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주현재 원형탈모 환우회 회장

기자명 강동헌 기자 (kaaangs10@skkuw.com)

원형탈모 환우회 주현재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탈모 환자가 겪는 어려움을 유선으로 들어보았다.


탈모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서 5학년 때 치료되지 못하고 완전히 다 빠져버렸어요. 어린 마음에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해서 모자를 써서 가리려고 했죠. 남성형 탈모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어린 나이 때부터 시작된 원형탈모가 눈썹까지 다 빠지는 전신 탈모로 이어져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죠.
 

당시 겪었던 심리적 고통은 어땠는가.

대인관계가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놀림을 많이 당했는데, 가까운 친구들이 놀릴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친한 친구라고 믿었던 같은 반 아이가 저를 놀림감으로 삼을 때 괴로웠죠. 이성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한창 많을 사춘기 때 ‘누가 나를 좋아해 줄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현재 회장 제공
 탈모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어떻게 견뎠는지.

다행히 성격이 낙천적이고 이성적인 편이라 자신을 스스로 많이 위로할 수 있었어요. 치료가 되면 좋지만 그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할 수 있는 한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어요. 위인전을 많이 읽었던 것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듯해요. 탈모 때문에 바깥 활동에 제약을 많이 느껴서 혼자 있으며 책을 가까이했죠. 위인들의 삶을 보면 저마다의 어려움과 고난이 꼭 있더라고요. 위인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 ‘장애’라는 요소를 저 자신도 갖췄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장애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되거나 ‘장애에 묻혀 패배한 사람’이 되는데 선택은 저의 몫이잖아요. 원형탈모는 난치병인데 이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서 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우리나라는 탈모에 대한 인식이 유독 좋지 않은 것 같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있어요. 실제로 취업 문제만 봐도 외모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죠. 탈모가 있으면 특히 서비스 업종에 취업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요. 원형탈모 환우회의 한 분이 겪은 일인데, 그분이 가발을 쓰고 취업 면접을 보러 갔다가 면접관으로부터 “보기에 어색하다”는 얘기를 듣고 떨어졌어요.

머리카락이 없는 제 머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다닌 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서부터에요.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탈모를 감추고 다녔어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탈모가 부끄러운 게 아니고 문화에 따라서는 이상하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죠. 미국은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고 모두 다르게 생겼어요. 남성형 탈모도 아주 많은 편이고요. 저는 그저 다르게 생긴 사람 중 한 명뿐이었어요.
 

탈모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심리적 치료가 따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탈모로 인한 문제 중 하나는 신체에 대한 불만족이 자기 자신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족으로 이어지는 자존감 하락 문제예요. 원형탈모 환우회에 나가 보면 과거에 받은 상처에 아직도 아파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여성의 경우가 더 심한 것 같아요. 남성이 민머리로 다니면 흔히들 ‘남성형 탈모가 와서 머리를 삭발했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여성이 그런다면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오해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는 심리 치료를 받지는 않았지만, 심리학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낙천적인 저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은 우울감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심리학책에서 읽었던 글귀들이 큰 힘이 되곤 해요. 심리학은 수많은 사람 중 자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줘요. 스스로가 어떤 유형의 성격 집단에 속하는지 알게 될 때 묘한 안정감을 느끼죠. 어렸을 때 지금처럼 심리 검사와 상담이 보편화돼 있었다면 저도 받았을 거예요.
 

탈모로 심리적 고통을 받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같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격이 모두 다른데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해” 강요할 수는 없죠. 다만 탈모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우울하게 지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외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탈모인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위해주는 부모님, 주변의 친구들과 이웃과 행복하게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희망차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편으로는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힐링이 돼요. 어떤 분야이건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파고들면 자신감이 올라가고 삶의 의욕도 생기죠. 개인적으로는 심리학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의 인문학을 깊이 공부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인문학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알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죠. 세상에는 여러 기준에 의한 소수자가 있는데 원형탈모자는 하나의 기준에 의해 규정된 소수자예요.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어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한 거죠.
 

탈모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코미디 프로그램과 같은 미디어에서 탈모를 많이 희화화하는데, 탈모 환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워요. 다수의 입장에서는 웃어넘길 수 있지만, 탈모 당사자는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거든요.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죠. 무엇보다 사회에서 탈모를 겪는 사람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해요.

주변에 탈모로 고통 받고 있는 분이 있다면 탈모 당사자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당사자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존중해 주고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말해주는 사람은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본인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거든요.
 

탈모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은.

한국사회에서 탈모 환자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단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마음과 사회에 대해서 좀 더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추면 삶이 훨씬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이 처한 고통을 개인만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또 다른 종류의 소수자가 보일 거예요. 그분들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