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가영 기자 (lvlygy@skkuw.com)

대부분의 의류 매장 거울들은 좁고 어두운 피팅룸 안이 아닌 조명이 밝은 밖에 설치된다. 이는 밝은 조명에 따라 우리의 뇌가 옷의 품질이나 디자인이 더 화려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당연한 생활 속 현상들은 뇌의 무의식적 변화를 공략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성향을 과학적으로 간파할 마케팅 기법이 등장했다. 뉴로 마케팅이다.

소비자의 무의식 읽는 뉴로 마케팅
명확한 반응 원리 파악에는 아직 한계 있어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마케팅, 이제는 소비자 중심으로

뉴로 마케팅은 뇌 속의 정보를 전달하는 뉴런과 마케팅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뇌는 크게 구뇌, 중뇌, 신뇌의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중뇌’는 사람의 감정과 쾌락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소비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브랜드의 친숙도 및 선호도에 대한 반응은 이 영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중뇌 연구를 통해 소비자의 심리를 분석한 뒤 이를 마케팅 전략에 활용하는 것이 뉴로 마케팅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교수는 “뉴로 마케팅은 소비자의 숨은 의도나 선호를 과학적 방법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의 심리에 대한 뇌 과학적 접근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비를 유도하기 어렵다는 기존 마케팅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을 가능케 했다.
 

뇌를 스캔하는 뉴로 리서치

뉴로 마케팅의 기본인 소비자 심리 분석은 뉴로 리서치를 통해 이뤄진다. 뉴로 리서치란 상품 또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뉴로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숨어 있는 선호 욕구를 언어적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소비자의 숨어 있는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뉴로 리서치는 다양한 측정방법을 활용한다. 우선 생리적인 지표를 통해 뇌의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이 있다. EMG(electromyography, *근전도 검사)는 감정의 지표들, 즉 웃을 때나 인상을 찌푸릴 때 변화하는 안면근육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웃을 때 양 볼과 광대의 근육 변화는 긍정적인 신호를, 인상을 찌푸릴 때 이마나 미간의 근육 변화는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EMG는 근육의 변화를 포착함으로써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감정의 변화도 파악할 수 있다.

뇌파나 뇌 이미지를 연구하는 방식으로는 EEG(electroencephalogram, 뇌파검사)와 fMRI가 있다. EEG는 뇌파 측정을 통해 뇌의 겉 부분의 신경 신호들을 파악할 수 있다. EEG의 장점은 촬영의 속도가 아주 빨라 *시간 해상도가 높다는 것이다. 높은 시간 해상도는 빠르게 발생하는 소비자의 감정 변화도 포착할 수 있게 한다. fMRI는 자력에 의하여 발생하는 자기장을 이용해 생체의 단층 상을 얻을 수 있는 첨단기계다. 김 교수에 따르면 fMRI의 최대 장점은 뇌 중심부의 깊숙한 곳에서 발생하는 신호도 측정이 가능한 것이다. EEG와 fMRI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시간당 해상도가 높은 EEG의 경우 심리적인 변화가 순간적으로 일어날 때, fMRI는 뇌의 깊숙한 곳에서 발생하는 신호들을 측정할 때 사용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뇌의 깊숙한 곳에서 오는 쾌락과 같은 감정은 fMRI를 통해 측정한다”고 밝혔다. fMRI는 뇌를 이미지화해 뇌 반응을 관찰하는 데는 용이한 반면, 반응의 원리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뉴로 마케팅으로 한 걸음 더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는 뉴로 리서치를 통한 뉴로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가 있다. 영국의 컨설팅업체인 ‘뉴로센스’는 뇌 연구를 통해 광고업계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졌다. 뉴로센스는 GMTV 방송국과 협력해 시간대별로 광고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측정했다. 시청자의 뇌를 fMRI로 촬영한 결과, 광고효과가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는 ‘프라임타임’인 저녁 시간대보다 아침 시간대의 광고가 뇌를 더 많이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그동안 광고계에서 통용되던 ‘프라임타임’의 중요성에 대한 기존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뉴로 마케팅은 독자적인 전문 업체가 아닌 기업 내부 특정 부서에서만 진행되는 정도의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져, 아직 출발 단계다. 뉴로 마케팅을 도입한 기업으로는 아모레퍼시픽과 LG가 대표적이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뉴로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다. 먼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화장품들을 보여주고 뇌 반응을 fMRI로 촬영했다. fMRI 영상을 분석한 결과, 기초화장품보다는 색조화장품을 볼 때 뇌의 다양한 영역이 활성화됐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색조화장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제 화장을 할 때 활성화되는 △시각 △촉각 △후각피질의 활성화를 경험하게 된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기초화장품에 주력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색조화장품까지 제품군을 확대했다. 하지만 뉴로 마케팅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인식이 부족하고 축적된 사례가 많지 않아 대부분의 기업은 뉴로 마케팅을 도입하는 데 있어 위험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한, 전문지식을 갖춘 인력의 부족으로 뉴로 리서치의 진행과 결과 분석에 있어 상당 부분을 외국 전문가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뉴로 마케팅의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뉴로 마케팅의 도입과 사용이 윤리적인 문제를 불러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김 교수는 “자신의 생체학적 정보가 기업 마케팅에 이용되는 것에 소비자가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뉴로 마케팅의 확산은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사 도우미

◇근전도 검사=신경 자극에 대한 근육의 반응을 근육 내 전기적 변화로 측정하는 검사 방법.

◇시간 해상도=시간당 해상도의 높고 낮음은 단위시간당 전송되는 프레임 또는 필드의 개수. 높은 시간 해상도는 움직임이 많은 영상을 촬영하는 데 용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