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지호 차장 (jiho2510@skkuw.com)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2017장애인문화예술축제 ‘A+ 페스티벌’이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렸다. ‘A+’에는 ‘모든 개인(All)’이 ‘플러스(Plus)’ 되는 축제, 각자가 자신의 기준에서 더 빛나는 축제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올해 9회째를 맞이한 장애인문화예술축제는 장애인이 문화와 예술의 주도적인 생산자로 참여하도록 해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문화의 중심에 설 기회를 제공해왔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함께하는 즐거움의 울림’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즐기는 화합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기자가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아 3일간의 축제를 기록했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광화문 광장.

‘그들’만의 리그 아닌 ‘우리’의 리그
지난 12일 오후 3시. 기자가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세종대왕 동상 뒤로 줄지어 나열된 빨간색과 연두색의 알록달록한 천막이 이곳이 곧 축제의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광화문 광장과 마주한 메인무대에서는 오늘 밤 있을 개막식 리허설이 한창이다. 무대 앞과 옆에는 휠체어도 쉽게 무대로 올라갈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돼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광장을 울린다.

다양한 부스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천막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A+ Festival’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축제 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개막식 무대에 오를 1004 합창단의 단원들이다. 1004 합창단은 1004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구성된 프로젝트 합창단이다. 하얀색 축제 셔츠를 입은 최소녀 씨(73세)도 개막식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아름다운 하모니에 그 목소리를 섞을 단원 중 한 명이다. 3급의 지체 장애를 가진 최 씨는 하남시 장애인합창단에 속해 있다. 그는 “이렇게 축제에 나와서 같은 장애인들끼리 소속감도 느낄 수 있고, 되게 즐거워”라며 축제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축제 현장을 카메라 렌즈에 담고 있는 기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부스 천막 앞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다. 천막 위로 ‘미로 찾기’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그 아래 거울 앞에는 미로 찾기 퍼즐이 그려진 종이들이 있고, 잘 안 되는 듯 여기저기서 “너무 어렵다!” “이거 옆으로 어떻게 가?”하는 탄식 섞인 소리가 난다. 종이 위에 삐뚤빼뚤한 선이 그어진다. 어떤 체험 행사냐 묻자 부스 운영자는 지적 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한 체험이라 말한다. “거울만 보면서 미로 찾기를 푸는 느낌이 일상생활에서 지적 장애인 분들이 겪는 어려움과 비슷해요.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거든요.” 그곳에서 안양시 청암교회 성가대원 정현실 씨(59세)를 만났다. 그는 미로 찾기를 하며 “진짜 답답하네요. 지적 장애인을 돕기 전에 먼저 이런 체험을 반드시 해야 할 거 같아요. 그분들 입장을 모르고서는 의도와는 다르게 상처를 줄 수도 있잖아요”라며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어 정 씨는 장애인과 함께 합주를 한다는 이야기에 엄숙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왔지만 “실제로 와서 분위기를 보니까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놀다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라며 밝게 웃어 보였다. 바로 옆의 부스에서는 명함에 적힌 정보를 점자로 새겨주고 있었다. 기자도 명함을 건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자 명함이 나왔다. 손끝에 느껴지는 촉감을 기자는 해석할 수 없었지만 이제 기자의 소속과 이름, 휴대폰 번호는 눈 말고 손으로도 읽을 수 있게 됐다.

   
‘미로 찾기’ 부스에 퍼즐이 그려진 종이가 거울 앞에 놓여있다.
   
‘울룩불룩 제작소’ 부스에서 기자의 명함에 점자를 새기고 있다.

오후 7시에 다다른 시각. 해가 저물고 메인무대의 조명이 빛을 발한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대북 앞으로 조명이 모이고, 그에 따라 시선도 모인다. 고수 김재복(청각) 씨의 힘찬 두드림이 개막식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메인무대의 스크린에는 진행자와 함께 수화통역사가 나와 진행자의 말을 손짓으로 전달한다. 개막식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들의 합작 공연으로 진행됐다. 힙합 댄서 김완혁(지체) 씨를 주축으로 한 퍼포먼스 팀이 무대 위를 누비는 동안 김형희(지체) 서양화가가 그들의 몸짓을 투명한 유리 화폭에 담아낸다. 피날레는 시각장애 단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합주에 맞춰 1004명의 합창단원의 노랫소리가 장식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축제는 계속된다.

   
전시 ‘아트, 이음’에 장애인 미술작가의 서양화, 한국화, 공예 작품이 전시돼있다.

‘내’가 ‘너’를 이해한 시간
다음날인 13일 기자가 다시 찾은 광화문 광장에서 ‘인천코끼리’를 만났다. 계절에 맞지 않게 푸른 잔디 위에 코가 몸집보다 큰 코끼리가 서 있다. 맹학교 순회아트프로젝트 ‘코끼리만지기’를 통해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이 직접 만져보고 느낀 코끼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인천코끼리말고도 시각장애 학생들이 만든 다양한 코끼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 정지원 프로그램매니저는 “작품을 통해 시각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시각장애인이 미술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려 한다”며 전시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 ‘광화문 코끼리’의 스탭이 아이에게 작품 ‘인천코끼리’를 설명하고 있다.

축제에는 장애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작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체험행사도 있다. 기자가 찾은 체험 부스에선 김경아(뇌병변) 작가가 발로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김경아 작가는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구족화가다. 기자도 그 옆에 앉아 붓을 들었다. 손이 아닌 발로 든 것은 태어나 처음이다. 붓에 물감을 묻히기도 힘들다. 어렵사리 색을 입은 붓을 도화지에 가져다 그림을 그리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얼마 되지 않아 아려오는 다리에 영감을 발휘할 새도 없이 작품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그림으로 도화지를 채웠다. 그림을 완성한 기자에게 김 작가가 어땠냐고 묻는다. 작가님처럼 그리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고 답하자 김 작가가 웃으며 “바로 그런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이런 축제를 마련한 거예요”라고 답한다.

기자가 구족화가 김경아 작가와 함께 발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후 8시 그날의 마지막 공연 ‘THIS_ABLE DANCE’를 보기 위해 메인무대로 향했다. 무대 뒤 대기실 천막으로 가니 곧 무대에 오를 여러 무용수 사이로 ‘빛소리친구들’ 단원들이 있다. 천막 입구 쪽 구석에 몸을 흔들고 털며 스트레칭하는 휠체어파트너 노재옥 씨가 보인다. 본인에게 춤은 활력소라 말하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고 말한다. “나 같은 경우는 무용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정말 절실하죠.” 노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대의 폭이 좁아서 팀원들이 모두 다치지 않고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빛소리친구들은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Life is...’라는 작품은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 이뤄지는 만남과 헤어짐, 기쁜 일과 슬픈 일, 좌절했다가도 다시 일어나 꿈을 꾸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음악이 시작하자 무대 한곳에 모인 댄서들이 물속에서 수초가 흔들리듯 몸을 움직인다. 휠체어파트너는 바퀴를 들어 올리거나, 옆으로 넘어진 채 이동하고, 눕기도 한다. 스탠딩파트너가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하다가도 바퀴를 빠르게 굴리며 무대를 자유자재로 누비던 휠체어가 뛰어오르는 스탠딩파트너를 받친다. 높게 발을 뻗어 올린 파트너를 등에 업고 회전한다. 스탠딩파트너를 받치는 휠체어파트너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스탠딩파트너는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다. 휠체어가 단순히 이동을 위한 수단에서 춤을 만드는 몸짓이 된다. 음악이 멎고 단원들이 무대 중앙에 모이자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무대를 내려오는 무용수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빛난다.

Life is...’ 안무를 추고 있는 장애인무용단 ‘빛소리친구들’의 모습.

축제는 짧고, 예술은 길다
축제 마지막 날인 14일 오후 4시. 뮤지컬 ‘The Last Concert’의 공연시간에 맞춰 광장에 도착했다. ‘The Last Concert’는 시각장애인 가수 김지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창작 뮤지컬이다. 갑상선암 선고를 받은 가수 김지호가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수술을 거부하지만 같은 병원 환자로부터 용기를 얻고 수술을 결심해 시련을 극복해내는 이야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뮤지컬 배우들의 호흡을 가까운 관객석에서 바라본 최주연 씨(25세)는 막이 내린 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원하는 게 있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걸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공연을 본 소감을 이야기했다. 

메인무대를 뒤로 하고 부스가 모인 광장으로 향했다. 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이 운영하는 한 부스에서는 장애 인식 프로그램 ‘장애란?’을 제공한다. 화이트보드에 장애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적은 뒤, 그걸 들고 있는 모습을 즉석 사진으로 찍어 참여자에게 기념으로 주고 있다. ‘장애란 틀린 것이 아니다’라고 적은 박상하 씨(21세)는 왜 그렇게 적었느냐는 물음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거나 살면서 장애를 가지게 된 게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비장애인과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차별받거나 다르게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축제 설문조사 부스가 분주하다. 부스 관계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설문 참여를 부탁한다. 설문지를 작성하고 나오는 임민정 씨(42세)에게 축제의 개선점을 물으니 “홍보가 됐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진작 알았으면 더 빨리 왔을 거예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덧붙여 임 씨는 “보통 축제에서 운영되는 부스는 판매가 목적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무상으로 다양하게 체험할 기회를 준 게 정말 좋았던 것 같다”며 체험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장애 인식 프로그램 ‘장애란?’ 부스 참여자가 화이트보드를 들고 즉석 사진을 찍고 있다.

줄지어 선 부스를 따라 세종대왕 동상 바로 앞에 위치한 프린지 무대까지 다다랐다. 프린지 무대는 사전공모를 통해 선발된 장애 및 비장애 예술인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해가 저문 이곳에선 연세대 뮤지컬동아리 ‘로뎀스’가 공연 준비로 한창이다. 이날 로뎀스가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배리어 프리 뮤지컬 ‘피맛골 연가’다. 이번 공연의 내레이션과 기획총괄을 맡은 연세대 산업공학과 왕경업 씨는 “예전에 제가 기획을 맡은 공연에 장애인 관객이 온 걸 처음 봤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공연을 볼 수 있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도한 겁니다”라고 말한다. 뮤지컬이 시작하자 관객과 무대 사이에 준비된 컴퓨터 화면에서는 자막이 나오고,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내레이션이 장면을 묘사한다. 김생 역의 연세대 경제학과 이건오 씨는 “이게 제 마지막 공연인데 마지막 무대에서 이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벽이 없는 배리어 프리 무대로 끝맺음할 수 있어 정말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소감을 이야기했다. 홍랑 역을 맡은 연세대 경제학과 한소연 씨는 “처음에는 내 열정만을 채우기 위해 공연을 했지만 배리어 프리 공연을 하다 보니 ‘나만 즐기는 공연이 아니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사람을 위한 공연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라며 앞으로도 이런 취지로 계속해서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경업 씨는 축제가 잘 준비된  것에 비해 장애인분들의 참여가 적어 아쉽다며 장애인분들이 더 많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배리어프리 뮤지컬 ‘피맛골 연가’가 프린지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다.

3일간 메인무대와 프린지 무대를 거친 모든 공연이 막을 내렸다. 부스프로그램이 운영되던 알록달록한 천막도 내일이면 사라진다. 그렇게 축제는 끝났다. 축제는 짧았지만, 장애인문화예술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