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 이주 80년 지났지만… 아직 웃을 수 없는 현실
고려인 강제 이주 80년 지났지만… 아직 웃을 수 없는 현실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7.09.18 20:25
  • 호수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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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4세, 성인되면
3개월마다 1번씩 출국해야 해

‘동포’ 아닌 ‘외국인’
“저는 형 디마, 그리고 고려인 3세인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2011년 한국에 온 후부터 3년마다 비자 만료로 인해 중앙아시아 국가를 다녀오는 이상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번 다녀올 때마다 아빠는 ‘그동안 모았던 돈을 다 썼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십니다. 그리고 저도 곧 만 18세가 되면 이 땅을 떠나야만 합니다. 저는 한국에 계속 살고 싶은데 말이죠.” 광주광역시 고려인종합지원센터(대표 신조야)에 올라온 호소문의 주인공 한미샤 씨는 고려인 4세다. 고려인 4세들은 일제 강점기 때 러시아로 넘어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우리 민족의 후손으로 현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 연합 내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 신분으로 인한 비자의 여러 제한과 절차 때문에 불안정한 체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 재외동포법)에 따르면 고려인 3세까지만 재외동포로 인정되고 있다.

재외동포에서 제외된 고려인 4세들이 받을 수 있는 비자는 국내 부모 체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부모님 없이 온 고려인 4세들은 주로 단기방문비자(C-3)와 유학비자(D-2), 일반연수비자(D-4)를 통해서 국내에 체류하는데 3개월마다 한국에 재입국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편,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체류하는 고려인 4세들은 방문동거비자(F-1)나 동반비자(F-3)로 국내에 장기 거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도 만 19세가 되면 이 비자들이 만료돼 다른 4세들과 상황이 같아진다. 고려인 4세 문다나 씨는 “한국 정부가 고려인 4세를 재외동포로 받아주지 않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며 고려인 4세들도 같은 뿌리를 가진 한민족이라고 말했다. 고려인 4세들은 재외동포비자(F-4)를 받지 못해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불안정한 체류로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
현재 대다수 고려인 4세들은 출입국에 제한적인 비자로 인해 금전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성인이 된 4세들이 발급받는 단기방문비자의 재발급에 필요한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단기방문비자를 발급받은 고려인은 3개월마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비자 재발급을 받고 대한민국에 재입국해야 한다. 광주광역시 고려인종합지원센터 신조야 대표는 우크라이나를 예로 들며 “모스크바를 거쳐 가야 해서 한 번 다녀올 때마다 200만 원 정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덧붙여 이는 국내 취업 활동이 금지된 비자 특성상 일 할 수 없는 고려인 4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내 취업 활동에 제한적인 비자들도 고려인 4세들에게 경제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 고려인 4세들이 국내에서 취직하기 위해서는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과 같이 특정활동비자(E-7)와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해당 비자들은 취업할 수 있는 근무처가 한정돼 있고 비전문취업비자의 경우 현지에서 일정한 요건의 한국어 교육을 수료해야 하는 입국 조건이 있다. 또한 근무처 변경에 횟수 제한이 있어 국내 취업 활동에 여러 제약이 있다. 비자 발급 또한 쉽지 않은 편이어서 많은 고려인은 비교적 간단한 단기방문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비밀리에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단기방문비자는 국내 취업 활동을 금하고 있어 취업 활동 현황이 적발되면 최대 15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불안정한 체류로
영주권 사기 범죄에 쉽게 노출돼

재입국 과정,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와
비자로 인한 불안정한 국내 체류는 고려인 4세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준다. 3개월마다 한국 재입국 과정을 반복해야 하고 그 과정 동안 여러 교통수단을 장시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9시간 이동한 후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까지 다른 교통수단으로 또 장시간을 가야 한다. 고려인 4세들이 재입국 기간 동안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그들의 가족에게도 전해진다. 신 대표는 “부모들 입장에서는 자식을 한 번 보낼 때 자식이 돌아올 때까지 잠도 못 자고 기다린다. 비행기가 잘 날아오고 있는지, 사고는 안 났는지 걱정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불안정한 국내 체류 상황에 노출된 고려인 4세는 사기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안정적인 체류를 원하는 4세들이 영주권 취득을 도와준다는 사기범들의 말에 쉽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최근 고려인 4세들의 사기 범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는 현실
법무부는 지난 12일 현재 재외동포로 인정이 안 된 고려인 4세들에게 2019년 6월까지 국내에 안정적으로 체류하도록 방문동거비자를 한시적으로 발급한다고 밝혔다. 이는 성인이 된 고려인 4세들이 비자 때문에 가족과 헤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동안 가족과의 동거를 목적으로 하는 4세들에게 발급된다. 이로써 부모님과 함께 국내에 거주하는 고려인 4세들은 한시적으로 안정적 체류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혼자 체류 중인 4세들의 문제는 배제돼 있고 재외동포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4세들은 다시 3개월마다 가족과 헤어져 본국과 한국을 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체류 중인 고려인은 4만여 명에 달하며 이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고려인 4세들이 한국 사회에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려인 4세 최타냐 씨는 “현재 고려인들이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어도 한 민족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며 고려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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