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아영 기자 (kay8949@skkuw.com)

 사진 | 최원준 기자 saja312@

우리나라 연평균 근로시간 OECD 35개 국가 중 2위
산재 인정 기준 높고 엄격…소송제기도 어려워

과로가 만연한 사회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지난해 10월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故이한빛 PD가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자살을 선택하며 남긴 유서의 일부다. 올해 12명의 집배원이 과로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렀으며, 지난달 경부고속도로에서 전날 18시간 근로한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로로 인한 사건·사고는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이다. 이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장시간 근로 환경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 시간은 1인 2113시간으로 OECD 35개 국가(평균 1766시간) 중 2위다. 연세대 의과대학 뇌 연구소의『뇌 및 심장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따르면, 과로는 과중한 노동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적 용어로서 피로가 회복되지 않고 축적되는 상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포함한다. 대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지만, 과로 상태가 지속·방치되면 졸음과 집중력 저하를 시작으로 당뇨, 고혈압 같은 기초 질환과 뇌·심혈관질환의 발병 소지가 커진다. 박창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주당 49~54시간을 근무한 노동자의 뇌경색 위험도는 35~40시간을 일한 근로자에 비해 27% 높다고 밝혔다. 과로사 산재 박사인 이희자 세명공인노무사는 “과로사는 가정 파괴를 야기할 수 있고 사회·국가적으로도 유능한 인재의 손실”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과로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산재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현실

근로자가 근로로 인한 과로성 재해를 산재로 인정받는 것은 어렵다. 이 노무사에 따르면 실제로 과로사의 산재 인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심사를 청구하거나 노동부 산재재심사를 청구했을 경우, 통계적으로 7~10%만이 산재로 인정된다. 고용노동부에서 정한 과로의 기준이 높으면서도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산재 인정 비율이 30~40%까지 높아지지만,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의 부담이 커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게 근로자들의 입장이다. 공공운수노조 샤프항공 김진영 지부장은 “치료를 받기 위해 병가 신청을 하면 무급이기 때문에 아파도 나와 일을 하죠”라며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고 전했다.

또한, 근로자가 과로사할 경우 남은 유족에게 과로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입증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에 입증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 노무사는 회사에서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객관적 증빙자료를 수집할 수 없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과로하는 사회, 그 이유는

현재 근로기준법 제59조인 ‘근로시간 특례제도’에 해당하는 26개 업종 종사자의 경우 과로의 위험성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대표 간의 서면 합의만 이루어지면 근로기준법에 구애받지 않고 무제한 연장근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인사권을 가진 사용자와의 협상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익명의 관계자는 근로자대표라 할지라도 기간제 비정규직이 많은 산업의 특성상 회사와 계약 체결을 해야 하므로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 결과 현장에서 민간 시외버스 운전자의 경우 한 달 평균 260시간, 집배원들은 240시간 근로하고 있다.

한편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장시간 근로가 근로자의 유능함과 성실함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여겨져 왔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선 서울과학종합대학원 학술연구 교수는 그의 저서『과로 사회』에서 우리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은 능력, 지위, 자긍심, 유능함, 아버지다움의 상징으로 연결되어 왔다고 분석한다. 그는 ‘월화수목금금금’ 일한 끝에 성공을 거둔 신화가 미디어를 통해 거듭 강조됐다고 언급했다. 실제 지난달 17일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486명을 대상으로 ‘야근 현황’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불필요한 야근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3.6%였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회사 분위기상 야근이 당연시돼서’가 63.2%로 가장 높았고 ‘상사나 회사에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답변에도 12.7%가 응답했다. 

과로 사회를 넘어서

이희자 노무사는 과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직장 내 스트레스 관리 시스템 구축 △회사에서 근로자의 건강상태에 따른 직무 전환 등의 조치 마련 △과로사 산재 인정 기준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에서 정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만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회사도 근로자의 건강상태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또한, 현재 고용노동부 고시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또는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 초과 근로하는 것을 만성 과로의 기준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노무사는 “이는 법정 기준의 50%를 추가로 시간 외 근무해야만 충족이 가능한 조건”이라며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 도우미

◇‘근로기준법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광고업 △금융보험업 △영화 제작 및 흥행업 △운수업 △의료 및 위생 사업 등 26개 업종에 한해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주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가 가능하고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