 내일의 일출(日出), 시간과 공간 속에서 출렁이는 자연의 삼라만상에 인간은 불안해왔다.

그래서 인간은 그 자연을 정리정돈했다. 거친 땅을 개간하고 농지를 경작하고 담을 쌓고 정원을 만들어 조경했다. 성경 속 아담과 이브도 에덴동산을 정돈하며 살았다. 성경의 창세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더라”고 전한다. 

다만 아담과 이브는 ‘믿음’의 힘으로, 인간은 ‘불안’의 힘으로 정돈했다. 그 어찌할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의 불안에 맞서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 정돈인 것이다. 지도와 달력은 정돈의 정점이다.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 위도와 경도를 그려 지도를 만들었고, 통제되지 않는 시간에 연월일을 부여해 달력을 만들었다.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인간은 북극성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수강신청도 마찬가지다. 불안에 맞서 수강신청에 성공하고자 우리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보이는 초 단위 전자시계를 모니터에 띄운 채,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는다. ‘3, 2, 1, 땡.’ 절정의 불안 속에서 마우스를 부술 듯 클릭해대는 우리의 손가락은 지도를 그리고 달력을 만들고 항해법을 기록해왔던 모든 인간의 손가락과 다르지 않다. 

“수강신청 in Ordnung?” ‘수강신청이 정돈 속에 있니?’ 이 문장은 심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