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간의 눈먼 여행을 떠나다
100분간의 눈먼 여행을 떠나다
  • 유은진 차장
  • 승인 2017.09.04 20:02
  • 호수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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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에서 ‘볼 수 없는 전시’가 열린다. 빛을 철저하게 제거한 완전한 암흑 속에서 진행되는 전시 <어둠 속의 대화>는 낯선 공간 속에서 진정한 소통을 발견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기자는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알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체험형 전시의 특성상, 전시 구성을 미리 알면 체험의 감동이 반감될 수 있다. 전시 관람 계획이 있는 독자에게는 기사를 나중에 읽을 것을 추천한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① 어둠 속에 들어서다

전시장에는 시간대별로 최대 8명까지의 관람객이 함께 입장하며, 빛을 낼 수 있는 모든 소지품은 지참할 수 없다. 대신 장애물과 바닥 재질을 확인할 용도로 지팡이를 한 개씩 받는다.
전시장 안은 빛을 완전히 차단해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눈을 감으나 뜨나 어둠이 보일 뿐이다. 갑자기 어둠 속에 내던져지자 관람객들의 손이 뻗어 나와 기자의 어깨와 등이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했다. 관람객 중 한 명이 “꿈 같다”고 중얼거렸다.
100분간 전시장 내부를 안내할 도슨트이자 가이드인 ‘로드마스터’가 등장해 인사하고, 이내 관람객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본명 대신, 두세 명씩 조를 나눠 별명으로 부르기로 했다. 관람이 시작되자 로드마스터의 목소리를 따라 관람객들은 작은 보폭과 느린 걸음으로 나아갔다. 긴장한 관람객들이 보이지 않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잠시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② 눈 대신 손으로 보다

첫 번째 공간을 떠나 좁은 길로 들어섰다. 로드마스터가 관람객들을 이끌어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만져보도록 했다. 아크릴판에 뚫린 여러 개의 구멍이 만져지고, 로드마스터가 공간의 용도를 묻자 관람객들은 감옥, 극장, 편의점 등 각자 생각나는 답을 외쳤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③ 저마다의 여행지로 떠나다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동 수단에 올라탔다. 안전을 위해 잠깐 지팡이는 모아 뒀다. 로드마스터는 관람객들에게 “사실 앞이 보이는 것 아니냐”며 “아주 정확한 방향으로 건네주니 의심스럽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제 여러분이 어둠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네요.”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관람객들이 탄 이동 수단이 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고 물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로드마스터가 여행하는 동안 얘기를 나누라고 권하자 관람객들은 각자가 보는 풍경과 가고 싶은 여행지를 말했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④ 만지고 냄새 맡다

관람객들은 섬에 내려 가게를 구경했다. 가판대에 놓인 사물을 집어서 만져보고 무슨 물건인지 맞히는 활동을 했다. 손으로 구석구석 만져보면서도 어떤 물건인지 짐작하지 못해 헤매자 로드마스터가 넌지시 “냄새도 맡아보라”고 조언했다. 브라질너트, 오징어, 생강, 떡 등 다양한 대답이 들려왔다.
가게를 옮겨 음식이 아닌 기계를 만져 봤는데, 관람객들은 기계 이름은 맞혔지만 조작하지 못했다. 자신 있게 나섰던 한 관람객은 “버튼이 안 보이니까 모르겠다”며 포기했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⑤ 눈을 감고 늦여름을 듣다

문을 더듬어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로드마스터는 관람객들을 건물 마루에 눕게 하고 나무와 하늘, 건물 벽과 바닥재 등 주변 풍경을 묘사했다. 새 소리와 매미 소리가 들렸다. 수다를 떨고 연신 웃음을 터뜨리던 관람객들은 자리에 눕자 이내 말을 멈추고 조용해져 잠자코 여름을 들었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⑥ 길이 보이다

다섯 번째 공간을 떠나 이동하며 거리를 지났다. 로드마스터의 목소리를 따라 조금씩 움직이던 중 기자는 지팡이로 바닥을 짚다 일정한 굴곡을 느꼈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럭이 깔려 있다”고 관람객이 속삭였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⑦ 혀가 거짓말하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관람객들이 각자 시판 음료를 받았다. 음료를 맛보고 무슨 제품인지 맞히는 시간을 가졌다. 관람객들 중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답을 말했다. 로드마스터가 정답을 일러준 뒤에도 관람객들은 “믿을 수 없다”며 기자에게 서로의 음료를 바꿔 마셔볼 것을 청했다. 로드마스터는 “우리는 맛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각 정보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며,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지만 음식의 맛까지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캔 상단에 점자가 만져졌다. 기자가 “점자를 읽을 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말하자, 로드마스터가 음료 이름 맞히는 데는 소용없다고 답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캔 음료에는 모두 점자로 제품명이 아닌 ‘음료’라고만 쓰여 있어요. 점자를 읽을 줄 알아도 제품명은 맞힐 수 없을 겁니다.”
짧은 티타임을 끝으로 전시가 종료됐다. 관람객들은 로드마스터와 인사를 나눈 뒤 다시 불빛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로드마스터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전시장을 떠나며, 다시 누군가 “꿈 같다”고 중얼거렸다.
전시를 관람한 우리 학교 우연수(독문 16) 학우에게 감상을 물었다. 그는 “어둠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전시가 끝나면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며,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기쁘다”고 답했다.
서로에게 무심했던, 또는 수줍음 많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는 낯모르는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자기가 마시던 음료수를 건네기도 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조심스러워지고, 동시에 대담해진다.
<어둠 속의 대화>는 상설 전시로, 북촌 D-SPACE에서 열린다. 이번 주말에는 보이지 않는 꿈을 꿔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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