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독고석 교수

기자명 채진아 기자 (jina9609@skkuw.com)

여기, 상생하는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소외된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술 개발에 힘쓰는 한 과학자가 있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독고석 교수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4차 산업혁명 중심에는 인간 배제돼
인간 중심의 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적 노력 이뤄져야”

사진 | 박영선 기자 y1378s@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에 대해 소개해달라.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는 2009년 12월에 설립됐으며 적정기술을 이용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과학기술 콘텐츠를 만드는 단체다. 국제 콘퍼런스, 세미나, 워크숍 개최 등을 통해 국내외 적정기술 관련 학술활동의 장려와 대중적 인식 향상을 목표로 한다. 2014년 설립된 ‘적정기술학회’와도 협력하여 액티비티(activity) 중심의 기술 보급 활동에 힘쓰고 있다.

적정기술과 지속 가능한 개발의 연관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적정기술 보급은 R&D(Research and Development) 사업의 형태로 이뤄진다. 기술 보급이 일정한 프로젝트의 형태로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현지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현지인 전문가를 양성한다. 교육으로 자생적인 유지 및 관리를 가능케 하고, 창업 교육도 실시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순환을 돕는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 적정기술 프로젝트의 핵심이며, 현지인의 자생력과 역량을 강화시켜준다는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이다.

제3세계형 적정기술 이외에 적정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는 무엇이 있는가.

적정기술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생활 속 사례를 살펴보면 주차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적정기술이 쓰일 수 있다. 우리 동네의 주차장에 빈자리가 어디에 있고 얼마만큼 남았는지 공유하는 앱도 적정기술의 일환이다. 이때 생활밀착형 적정기술의 핵심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개발에 그 지역에 거주하는 연구자와 시민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국가에서 일정 지원금을 받아 기술 개발과 보급은 그 지역에서 직접 이뤄진다. 여태까지의 모든 기술 개발은 top-down 방식이었다면, 생활밀착형 적정기술은 bottom-up 방식을 통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적정기술 연구를 위해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이 있다면 무엇인가.

적정기술은 다양한 층위의 참여를 요하는 기술이다. 앞서 언급했듯 기술 보급이 프로젝트의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 전문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봉사와 노력이 필요하다. 물적 기반의 경우, 적정기술 개발 및 보급은 ODA(공적 지원금)의 일정 금액을 투자하여 이뤄진다. 올해 2조 7000억 원의 예산이 ODA로 편성됐는데, 그중 일부가 적정기술에 쓰인다. 이외에도 외교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통해 적정기술센터 사업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적 기반의 투자 확대도 중요하지만, 이 중에서 인적 자원의 보급 확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적정기술이 교과과목으로 편성되어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 국내 대학에서 적정기술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은 모든 대학 내에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지부가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도 한동대, 한밭대, 한양대에 적정기술학회 연구소를 두고 있다. 사람을 향한 기술 개발에 흥미를 느끼고 많은 전문 인력이 참여하고 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확산이 덜 된 편이다. 대학 내의 봉사단과 함께 연계해 기술 보급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적정기술의 확산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사회에서 적정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우리나라 청년들은 기회 자체가 부족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모든 분야가 레드 오션이 돼버린 사회 속에서 도전의식과 성취동기를 잃은 것이다. 적정기술은 4차 산업혁명이 선보이는 고도화된 기술에 비해서는 한없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적정기술 프로젝트는 기술 개발, 교육, 경영 등 참여의 폭이 넓은 블루 오션이다.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사회가 우리에게 유익하지만 동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정기술은 인간 중심의 기술, 나를 찾아가는 기술이다. 청년들로 하여금 몸을 움직여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일깨우고, 속도를 줄이며 주변을 살피도록 하는 삶의 철학을 제시한다.

진정한 기술혁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기술은 혁신이 아닌 재앙에 가깝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는 사람이 빠져 있다. 정답과 발전을 지향하는 기술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공학으로 설계된 기술의 전파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공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적정기술은 진정한 기술혁신을 둘러싸고 있는 포장지와 같다. 인간을 존중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진정한 혁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