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즐기고 공감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요”
“함께 즐기고 공감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요”
  • 최하영 기자
  • 승인 2017.08.28 21:53
  • 호수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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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캠 만남 - 황태훈(영상 99) 동문

방송국이 밀집해있는 상암동의 높은 빌딩들 속에서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14층의 작업실이 있다. 황태훈(영상 99) 동문은 모든 이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애니메이션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에 애착을 가지고 작은 것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그를 만났다.

‘관람하는’ 취미에서 ‘만드는’ 직업으로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 만들고파

 

애니메이션, 취미에서 전공으로

어린 시절 황 동문은 때로는 외향적이고 때로는 내성적이었다. “다니던 교회에서 연극반을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중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내성적으로 변했어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주된 취미였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꾸준히 방송이나 광고홍보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신문방송학과와 광고홍보학과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전공은 다름 아닌 ‘영상학과’였다. “우리 학교 영상학과에 관심이 있던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 재밌을 것 같았죠.” 당시 대부분의 대학이 학부제로 운영이 되고 있었던 것에 반해 영상학과는 바로 전공학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상학과에 진학한 황 동문은 도전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으로의 변모를 위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2004년도 영상학과 학생회장으로서의 활동은 지금의 외향적인 성격을 갖게 된 시발점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부분을 넘어 전체를 볼 줄 아는 넓은 시각이 생겼어요. 일의 방향성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되었죠.” 학생회장으로서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그는 영상학과 야구팀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나아가 영상학과 동문회의 회장직을 맡게 됐다.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그가 넓은 인맥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실기 위주로 진행되었던 전공 수업 역시 그가 단순히 보는 것으로 즐겼던 영상을 직접 체험해보고 활동하면서 한층 전문적인 지식을 갖는 계기가 됐다.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았던 ‘영화 워크숍’이나 게임을 제작하는 등의 수업들이 인상 깊게 남았다. 전공과목뿐만 아니라 교양 수업도 모두 좋아했던 그는 “듣고 싶은 과목만 들어서 그래요”라며 웃었다. 그는 여러 분야의 학문을 두루 좋아하여 역사학이나 지리학, 심리학 등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했고, 이러한 인문학 공부는 후에 그가 사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학시절, ‘영상’을 향한 외길을 걷다

황 동문은 자신이 선택한 영상학과에 대해 만족감과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그때는 영상학과라는 이름을 가진 대학도 거의 없었어요. 제가 우리 학교 영상학과 2기예요”라며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운영 방식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생긴 문제점도 많았다. 신문방송학과와의 불분명한 경계와 신설된 학과인 만큼 선배의 수가 적어 생기는 진로에 대한 부담감과 같은 문제들이었다. 황 동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기들, 교수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며 영상학과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 때 제 동기들은 복수전공을 많이 했었어요.” 당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학우들은 복수전공을 통해 길을 찾곤 했다. ‘뭐든 자기가 알아서 해야 했던’ 영상학과 2기 학우들은 언론고시를 준비하거나 게임개발, 모션그래픽 등 자신이 희망하는 다양한 분야로 취직했다. 그러나 황 동문은 복수전공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방송이나 언론계로 진출할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굳이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그는 웃었다. 그렇지만 황 동문 역시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더빙 PD’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던 그는 방송계로 끊임없이 입사 지원서를 넣던 과정에서 우연히 이런 분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비군을 갔는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면접 보러 오라고.” 그렇게 그는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국인 대원방송에 입사하게 됐다.

화려한 화면, 그 뒤에서

2006년 대원방송에 입사한 그는 처음 1년간 조연출 생활을 하며 일을 배우고 난 후 2007년에 정식으로 PD가 됐다. 그는 ‘애니메이션 더빙 PD’란 쉽게 말해 수입해온 애니메이션을 ‘한국어화’ 시키는 것의 총 책임자라고 설명했다. 황 동문이 PD가 되고 나서 처음 맡았던 작품은 ‘F-ZERO 팔콘전설’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인기는 별로 없었지만, 첫 작품이었던 만큼 아직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는 더빙 PD로서의 초창기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전부 저보다 선배들이다 보니까 엄청 긴장했었죠.(웃음)” 보통 20명에서 30명 정도의 성우들이 함께 작업하는 녹음실에서 연차가 높은 선배들을 지적하고 고쳐달라고 말하는 것은 1년도 안된 ‘새내기’ PD에겐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 겪어내고 나니 어느새 대원방송의 11년차 베테랑 PD가 돼있었다며 그는 뿌듯해했다. 황 동문은 1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다. ‘파워레인저’, ‘가면라이더’, ‘도라에몽’, ‘프리큐어’, ‘짱구’ 등 흔히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애니메이션은 다 그의 손을 거쳐 온 작품이다. 그는 ‘도라에몽’이 가장 오래 맡았던 작품이라며 “여러분이 어렸을 때 봤던 도라에몽은 다 제가 연출한 거예요”라고 웃었다. TV 채널로 방송하는 것 외에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극장판도 많이 맡았다. 현재는 ‘원피스’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를 작업하는 중이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채널의 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황 동문이지만, 처음 취직했을 때만 해도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직업이 워낙 생소해서 ‘애니메이션 더빙 PD’라고 말해도 다들 그게 무슨 일인지 몰랐다. 부모님조차도 그가 그냥 방송국에서 일하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친구들에게 자신이 ‘애니메이션 더빙 PD’라고 말했더니 ‘그럼 네 목소리가 나오느냐’라고 했다며, 그것 역시 아니었다고 웃었다. 그의 주된 업무는 우리가 보게 될 애니메이션에 맞는 성우들을 섭외하고 번역자에게 의뢰를 하며 녹음을 진행할 때 옆에서 감독하는 것이다. 캐릭터와 매칭이 잘 되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성우가 캐릭터의 성격에 어울리는 연기를 하도록 곁에서 돕는다. “귀여운 목소리에 맞는 사람이 있고 험악한 목소리에 맞는 사람이 따로 있다”며 그는 작품을 미리 숙지하고 그에 맞는 목소리를 찾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웬만한 성우들의 기량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직접 선정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디션을 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방송에 나가기 부적절한 장면을 편집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원피스’의 ‘상디’가 맨날 담배를 펴서 힘들어요. 다 ‘블러’ 처리를 해야 되니까…” 이처럼 애니메이션이 최종적으로 방영되기 전까지 관리하는 것이 그의 ‘최종 임무’이다.

더빙으로 우리문화를 지키다

황 동문은 ‘모두가 이해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직업적 신념이라고 전했다. 나만 이해하는 것,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양질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일의 시작이라며 그는 자신이 ‘열려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이렇게 노력하는 만큼, 국내 더빙계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기를 소망했다. “케이블 채널이 생기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더빙보다 신속하게 유입되는 자막 애니메이션만을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황 동문은 더빙이야말로 우리말을 지키고 나아가 우리 문화를 지키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자문화를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더빙을 의무화한 외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더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기를 바랐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도전하라

그는 요즘 국내 애니메이션 사업이 대체로 완구와 결부되어, 완구회사의 장난감을 팔기 위한 용도로 쓰이거나 캐릭터 사업의 일환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애니메이션이 ‘애들’ 문화라는 인식이 남아있어 고연령층 보다는 저연령층 위주로 수입된다는 점도 안타깝게 여겼다. “우리나라 만화책 시장이 너무 많이 줄었어요. 그나마 활성화된 웹툰도 거의 영화나 드라마로만 제작되잖아요. 일본은 일단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보거든요.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 사업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도전’해 보면 좋겠어요.” 

또한 후배들에게도 대학생 때 최대한 많은 것을 해보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어떤 일에 주체적으로 나서도 보고 무조건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보다는 ‘도전’하는 정신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믿어보라는 당부의 뜻을 전했다. “선택이 틀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게 대학생이 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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