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자히드 후세인(경영전문대학원 SKK GSB 석사과정ㆍ3기) 원우

기자명 황준령 기자 (hwangjr@skkuw.com)

자히드 후세인 원우는 현재 ‘비정상회담’에서 파키스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한국으로 넘어온 그는 파키스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그가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과의 따뜻했던 첫 만남
친절했던 사람들 잊지 못해
다름을 인정하고 귀 기울이는 게 중요
 
 

파키스탄에서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

저는 파키스탄 북쪽 히말라야 산이 있는 곳에서 자랐어요. *스카루두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훈자 마을에서도 자랐죠. 사실 마을이 고산 지대여서 발전된 지역은 아니었어요. 전통적인 생활을 했었는데, 전통 스포츠는 *폴로였어요. 그런데 저희는 말이 없으니까, 뛸 때 말처럼 뛰고 이렇게 놀면서 자랐습니다. 축구도 좋아했었고,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어요.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한국에 관심이 생긴 계기는 가전제품이었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엔지니어링을 배워서 그 분야를 잘 알고 있었거든요. 한국 기업이 지은 도로도 유명했었고요. 그리고 사실 파키스탄과 한국은 4000여 년 전부터 역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간다라 지방(현 파키스탄)에서 마라난타 스님이 백제에 불교를 전파했거든요. 이런 계기들로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한국정부초청장학생으로 발탁돼서 한국으로 올 기회를 잡게 됐죠.

처음 한국에 와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처음 왔을 때는 천안에 살았어요. 당시에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이 없었는데, 그때 한국분들이 절 대해주셨던 걸 잊을 수가 없어요. 외국인을 많이 접하지 않으셨는데도 절 보면 말 걸어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제가 한국말로 말을 걸면 더 예뻐해 주셨어요. 물론 문화가 다르니 적응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경험은 없어요. 다만 한국 생활 초반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할 때는 할랄 음식만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학교 식당 아주머니들이 저와 친구들을 위해 생선을 준비해주시는 등 많은 분들이 배려해주셔서 잘 해나갈 수 있었죠. 

한국에서 이공계열 학부를 다니다 경영전문대학원으로 진학했는데 그 이유는.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를 다니다 우리 학교 SKK GSB로 진학했죠. 아까 말씀드렸듯 고등학생 때 엔지니어링을 배우기도 해서 전기전자공학부를 지원해 합격했는데, 다니다 보니 제 성격이 경영 쪽과 더 맞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파키스탄 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제가 가질 수 있는 강점이 바로 한국에서의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문화, 한국어, 한국 사람들과 접해본 경험이 있다는 게 파키스탄 학생들과의 차이점이니까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협상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이쪽 분야도 공부하게 된 겁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는지.

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항상 좋아해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 반장을 했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학교가 4개의 하우스로 나뉘어 있었고, 한 하우스 당 100여 명 정도였는데 제가 한 하우스의 리더였죠. 한국에 온 뒤엔 2012년에 파키스탄 학생 연합회의 회장을 맡았어요. 파키스탄은 지역별로 언어도 다를 만큼 다문화의 나라인데 그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서 활동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도 제가 살았던 지역만 알고 있었는데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과 만나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면서 어렵기도 했지만 많이 배웠고 재미있었습니다.

리더로서 많은 역할을 맡으셨는데 리더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는 무엇일지.

일단 리더가 앞장서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파키스탄 학생회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 이태원에서 행사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리더라고 해서 뒤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저도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생각으로 지하철역에서 안내판을 들고 일했죠. 제가 먼저 보여줘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저와 함께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또한,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다른 사람의 말을 조용히 듣고 이해해주는 능력은 리더로서 꼭 갖춰야 하죠. 제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나와 다른 문화와 의견을 인정해야 해요. 리더라고 해서 모든 걸 다른 사람들보다 잘 아는 건 아니니까요. 저보다 잘 알고 경험도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는 게 중요하단 걸 느끼고 있어요.

리더로서 가장 뿌듯했던 때는 언제인지.

파키스탄 학생회가 4백 명 가까이 되는 커뮤니티이다 보니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수업이 끝나면 부회장 등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 얘기를 듣고 문제를 파악해 해결 방안을 제시했죠. 저희 학생뿐만 아니라 대사님, 나이 많으신 분들도 있으신 자리에서 의논하고 그분들의 생각도 들었어요. 그 후 다 같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처할 절차도 정리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2013년에 파키스탄 학생 봉사 단체도 만들었어요. 대치동에서 매주 혹은 격주로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왔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희 덕분에 파키스탄 사람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는 말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한 명의 생각이라도 바뀐다면 큰 변화니까요.

‘비정상회담’ 방송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게 뭔가.

파키스탄을 알리고, 또 파키스탄에 한국을 알리는 것이죠. 지금도 가끔 영화에서 노동자가 나오면 파키스탄 사람들이곤 하거든요. 그런 이미지를 바꾸고 아직 한국분들이 모르는 파키스탄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것 외에 한국을 파키스탄에 알리는 데에도 힘쓰고 있어요. 페이스북에도 한국에서의 일상이나 한국 관련 정보를 올리고 있죠. 처음 한국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 반응이 왜 북한을 가느냐고, 전쟁인데 가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어요. 그만큼 파키스탄에서도 한국을 몰랐던 거죠. 그렇지만 이제는 K-pop 페스티벌도 생길 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 사람들에게 파키스탄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는데 부담스럽진 않나.

제가 그렇게 대표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돼서 부담스러운 면도 있죠. 최근 대사님이 새로 오셔서 강남의 한 학교에 가서 여쭤보셨대요. 파키스탄에 대해 뭘 알고 있냐고. 그러니 학생들이 자히드를 안다고 했다면서 저한테 얘길 해주시더라고요. 이렇게 많이 알아주시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을 느끼고 있죠. 특히 미국, 독일 같이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어서 한국 포털 사이트에 파키스탄에 관한 정보는 잘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더욱 방송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책임을 느끼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국에서 겪고 배운 걸 파키스탄에서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래에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특히 에너지 쪽 사업을 하고 싶고 그다음 정치를 해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파키스탄의 시장이 크니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지금 파키스탄이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라 한국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해 파키스탄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꿈을 크게 가져야 발전할 수 있어요. 꿈이 작으면 그곳까지 가는 길도 짧아서 많이 배우지 못해요. 꿈이 커야 배우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기고 노력하게 돼요. 그리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좋지만 다른 생각,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나서 다름을 경험해 봐야 해요. 이런 경험이 쌓여있어야 사회에 나가서도 잘 대처할 수 있어요. 다르니 안된다고 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나와 다른 사람이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기사 도우미

◇스카루두 마을=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에 위치한 마을.
◇훈자 마을=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에 위치한 마을.
◇폴로=말을 탄 채 목재로 만든 공을 스틱으로 쳐 상대편의 골에 넣는 운동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