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가슴 속 깊이 숨겨둔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움은 눈물로 자라지만,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문화의 변방이라고 할, 농촌지역인 상주에서 실제로 연극을 볼 기회는 드물다. 바쁜 학업 가운데 무척 다행히도 2학년 소풍을 서울로 가서 대학로 연극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1학년 때 코미디 연극 ‘라이어’를 재미있게 본 기억을 떠올랐기 때문에 이번에 보게 될 연극 ‘돌아온다’ 역시 기대하며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각자의 설레는 마음까지 가득 태웠다. 

연극이 열리는 장소인 대학로 엘림홀은 우리 학교 동호관보다 크거나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대 더 가까이에서 배우들의 체온을 느끼고 ‘진짜’ 연기를 볼 수 있을 만큼 작지만 아늑한 극장이었다. TV에서 평소 우리나라의 연극배우들은 다른 직업이 없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처우가 열악하고, 시설도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들었었기 때문에 오랜만의 문화 경험 외에 연극 자체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았는데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듯 산뜻한 극장을 보자 다시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였다.

극장의 시설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해도 영화관처럼 심심풀이로 즐길 만한 음료수며 팝콘이 없어 조금은 아쉬워할 즈음에 시끄럽던 극장을 단번에 침묵시킨 익숙한 음악이 퍼졌고, 할머니의 시원시원한 고함소리가 극의 시작을 알렸다.

겉으로 봐선 알 수 없는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아있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막걸리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곳을 찾는다. 거기서 그들은 서로의 아픈 사연을 나눈다. 군대를 간 아들의 전역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초등학교 교사, 아들을 잃어버린 아픔을 간직하고 사는 욕쟁이 할머니, 도망친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 뿐만 아니라 스님 등과 같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사연들로 엮은 연극은 끝날 때까지 잠시 눈 돌리거나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그 어떤 감정보다 강렬하고 또 아름답다. 그런 감정을 주제로 한 연극을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느낌으로 짐작할 뿐 아직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가족을 비롯해 누군가를 몹시 그리워한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마음속에 그리움을 차곡차곡 쌓아 서로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 연극이었다. 그리고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깨달음은 소풍이 끝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선명하여 아마도 평생 느낄 감정처럼 진하게 남아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TV며 영화와는 다르게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몰입하여 연기 자체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연극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단순히 쉬거나 놀러 가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학교 소풍에서 이만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경험으로서 내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조금이나마 나를 더 성장시켜준 듯하였다.

살다 보면, 사소한 감정을 하나하나 음미하기엔 너무나 바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을 내서라도 나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기억해 준다면 적어도 감성적으로 풍부한,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 수 있진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는 연극 ‘돌아온다’에서 느낀 것들을 잊지 않고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가 나이가 들수록 되살아나 더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을 희망한다.

황지운(인과계열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