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탐험가 문경수

기자명 김나현 기자 (nahyunkim830@skkuw.com)

사막에서 조난당했을 당시 북두칠성만을 바라보며 무작정 걸어 나온 사나이가 있다. 바로 탐험가 문경수 씨다. 학창시절 과학을 싫어했지만, 어느 날 우주가 가슴 속에 들어와 그 이후로 탐험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는 탐험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은 그는, 지금도 계속해서 탐험 중이다.

 
탐험, 과학을 표현하는 좋은 채널
생생한 콘텐츠로 흥미 끌어내야

어릴 적부터 과학에 흥미가 있었나.
난 과학포기자였다. 수능 당시 과학 과목은 모두 4번으로 찍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별을 보며 자랐지만, 대전으로 전학을 가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시험지의 작은 지문에 지구를 담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컴퓨터공학과를 간 이유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보다 수학과 과학 지식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했던 프로젝트가 아리랑 위성 관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쏘아 올린 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고, 그 위성이 신호를 보내 데이터가 쌓이는 것을 눈으로 보니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날 우주가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왔다. 근 10년간 우주를 잊고 살았는데 나의 운명이라고 느껴졌다. 궁금증에 이끌려 과학책을 읽으며 조금씩 과학을 알아갔다.

탐험가가 되기 전에 기자를 했던데 어떻게 하게 됐나.
과학책을 읽는데 기초지식이 없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나와 같은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들과 독서모임을 하게 됐는데, 이럴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자고 해 그들과 서호주로 떠났다. 서호주로 떠난 것은 그곳에 지구 초기 흔적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다 보니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의 지적 유희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 글 쓰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IT 관련 신문사에 찾아가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을 내세워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탐험의 끈은 놓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문 직업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있을 탐험을 위해 돈을 모으고 사전조사를 하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탐험가를 직업으로 삼은 계기는 무엇인가.
서호주로 탐사 다닌 것을 토대로 칼럼을 기고해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하게 됐다. IT 기사만 쓰다가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기사를 쓰다 보니 굉장히 재밌었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동적인 학문을 글로 적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다큐멘터리나 체험행사 등 다양한 채널로 전달이 돼야 하는데 글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 무렵 나의 서호주 조난 기사를 본 한 여고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지난 5년간 과학동아를 읽었는데 본인의 마음을 흔든 기사는 이것이 처음이라며, 탐험가의 길을 걷고 싶으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받고 탐험이 과학을 표현하는 좋은 채널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길로 기자를 그만두고 다시 서호주로 갔다.

나사(NASA) 과학탐사는 어떻게 가게 됐나.
일단 탐험을 하려면 사막 지형도 잘 알고 인솔 능력도 필요해 현지 여행사에 취직했다. 주변 친구도, 돈도 없이 외국 생활을 하게 되니 무료로 혼자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은 도서관과 박물관뿐이었다. 일이 끝나면 거의 매일 도서관에 갔는데 워낙 기초과학으로 발달한 나라다 보니 일반 주립도서관에 가도 우리나라 연구소에 있을법한 자료들이 방대하게 쌓여 있었다. 근 반년을 도서관과 박물관에서 살았다. 그러던 와중 신간 코너에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 이름이 낯익어 살펴보니 즐겨보던 과학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던 과학자였다. 검색해보니 그는 나사 소속 과학자인데 마침 지금 서호주에 지질 연구를 위해 파견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날 밤 주저 없이 구글 번역기를 돌려 메일을 보냈다. 보름이 넘게 답이 오지 않아 포기하려던 찰나 답장이 왔다. ‘Okay, fine.’ 일주일 뒤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길을 못 찾아 늦으면 실례가 될까 싶어 그때까지 매일 15분 거리의 연구소까지 걸어가는 훈련을 했다. 며칠 그러다 보니 접수대 할머니와 얼굴을 익혔는데, 약속 당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로 수화기를 드시더라. 나름대로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어 더듬더듬 인터뷰를 마치고 감사인사를 드리자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벽에 붙은 포스터를 가리키면서 일주일 뒤에 각 대륙을 대표하는 나사 우주 생물학자들이 모여 탐험을 떠나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Sure’라고 답했다. 비용 등 모든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나사 탐험대에 관찰자로 참가하게 됐다.

나사 탐험단은 어땠나.
거기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모두 대가들이라 서로 아는데 나만 소외됐다. 이튿날 판 구조론의 텍스트를 쓰신 분이 옆에 앉았는데, 나에게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과학자는 아니고 과학에 흥미 있는 기자라고 소개했더니 그분이 갑자기 정색하시고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라. 그날 밤 혼자 구석에서 밥을 먹고 밤하늘을 보며 잠이 드는데 어떻게든 내 역할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부터 몸으로 하는 일은 모두 자처했다. 여행사 일 덕에 이런 일은 능숙했다. 텐트를 치고 음식을 준비하는 등 궂은일을 맡아서 하자 그분이 내 그릇을 씻어주시겠다며 오시더라. 그렇게 보름 동안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을 다큐멘터리에 나오던 과학자들과 함께 탐험하며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왔다. 그 과학자들과 만남을 통해 내가 진정 탐험가의 길로 가도 되겠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 문경수 제공

탐험가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지 않나.
그렇다. 우선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사람들에게 과학의 재미를 알릴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래서 과학 강연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우리나라 기초과학 분야에서 현장 경험이 있는 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일반 강연과는 다르게 홍대 카페에서 하는 색다른 강연이었다. 관객들의 몰입을 위해 과학자들이 탐험하며 오지에서 들었던 음악들을 배경으로 깔았다. 의외로 라디오헤드의 염세적인 노래를 듣더라. 강연은 성공리에 끝났다. 6회가 매진됐다. 그때, 우리나라가 과학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무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서 가능성을 보고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디자인 회사에 찾아가 여러 시도를 했다. 아날로그한 탐험 경험을 디지털로 변환해 과학관에서도 적용해보며 역시 사람들은 생생한 시청각적 효과에 쉽게 노출돼야 흥미를 갖고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다. 비즈니스로 탐험을 가기 때문에 현장에 가면 사진, 영상, 스토리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수집한다. 이를 이용해 탐험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을 짜고 책을 쓰고, 강연이나 교육을 하며, 과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은 아동용 스마트워치 회사에서 아동용 과학 콘텐츠 전략을 수립한다. 탐험에서 광물을 수집해 콘텐츠로 변환하는 것이 현재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탐험가와 같은 도전적인 직업이 흔치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올해가 바로 제주가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은 많지 않다. 보도의 이슈는 늘 정치와 경제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일(9월 15일)은 20년 전에 토성에 간 탐사선 카시니호가 임무를 마치고 토성 대기권으로 진입해 자연 산화하는 날이다. 미국에서는 이 탐사선에 대한 예우로 대통령이 소환 발표를 한다. 선진국의 대표적인 도시에는 꼭 자연사 박물관이 있고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감을 받을 곳이 없다. 전혀 보지 못한 시공간의 개념, 과거 생명체의 기록을 보며 영감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공룡에 관심이 많은 한 외국인은 디즈니나 픽사로 가서 시나리오를 쓴다. 우리는 정해진 지향점을 향해 갈 뿐 다른 길을 생각하지 못하는데 보다 자유롭게 미래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