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만남 - 이정희(생물 82) 동문

기자명 허준혁 기자 (adam323@skkuw.com)

천천히, 그리고 소리 없이 자라며 자족하는 식물처럼,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꽃피고 있다.
국립수목원 전시교육연구과에서 식물에 둘러싸여 자연을 탐구하는 이정희(생물 82) 동문을 만났다.

 
호기심 많던 소녀에서
식물분류학 전문가로
식물분류학의 매력,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발아하는 어린 시절, 호기심 많은 소녀
전남 나주의 시골에서 자란 이 동문은 서울을 동경했다. “6살 때 서울에 처음 갔는데 너무 인상적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서울에 다녀온 후로 부모님께 서울로 보내달라고 계속 졸랐어요. 그 당시에 오빠도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에서 공부하도록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셨어요.”

상경한 그는 공부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중학교 때 그는 동경했던 국사 선생님을 보며 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새롭게 물리학에 끌렸으나 또 건축학이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다. “물리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 물리학은 천재들이 하는 학문이라는 오빠의 말을 듣고 바로 포기했어요. 그 대신 같은 이과 영역의 건축학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라며 웃었다. 또 지구과학에도 관심이 생겼다. “적성검사에서 이공계와 관련된 적성이 점수가 높게 나왔어요. 이과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지구과학이 너무 재밌게 느껴졌죠.”

학창시절 해수욕장에서의 경험은 이러한 그를 생물학도의 길로 인도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고향에 내려가 해수욕장에 갔어요. 떠다니는 말미잘과 수상식물을 보며 놀았는데 정말 신기했죠” 대입 당시 어느 학과에 진학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그는 생물학과 진학을 결정했다. 우리 학교 생물학과를 입시원서 1지망에 쓰게 된 계기다.

그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2학년 때였다. “그 당시에는 1학년 때 공부를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어질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 보니 일반화학을 포함해 일부 과목에서 F학점을 받긴 했지만 열심히 재수강에 성공해 학점을 회복했어요.” 2학년 때부터 그는 독서에 빠졌다.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학교를 오가는 동안 전철에서 책을 봤어요. 그렇게 통학하면서 책을 읽다 보니, 대학생 때 읽은 책 중 상당수를 전철에서 읽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2학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연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제공해 준 것 같아요.”

성장하는 대학 생활, 식물분류학과 만남
대학 시절 수강했던 식물분류학 수업은 그를 매료시켰다. “당시 이상태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셨는데 식물분류학 수업 자체도 재밌었지만, 교수님께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어요. 그 외에도 실험 위주로 진행하는 수업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그중에서 나뭇가지에 대해서 공부한 다음, 실제 나뭇가지들을 일렬로 늘어놓아 어떤 나무의 가지인지 학명을 쓰는 시험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그런 부분에서 식물분류학은 식물채집도 하고 도감을 통해서 식물을 찾는 능동적인 수업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공백기가 찾아왔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고향에 내려갔어요. 아버지가 아프신 동안 옆에서 간호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계속 설득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계속 공부하는 걸 반대하셨지만 결국 완쾌하시고 제가 공부를 더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어요.”

대학원 진학에서 전공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식물분류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 당시에 유행하는 전공이나 분야를 선택하는데 저는 제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했기 때문에 슬럼프에 빠져도 금방 극복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것과 자연을 공부하고 자연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요.”

이후 그는 더 넓은 세상에서 학문을 닦기도 했다. 그는 과학장학재단에서 1년간 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필드자연사박물관에서 박사 후 과정으로 식물분류학을 공부했다. “굉장히 좋은 곳이었어요. 동물, 새, 인류학, 식물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모여 분자실험실에서 연구했어요. 그곳에서 서로 맡은 일은 돌아가면서 자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현장에서 배우는 식물분류학’ 강의를 하는 이 동문.

국립수목원에서 열정을 꽃피우다
귀국 후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자 했다. “그전까지 연구원이나 시간강사로 일하기도 했고 외국으로부터 센터장을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정규직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44세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그는 2006년 9월부터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게 됐다.

미국에서의 유학 이후 늦은 나이에 들어간 직장이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 기획팀에서 일할 때는 연구자로서 자부심이 강했기 때문에 연구자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어요. 하지만 이내 국립수목원은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걸 알고 왜 존재해야 하는지 느꼈죠.” 특히 그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연습이 중요한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주로 임학과와 농학과 출신이 많고 과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의견을 맞추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자기를 내려놓고 상대방과 맞춰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방황도 잠시, 그는 전시와 교육을 통해 열정을 발산했다. 그는 “식물을 관리하고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점을 그림으로 그려서 국립수목원의 동료들과 함께 ‘가드너 다이어리’라는 책을 발간했다”며 “우리가 낸 책이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 책은 임무를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웃었다. 또 그는 잡초가 쓸모없는 식물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의 일원이고 좋은 소재로 쓸 수 있다는 걸 소개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청해 잡초탐사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국립수목원이 평생교육 기관과 같다고 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국립수목원은 일차적으로 연구기관이에요. 식물마다 이름표가 있는데 그 이름표가 1차 교육 기능을 해요.”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시는 평생교육 자료다. “수목원에서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주제를 정하고 전시를 해요. 어린이부터 나이가 드신 분까지 수목원은 교육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 그는 국립수목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배우는 식물분류학’ 강좌를 5년째 강의하고 있다. “그 강좌를 개설했을 때 많은 사람이 분류학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 했어요. 강의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지식과 알아가는 기쁨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학문에 대한 열정의 꽃은 아직도 피고 있다. 그는 국립수목원에서 일하면서 조경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조경학과에 들어가 수료과정을 밟았다. 현재 목표에 대해 “아직 논문을 쓰지 못해서 졸업을 못 했기 때문에 논문을 쓰는 게 첫 번째 목표고 더 공부할지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퇴직 후에는 식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곳에서 자원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식물을 향한 그의 깊은 사려가 원동력인 듯했다. “식물에 대해 깊이 알게 되면 잎 뒷면에 있는 털의 유무로도 종이 나뉘기 때문에 한 면만 보고 절대 단정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단정을 짓지 않고 여지를 남겨요. 누군가 저에게 식물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항상 말해요. ‘자세히 봐야 합니다’라고.”