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고등학교 때 ‘스물’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랐지만 제목만 보고 ‘저 영화는 꼭 보아야겠다.’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아홉 살이었을 때 열 살로, 한 자리 수의 나이에서 두 자리 수의 나이로 넘어갈 때 그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며 일기에 여러 번 썼던 적이 있다. 그 설렘에 더하여, 고등학교 내내 ‘스물’이라는 단어는 나의 목표이자 하나의 간절함이었다. 누구나 ‘스무 살이 되면...’ 하고 그 때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보다 성숙하고, 작은 일에 더 이상 크게 상처받지 않으며, 힐은 능숙하게 신어내고, 그 만큼이나 사람간의 관계에서 노련해지는 것,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스물이란 단어의 의미였다.

처음으로 내가 스물이란 단어를 실감했던 것은 첫 번째 시간표를 짰을 때였다. 열심히 머리를 굴린 그 날 밤, 처음으로 내가 내 시간을 채워 나가는 구나하는 생각에 설레다가도 이 시간표가 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긴 밤을 보냈다. 대학에 들어가면 조금 더 알차게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막상 대학에 와서 첫 달을 보내고 보니 와장창. 와장창도 그런 와장창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작은 일에 상처받았고, 해야 하는 일에 끌려 다니고 있었다. 오히려 돈과 시간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만 늘어났다. 돈을 쓸 때마다 남은 용돈에 불안했고, 영화 한 편, 연극 한 편 보고 싶어도 다음 달에는 볼 수 있을 거야 하고 미루었다.

그런 걸 꿈꿨던 건 아니었는데. 과제, 팀플, 시험 등을 거치며 점점 지쳐가는 나를 느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치이며 내가 맞는 건지, 화를 내도 괜찮을 부분인지 고민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우울한 시간을 견디던 때엔 12cm짜리 킬 힐을 지르기도 했다. 그걸 신으면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은 채. 비틀비틀 거리지만 흔들리지 않으려 기를 썼던 엄지발가락은 꼭 나를 닮은 것 같았다. 신을 신고 발이 부서질 것 같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휘청거리다 발목이 휙 꺾일 뻔해도 놀라지 않은 척. 이렇게 지내다 보니 신발을 벗고 땅에 발에 붙일 때에는 역시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가. 내가 꿈꾸던 스물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울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즈음에 LC언니와 밥을 먹게 되었다. 언니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 멋있어 보였고 부러웠다. 언니랑 밥을 먹고 난 뒤 혼자서 여러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제일 기분이 좋았던가. 지금까지는 내 꿈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 끝없이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에서 힘을 얻고 그 자체를 즐겁게 여겼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여전히 그 일은 나에게 제일 중요하고, 내 삶의 원동력이지만, 현재에 충실하며 내가 지금 원하는 것들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나를 좀 더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루는 지친 나를 위해 영화를 보러 다녀왔고, 하루는 딸바를 손에 쥐고 신나서 낙산공원에 올랐다. 혼자 영화표를 끊을 때에는 조금 쭈뼛했고, 어둑한 낙산공원에서 내려올 때에는 겁나서 후다닥 내려오긴 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나의 이상적 ‘스물’과는 거리가 멀지 모르지만, 어른 흉내 내기에서 조금은 나만의 어른이, 스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연정(사과계열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